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톡] 자식의 울타리가 이렇게 든든할 줄이야!

  • 오피니언
  • 여론광장

[수필 톡] 자식의 울타리가 이렇게 든든할 줄이야!

남상선/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 승인 2025-04-27 11:04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한국효문화진흥원 봉사활동을 마치고 퇴근을 했다. 웬일인지 저녁식사 무렵부터 속이 메스껍더니 복통이 일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통증을 더해가는 것이 식은땀까지 나게 했다. 전에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 갔을 때 산통(産痛)보다 더 아픈 바로 그 요로결석증 통증임에 틀림없었다.

지인의 도움으로 부랴부랴 서둘러 목동 선병원 응급실로 갔다.



응급실서 하룻밤을 뜬 눈으로 새웠다. 다음날 각종 검사를 받고 입원을 했다. 의사선생님 하시는 말씀이 "요로결석증도 급하지만 전립선에 문제가 있으니 조직검사를 해봐야겠습니다"라고 했다.

대전에 사는 딸과 서울에 있는 아들이 놀라 뛰어왔다. 학교 출근도 못한 채 연가를 내고 부랴부랴 뛰어 온 것이었다. 1주일 내내 딸이, 출근 전에도, 퇴근 후에도 다녀갔다. 대견스러우면서도 안타까웠다.



드디어 검사 결과를 알려주는 날이 왔다. 서울 사는 아들, 대전 있는 딸이 초조한 낯빛으로 곁에 서 있었다. 무슨 선고라도 받는 듯한, 긴장한 순간이었다. 곁에 있는 자식들이 든든하기 이를 데 없었다. 아들딸이 울타리 같아 적이나 안심이 되었다. 드디어 의사 선생님이 입을 얼었다. 중형선고를 받는 것 같은 순간이었다.

"psa 수치가 235, 전립선 암 4기이지만 전이는 되지 않았습니다."

필경 혹시나 했던 마음이 무너졌다. 안색이 변했다. 고개를 떨궜다. 흘낏 보니 자식들이 한숨만 쉬고 있었다. 낯빛이 사색이 된 채 어떤 말도 잊은 듯 했다.

낯빛이 안 좋은 자식들을 보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한 마디 했다.

"이 아비도 암 4기라는 의사 선생님 말씀에 처음은 낙심을 했다. 하지만 전립선암은 타 암과는 달라 수술 후 예후도 좋고, 착한 암이라 들었다. 이 아비 그렇게 약한 사람 아니다. 나 이 병으로 쓰러지지 않는다. 해오던 모든 활동 정상으로 할 거다. 복통으로 응급실 왔다가 생각지도 않은 전립선암을 전이가 안 된 상황에서 알게 됐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너희들도 한숨만 쉬지 말고 힘내어라."

아비의 말에 안심이 됐는지 애들의 한숨이 그쳤다. 안색까지 밝아졌다. 남매가 하는 말이 "서울 큰 병원 가야 한다"며 인터넷 검색에 바빴다. 천우신조인지 아산병원에 예약이 되었다. 날짜까지 8일째로 잡혔으니 이 어찌 감사할 일이 아니겠는가!

이렇게 해서 정해진 날짜에 내원하여 진료를 받았다. 혼자 병원에 다녔더라면 서울 지리에 어두워 고생을 많이 했을거다. 게다가 복잡한 병원구조 건물 속에서 어지간히 더듬벅거리고 힘들었을 것이다.

'자식의 울타리가 이렇게 든든할 줄이야!'

대전서 서울까지 그 먼 병원 오고갈 때는 아들딸이 함께 했다. 진료 받을 때마다 곁에는 아들딸이 늘 그림자로 와 있었다. 여러 번 내는 연가에 학교장이나 교감, 동료교사들의 눈치도 봤을 것이다. 자식이지만 고맙고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어려서는 남매가 다투기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사이좋게 이 아비한테 효도하느라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일거수일투족이 마냥 대견스럽고 자랑스럽다. 검사를 받는 곳마다, 의사선생님의 진료를 받을 때마다 내 곁에는 믿음직한 울타리가 있었다. 곁을 지키는 남매 울타리의 얼굴을 보는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순간순간이 오버랩 되어 날 울리고 있었다.

결혼 4년 만에 낳은 아들이 가져다 준 농장지경(弄璋之慶 :아들 낳은 즐거움)으로 아내와 함께 기뻐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아들이 꼬마 6살 때, 세발자전거 타고 놀던 모습도 떠올랐다. 놀이터에서 놀다가 들어오지 않아 유괴당한 줄 알고 신고한 일도 생각났다. 실종신고로 대동 동사무소가 확성기 방송을 했다. 요란한 확성기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아들 서울대학 합격소식으로 아내와 밥 먹다 눈물을 흘리며 좋아하던 모습도 떠올랐다. 아들을 데리고 인사를 가 담임선생님 앞에 서울대합격증을 놓고 큰절을 시키던 모습도 보였다. 음수사원(飮水思源)을 가르치기 위해 아들과 함께 선영에 갔다. 상석 위에 서울대합격증을 놓았다. 조상님께 감사하는 절을 올렸다. 모두가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또 딸의 어렸을 때 모습이 살아났다. 산부인과에서 낳았을 때 숨이 고르지 못하고, 호흡 상태가 좋지 않았다. 초조한 마음으로 애를 태웠다. 원장님이 "아기에겐 인큐베이터가 필요한데 그게 없다"라고 했다. 다급한 생각에 고3 때 내 반 학부형이었던 방소아과 원장님을 찾아갔다. 덕분에 딸이 위기에서 살아났다.

말하자면 딸애의 생명의 은인이 방소아과 원장님인 셈이었다. 그래서 아내는 계제가 될 때마다 "우리 보라가 시집가기 전에 생명의 은인, 방소아과 원장님을 꼭 찾아뵈어야 하는데…"하며 되뇌는 말을 종종 했다.

감사라도 드리고 싶은 심정에 은행동 천변에 있는 방소아과를 찾았다. 하지만 이사로 그 종적을 알 수가 없었다. 몇 년째 수소문으로 사시는 곳을 알아냈다. 날짜를 잡아 딸을 데리고 방원장님을 찾아뵈었다. 승용차 트렁크 속에는 처가에서 주신 참깨 1되, 숙모님이 주신 검정콩 1말, 마늘 1접, 옆에는 딸애가 실을 사다가 뜨개질로 만든 장갑 한 켤레가 자리를 함께하고 있었다. 30년 만에 딸 생명의 은인을 찾아뵙는 게 왜 이리 좋은지 몰랐다. 원장님 내외분은 무척 좋아하셨다.

이렇게 자란 아들과 딸이 암 환자인 나를 지키고 있다. 아니, 울타리가 되어 나를 든든하게 보호해 주고 있다.

나의 든든한 울타리 나의 분신이여! 너희 남매가 세상에 처음 태어났을 땐 농장지경으로, 농와지경으로 첫 기쁨을 주더니 이제 철들은 나이엔 울타리가 되어 날 든든하게 하는구나. 금쪽같은 내 새끼 두 남매야, 같은 엄마 젖 먹고 자란 것을 생각하여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따뜻한 가슴으로 살아라. 내 울타리가 돼 준 것처럼 빈자들한테도 따뜻한 장갑이 되어라.

영민아, 보라야! 많이 고맙다. 너무 든든하다. 하늘땅땅만큼 사랑한다.

'자식의 울타리가 이렇게 든든할 줄이야!'

남상선/수필가, 대전가정법원 전 조정위원

남상선
남상선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2026년 부동산 제도 달라지는 것은?
  2. 李대통령 대전충남 與의원 18일 만난다…통합 로드맵 나오나
  3. 세종시 합강동 스마트시티, 'L1블록 643세대' 본격 공급
  4. 대전에 고성능 AI GPU 거점센터 구축... 글로벌 AX 혁신도시 거듭
  5. "내년 대전교육감 선거 진보 단일후보 필요"… 대전 시민단체 한목소리
  1. "초고압 송전설로 신설 백지화를" 대전시민단체 기자회견서 요구
  2. 대전권 9개 대학 주최 공모전서 목원대 유학생들 수상 영예
  3. 박정현 "기존 특별법, 죽도 밥도 안돼"… 여권 주도 '충청통합' 추진 의지
  4. 충남개발공사 '고객만족경영시스템' 국제표준 인증 획득
  5. [부고]김창세 세무사 빙모상

헤드라인 뉴스


李 "내년 지선 때 대전 충남 통합 단체장 뽑아야"

李 "내년 지선 때 대전 충남 통합 단체장 뽑아야"

이재명 대통령은 18일 대전 충남 통합과 관련 "다가오는 지방선거에 통합된 자치단체의 새로운 장을 뽑을 수 있게 중앙정부 차원에서 실질적이고 실효적인 행정 조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더불어민주당 대전 충남 의원들과 가진 오찬에서 "수도권 과밀화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시·도간) 통합을 고려해 봐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고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 서면 브리핑에서 전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충청권 최대 이슈로 떠오른 대전 충남 통합에 대해 국정 최고책임자가 사실상 전폭 지원사격을 약속한..

`2025 도전! 충청남도 재난 안전 골든벨` 성료… 퀴즈왕 주인공은?
'2025 도전! 충청남도 재난 안전 골든벨' 성료… 퀴즈왕 주인공은?

청양 목면초등학교 4학년 김가율 학생이 2025 충남 재난 안전 퀴즈왕에 등극했다. 충청남도, 중도일보가 주최하고, 충남교육청, 충남경찰청이 후원한 '2025 도전! 충청남도 재난 안전 골든벨'이 18일 예산 윤봉길체육관에서 열렸다. 이번 골든벨은 충남 15개 시군 퀴즈왕에 등극한 학생 및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들이 모여 충남 퀴즈왕에 도전하는 자리로, 272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행사엔 전형식 충남도 정무부지사, 남도현 충남교육청 기획국장, 김택중 예산부군수, 유영돈 중도일보 사장, 최재헌 중도일보 내포본부장 등이 참석해 퀴즈왕..

충남 천안·보령 산란계 농장서 고병원성 AI 의사환축 잇따라 발생
충남 천안·보령 산란계 농장서 고병원성 AI 의사환축 잇따라 발생

충남 천안과 보령 소재 산란계 농장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H5형)가 잇따라 발생했다. 충남도에 따르면 17일 충남 보령시 청소면, 천안시 성환읍 소재 농장에서 폐사가 증가한다는 신고가 접수돼 동물위생시험소가 확인에 나섰다. 충남 동물위생시험소가 18일 확인한 결과, H5형이 검출돼 농림축산검역본부에 고병원성 여부 검사를 의뢰했다. 검사결과는 1~3일가량 소요될 예정이다. 성환읍 소재 농장은 과거 4차례 발생한 사례가 있고, 청소면 농장은 2022년 1차례 발생한 바 있다. 현재 성환읍 소재 농장에서 사육 중인 가금류 22..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

  • 딸기의 계절 딸기의 계절

  •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