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6월 어느날

  • 오피니언
  • 세상읽기

[세상읽기] 6월 어느날

황미란 편집부장

  • 승인 2025-06-11 13:11
  • 수정 2025-06-11 13:17
  • 신문게재 2025-06-12 18면
  • 황미란 기자황미란 기자
KakaoTalk_20230222_145127024
황미란 편집부장
이른 아침, 바람이 조금 더 묵직해졌다. 담장을 타고 오른 탐스런 장미꽃, 그 아래 이름 모를 풀꽃이 한껏 수줍다.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에 여름은 점점 더 또렷해진다. 계절은 더딘 듯해도 제 때를 잊지 않는다. 거리의 옷차림이 가볍다. 어김없이 찾아온 다이어트의 계절. 누군가는 저녁 대신 샐러드를 먹고, 누군가는 운동장을 뛰며 군살을 태운다. 해마다 반복되는 의식처럼….

최근 길거리에서 불시에 '비만 검문'을 시작한 나라가 있다. 인구 약 32%가 비만인 튀르키예. 보건당국이 문제를 해결해보고자 길거리와 광장 등 공공장소에서 시민들의 키와 몸무게를 측정하는 캠페인을 도입했다. 과체중으로 판정된 사람은 영양사와의 상담과 모니터링을 받게 된다. 캠페인은 한시적이지만 국민들의 반발이 만만찮은 모양이다.

2050년에는 전 세계 성인의 약 60%가 과체중 또는 비만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듯, 살과의 전쟁은 개인의 문제를 넘어선 지 오래다. 일본에선 2008년부터 '비만금지법'을 시행중이다.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에 근무하는 40세 이상 직장인의 복부 둘레를 매년 측정해 관리하는 법이다. 남성의 배 둘레가 85㎝, 여성은 90㎝가 넘으면 소속 기관에 벌금을 부과하는 방식이다. 기준 수치는 국제당뇨병연맹의 가이드라인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이 법은 개인 건강을 조직과 사회의 책임으로 확장한 대표 사례다. 미국, 유럽 각국에서도 탄산음료나 고열량 가공식품에 '비만세'를 부과하는 등 다양한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만병의 근원이라는 비만 퇴치를 위해 공공의 목표가 된 다이어트. 그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Diata'에서 비롯됐다. '육체와 정신의 균형 잡힌 삶'을 뜻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몸과 마음의 건강을 하나로 봤다. 근육질의 몸을 가장 아름답고 건강한 신체로 여겼으며, 그런 몸을 얻기 위해 개인 트레이너를 두고 체계적으로 몸을 가꿨다고 한다. 요즘 말하는 PT가 이미 그리스 시대부터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다.



중세시대에는 몸에 붙은 지방을 탐욕과 죄악의 상징으로 여겼다. 금욕적인 삶과 종교적인 영향으로 귀족들 사이에서는 소식하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으며, 일정기간 식사를 절제하는 단식도 유행했다. 여성들은 코르셋으로 허리를 조여 잘룩한 몸매를 만들었다. 소화불량, 갈비뼈 변형, 호흡곤란 등 심각한 부작용과 고통을 감내한 그야말로 피나는 아름다움 추구.

원푸드 다이어트, 저탄고지(저탄수화물·고지방) 다이어트, 심지어 간절한 마음으로 에너지를 소모하는 '기도 다이어트'까지, 지난 70여 년간 무려 2만 6000여 가지의 다이어트 법이 생기고 사라졌다고 한다. 몸에 붙은 불필요한 지방을 덜어내는 일, 어렵지만 건강한 신체, 만족도 높은 삶을 위해선 포기할 수 없는 일류의 숙명이 됐다.

벌써 6월, 새 마음, 새 각오로 시작한 365일의 반이 지나가고 있다. 흐르는 세월만큼 몸에 군살이 붙듯, 감정에도 구석구석 군살이 들러붙는다. 진짜 다이어트가 필요한 곳은 어쩌면 '마음'일지도 모른다. 서운함, 억울함, 외로움…. 온갖 마이너스 감정들은 이유 없이 몸과 마음을 무겁게 만든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무게를 키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롤러코스터를 타는 건 누군가의 말이나 행동 때문이라기보다 켜켜이 쌓인 감정들의 심술 때문이 아닐까?

좋지 않은 감정은 오래 머물수록 상하고, 상한 감정은 일상을 버겁게 만든다. '이해받고 싶다', '내 뜻대로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마음 속에 똬리 튼 지방. 지금이다. 감정 다이어트가 필요한 때. 누군가 그랬다. 감정을 다스리는 일은 억누름이나 회피가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을 잘 알아차리고, 그때 그때 소화하며 감정의 여백을 만드는 과정이라고….

햇살 좋은 오후, 아침에 마주쳤던 나뭇잎들이 어느새 더 단단해져 있다. 벌써 이글대는 태양과 비바람을 견뎌낼 채비를 했나보다. 저 나무들처럼 부지런히 몸에도 마음에도 더 단단한 근육을 키워야겠다. 황미란 편집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코스피 3년 5개월 만에 2900돌파
  2. 국간사 생도와 함께 하는 현충시설 환경정비 봉사
  3. 세종시 '중앙공원·장남평야'서 생물 341종 발견...다양성 확인
  4. [현장] "제방 복구 안 끝났는데…" 이른 장마 소식에 정뱅이마을 주민 한숨
  5. 대전지방보훈청-NH농협은행 대전본부, 보훈가족에 나눔행사
  1. 기초부터 확실하게… 한글책임교육으로 문해력 격차 줄인다
  2. [문예공론] 김선미 교장선생님의 슬기로운 은퇴생활
  3. 오석환 차관 "리박스쿨 논란 초교 10곳 교육 중립성 위반 문제점 확인안돼"
  4. 충남대병원, 공공보건의료 협력체계 구축 방안 세미나 개최
  5. 새마을금고중앙회-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 'AI 반려로봇' 전달식 진행

헤드라인 뉴스


본보 단독보도 `미카형 증기기관차 129호`… 문화유산 말소

본보 단독보도 '미카형 증기기관차 129호'… 문화유산 말소

국가유산청은 12일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에 포위된 미군을 구출하기 위해 투입됐다고 알려진 증기기관차에 대해 국가등록문화유산 등록을 말소했다. 중도일보가 단독 보도했던 역사적 진위논란에 대한 검증 작업을 벌여 이같이 결정한 것이다. 국가유산청은 129호가 '딘 소장 구출 작전'에 투입됐다는 사실과 다르다는 판단을 최종 내린 것인데, 철도 역사뿐만 아니라 대전의 상징물로 남아있는 만큼 파장이 예고된다. 12일 국가유산청은 관보를 통해 "기관차 129호가 실제 작전에 투입된 차량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며 "등록 사유에 오류가 있어 문화..

코스닥 상승 견인하는 대전 상장기업…시총 63조 원 돌파
코스닥 상승 견인하는 대전 상장기업…시총 63조 원 돌파

국내 주식시장이 최근 상승세를 타면서 대전의 상장기업 시가총액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최근 3년간 지역의 상장기업이 빠르게 증가하면서 시총 규모도 63조 원을 돌파했다. 이는 충청권 상장기업 전체 시총의 절반에 육박한다. 대전에 본사를 둔 항체약물접합체(ADC) 플랫폼 신약개발 기업 인투셀이 지난달 23일 코스닥 시장에 상장하면서 지역 상장기업 수는 66개로 늘었다. 2015년 설립한 인투셀은 리가켐바이오 공동 창업자 박태교 대표가 설립한 회사로, 창업 10년 만에 코스닥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인투셀은 상장 첫날 공모가..

대통령실 “대통령 철학 담은 스마트워치·스마트폰 배경화면 배포”
대통령실 “대통령 철학 담은 스마트워치·스마트폰 배경화면 배포”

대통령실은 12일 “국민과 함께 만드는 디지털 기념품인 '대통령 디지털 굿즈'를 공식 공개하고 배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프로젝트는 누구나 일상 속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우선 스마트워치 배경화면과 스마트폰 배경화면으로 배포한 후 향후 실제 워치페이스로 사용할 수 있는 전용 파일을 공식 채널을 통해 순차적으로 배포할 계획이다. 굿즈 디자인에는 대통령 휘장과 서명, 자필 문구 등을 시각적으로 반영하며, 기존의 비공식 이미지 배경화면과는 구분되는 공식 디지털 콘텐츠로 제공한다. 특히 취임식 미공개 사진과 G7 정상회의 등 외교 현장..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선생님 저 충치 없죠?’ ‘선생님 저 충치 없죠?’

  • ‘고향에 선물 보내요’ ‘고향에 선물 보내요’

  • 대전에서 잡(JOB)는 내일 대전에서 잡(JOB)는 내일

  • 국간사 생도와 함께 하는 현충시설 환경정비 봉사 국간사 생도와 함께 하는 현충시설 환경정비 봉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