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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태 교수 |
역사적으로 고부담 평가는 그 결과가 오남용될 때 막대한 부작용을 불러일으켰다. 성경 사사기 12장에는 이스라엘 내전에서 패잔병들을 색출하기 위해 발음을 시험한 이야기가 나온다. 패잔병들에게 '쉽볼렛'이란 단어를 말하게 하고, 이를 '십볼렛'으로 발음하면 곧바로 처형시켰다. 그로 인해 목숨을 잃은 이가 무려 4만 2000명에 달했다. 이는 언어평가가 인간의 존엄과 생명을 송두리째 앗아간 최초의 사례라 할 수 있다.
근대 사회에서도 평가는 권력의 정치적 의도에 봉사하는 장치로 활용됐다. 1901년부터 1958년 폐지될 때까지 시행되었던 '받아쓰기시험'은 백호주의 정책하에 비유럽인의 이민을 막기 위한 대표적인 수단이었다. 이 시험은 영어가 아닌 불특정 유럽 언어로도 실시가 가능했다. 입국심사관이 임의로 선택한 언어로 50단어 문장을 불러주면 이민 신청자는 그것을 정확히 받아써야 했다. 결과는 뻔했다. 아시아인과 비유럽인의 이민은 거의 차단됐다. 언뜻 보면 중립적인 평가 도구가 사실상 차별과 배제의 제도적 장치로 악용된 것이다.
1927년 미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캐리 벅 사건도 평가 오남용의 상징적 사례였다. 당시 법원은 우생학자들의 주장에 근거하여 "바보는 3세대로 충분하다"라며 캐리 벅의 강제 불임수술을 합법으로 판결했다. 사실 캐리와 어머니 엠마, 딸 비비안의 지능이 낮다고 판단했던 근거는 왜곡된 기본지능검사의 결과였다. 그러나 나중에 캐리와 비비안은 정상적인 지능을 가진 것으로 판명되었다. 왜곡된 평가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한 판결은 결국 수만 명의 강제 불임수술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
이처럼 평가는 역사적으로 한 사회에서 권력의 필요에 따라 조작되고 남용되어 왔다. 그리고 그 피해는 언제나 힘없는 개인과 소수자에게 돌아갔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 사회는 어떤가? 대학입시제도를 둘러싼 현실을 들여다보면, 과거의 사례와 정확히 닮아 있다.
한국의 대학입시는 수시와 정시로 운영되며, 수능은 단 한 번의 시험으로 학생의 대학 진학을 사실상 결정짓는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인생이 걸린 시험'이라는 압박감 속에서 수년간을 살아간다. 수능이 단순히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지위를 결정하는 관문으로 기능한다. 이로 인해 입시는 계층 재생산의 도구가 되고, 대학 서열화와 계급화를 더욱 공고히 하는 기제로 작동한다.
그 과정에서 교육 본연의 목적은 뒷전으로 밀려나 학생들은 창의적 문제 해결력이나 협업 능력 대신, 문제풀이 기술을 익히는 데 몰두한다. 예체능과 인성 교육은 소외되고, 오직 점수만이 학생을 평가하는 기준이 된다. 그 부작용은 청소년들의 정신건강 악화로 이어져 매년 증가하는 우울증, 불안장애, 극단적 선택의 원인이다. 동시에 사교육 과열은 가계 부담을 키우고, 계층 간 교육 격차를 더욱 심화시킨다.
이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왜 역대 정부는 수십 년 동안 '입시지옥 해소'를 약속했으면서도 근본적인 변화를 이루지 못했는가? 그 배경에는 대학 서열 체계와 이를 둘러싼 정치적 이해관계가 뿌리 깊게 얽혀 있다. 대학입시제도의 개혁은 단순히 시험방식을 바꾸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 구조와 권력 관계를 건드리는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더욱 투명한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평가는 인간 사회에서 없어질 수 없는 제도다. 수능을 포함한 현행 입시제도가 가진 모순과 부작용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역사가 가르쳐준 교훈은 분명하다. 평가가 권력의 도구가 될 때 사회는 병들고, 결국 피해는 미래 세대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용기 있는 질문과 실질적 변화다. 우리는 고부담 평가의 역사적 교훈을 거울삼아 AI 시대에 걸맞는 학생 개개인의 다양성과 가능성을 존중하는 새로운 평가체제를 만들어가야 한다. 평가가 더 이상 두려움의 이름이 아니라 희망을 열어주는 또 하나의 기회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김정태 배재대학교 글로벌자율융합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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