[문화人 칼럼] 와일드 클레이(Wild Clay)

  • 오피니언
  • 문화人 칼럼

[문화人 칼럼] 와일드 클레이(Wild Clay)

조부연 도자디자이너

  • 승인 2025-04-23 15:20
  • 신문게재 2025-04-24 19면
  • 김지윤 기자김지윤 기자
2025031901001413700056541
조부연 도자디자이너.
비 갠 후 도로의 고운 흙이 가라앉은 물웅덩이를 보기가 어렵다. 당연히 아스팔트로 포장한 도로는 비포장도로만큼 물웅덩이를 많이 만들지 않는다. 가끔 물웅덩이가 도로 가장자리에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고운 흙 대신 도로에서 깎인 모래가 대부분이다. 도시의 중심가와 근교를 돌아다녀도 어디나 포장도로가 깔려있다. 시골로 내려가도 마찬가지다. 마을로 들어가는 좁은 길, 농로마저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다. 사람들이 도시로 모두 떠나고 세월지나 허름한 시골집이 무너져도 시멘트 포장도로는 남아있다. 간혹 장맛비에 도로가 씻겨나가 모두 떠내려가도 시멘트 포장도로는 최후까지 그나마 살아남는다.

고등학교에 다니던 80년대 중반의 기억이다. 그 시절엔 직행버스, 고속버스에도 입석이라는 게 있었다. 버스회사는 입석을 가득 채워 돈벌이를 했다. 명절에 입석을 최대한 실은 직행버스는 고속도로 진입을 할 수 없었다. 그게 규정이었는지 정확하지는 않다. 대전, 연무대 간 호남고속도로를 거쳐 부여 가는 만원 직행버스는 연산과 논산으로 우회하는 비포장도로를 이용해만 했다. 직행버스 후미의 조그만 창문으로 사람을 태우는 꼼수까지 써가며 콩나물시루가 된 버스 안은 생지옥이었다. 운전기사는 승객 사정 안 봐주고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내달렸다. 그때마다 버스 안은 비명이 가득했다. 어쩌다 서울행 고속버스를 가끔 타면 40년 전 직행버스의 고약한 경유 냄새가 코를 찌르고 속이 울렁거린다.

부여 촌놈이라서 비포장도로(흙길)를 꽤 많이 걸었다. 부여 읍내에 아스팔트가 모두 깔려 있던 80년대 말까지도 고향 시골집 가는 도로는 비포장이었다. 여름방학에 친구들과 함께 서천 춘장대 해수욕장에 놀러 갔을 때였다. 고향 집에 하루 머물기로 하고 부여에서 시내버스를 탔다. 까까머리에 불량스런 사복 차림의 남학생들이 맨 뒤 좌석에 앉았다. 덜컹거릴 때마다 엉덩이가 의자에서 떨어졌다. 그때마다 놀이기구에 탄 것처럼 비명을 지르고 깔깔거렸다. 참다못한 기사 아저씨의 불호령이 있기까지 철없는 사내애들은 놀이기구를 타고 있었다.

미대 입시를 준비하면서 도예를 전공하겠다고 생각했지만, 깊이 알지는 못했다. 막연히 도자기를 동경했다. 산업미술학과에 디자인계열과 공예계열이 함께 있던 시절이었다. 당시 유망하다던 디자인계열 전공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결국에는 도자기 전공을 선택했다. 그렇게 도자기를 만들게 되었다. 도예가에겐 흙(점토)이 가장 중요한 재료다. 도자기 재료상에서 청자토, 백자토, 분청토, 흑토 등을 주문하면 택배로 온다. 돈 주고 사서 쓴다. 세상 좋아져 중국이나 미국, 일본의 점토도 쉽게 살 수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돈 주고 사서 쓰는 점토가 마뜩잖다.

비 갠 후 시골길은 물웅덩이가 많이 생긴다. 울퉁불퉁한 길에 여지없이 물웅덩이가 만들어진다. 이때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비가 오면 옴폭 파인 길에 흙이 조금씩 씻겨 흘러 들어간다. 흙 속에 있던 모래나 작은 돌들은 무게 때문에 아래로 가라앉고 고운 흙물이 위에 뜬다. 하루이틀 지나면 마른 논바닥처럼 고운 흙이 쩍쩍 갈라진다. 이 마른 흙이 바로 와일드 클레이다. 작업장으로 가져와 물을 붓고 주물럭거리면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점토로 쓸 수 있다. 사실 이 방식은 선사시대 토기를 만들던 고대인들이 점토를 채취한 방법의 하나로 가장 원초적인 것이다. 요즘 꿈꾼다. 아침에 일어나 웅덩이의 와일드 클레이를 작업장으로 가져와 하루에 쓸 양의 점토를 만들고 그릇을 만든다. 주변의 와일드 클레이가 동나면 비를 기다린다. 비가 오면 물웅덩이에 내 흙이 쓸려 들어간다. 그런데 이 도시엔 흙물을 머금은 물웅덩이를 찾을 수 없다.

조부연 도자디자이너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버스전용차로 시행중입니다’
  2. 민주당 대전시당 청년위원장에 이용석 출마…"청년정치에 '새로고침' 누르겠다"
  3. 태안 앞바다 5번째 침몰선 실체 드러날까…금강~한양까지 25일 '조행일록' 눈길
  4. tbn충남교통방송, '추석 교통안전 특별방송' 실시
  5. 천안도시공사, 천안추모공원 노후시설 개선으로 추모객 보행환경 편의성 높여
  1. 충남청년센터, 32개 기관 통합 협의회 개최… 정책 발굴부터 후속지원까지 한번에
  2. 충남교육청, 추석 연휴 기간 교육기관·학교 주차장 540곳 무료 개방
  3. 금성백조, 추석 맞아 복지시설에 위문품 전달
  4. 의대 입시도 지역인재 쏠림…수도권 학생 지원 문 좁아졌다
  5. 여고·등산로서 상습 신체 노출… 50대 남성 검거

헤드라인 뉴스


60년 전 대전 한가위!"물가 걱정 속에도 온정 물결"

60년 전 대전 한가위!
"물가 걱정 속에도 온정 물결"

지금으로부터 약 60년 전, 1966년의 추석 풍경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당시 중도일보는 명절 당일 지면을 통해 고향으로 향하는 귀성객들의 열기와 함께 서민들이 체감했던 삶의 단면들을 다채롭게 조명했습니다. 신문 지면에 남아있는 주요 기사들을 통해 그 시절 추석 풍경을 되짚어봅니다.명절을 맞아 고향을 찾는 발걸음은 예나 지금이나 뜨거웠습니다. 당시 중도일보는 歸省客 幅增 (귀성객 폭증)이라는 대형 헤드라인과 함께 大田驛 乘客 85% 急增 (대전역 승객 85% 급증) 소식을 비중 있게 다루었습니다.열차와 버스 등 교통수단이 지금처럼..

세종사랑 맛집 `98곳` 라인업… 우리 동네 어디에 있나?
세종사랑 맛집 '98곳' 라인업… 우리 동네 어디에 있나?

"상권 침체는 없다. 우리는 맛으로 승부하고, 고객들을 불러 모은다." 자영업자의 무덤으로 통하는 세종특별자치시에도 맛집들이 건재하고 있다. 세종사랑 맛집 98곳이 이름을 올리며, 읍면동 맛집 지도를 서서히 완성해가고 있다. (재)세종시문화관광재단(대표이사 박영국)은 작년부터 시민 추천과 전문가 평가를 거쳐 선정한 '세종사랑 맛집'을 총 98개소로 확대했다. 작년 11월 44개소에 이어 이번에 신규 선정한 맛집은 모두 54개다. 최근 이름을 올린 맛집 54개소는 신도심 33개소, 구도심 21개소로 구성됐고, 한식과 중식, 일식, 카..

대전 펜싱 간판스타 오상욱, 아시안게임서 `금메달`
대전 펜싱 간판스타 오상욱, 아시안게임서 '금메달'

대전 펜싱 간판스타 오상욱이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오상욱(대전시청)은 23일 일본 아이치현 도쿄나메의 아이치 스카이 엑스포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남자 사브로 개인전 결승에서 선천펑(중국)을 15대 13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이로써 대한민국 선수단 8번째 금메달 주인공이 됐다. 펜싱에서는 전날 여자 에페 개인전의 송세라(부산시청)에 이어 두 번째 '금빛 찌르기'가 펼쳐졌다. 오상욱은 2023년 열린 2022 항저우 대회에 이어 남자 사브르 개인전 타이틀 방어에 성공했다. 한국은 2010년 광저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 추석의 의미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건 추석의 의미

  • ‘버스전용차로 시행중입니다’ ‘버스전용차로 시행중입니다’

  • ‘풍요롭고 즐거운 추석 명절 되세요’ ‘풍요롭고 즐거운 추석 명절 되세요’

  • 귀성객 맞이 서대전역 방역 ‘꼼꼼하게’ 귀성객 맞이 서대전역 방역 ‘꼼꼼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