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내 마음속 새겨진 한 문장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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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내 마음속 새겨진 한 문장을 찾아서

김태열 수필가

  • 승인 2025-12-08 16:22
  • 신문게재 2025-12-09 19면
  • 조훈희 기자조훈희 기자
풍경소리 김태열 수필가
김태열 수필가
암벽 등반가들이 암벽을 탄다. 암반에 앵커를 하나씩 박고 로프를 걸고 조금씩 위로 전진한다. 정상을 쳐다볼 수 없다. 오직 지금 여기에만 집중하며 오르고 또 오른다. 시각장애인들의 글쓰기는 '클라이밍(암벽 등반)'과 닮았다. 기억 속에서 떠오르는 단어에 의지해 한 글자 한 글자씩 마음에 새기며 생각을 이어 나간다. 그 생각의 한 묶음을 말로써, 점자로써, 희미한 시력에 의지해 기어코 문장을 만든다. 글을 쓰면서 부딪히는 어려움에 대해 인생살이처럼 '막혔다고 생각한 문에서 또 다른 문이 열렸다'고 말한다. 내면에서 일어나는 생각은 자기를 짓누르는 어둠의 편견으로부터 자유의 빛을 보려는 몸짓이자 나답게 살려는 몸부림이다.

시각장애인들과 '나도 작가다'라는 인연을 맺은 지가 어느덧 육 년이 되었다. 삼 년이 되었을 때 그들의 아픔을 뚫고 나온 이야기가 '어둠도 빛이더라'라는 책으로 엮어졌다. 그리고 또 삼 년이 흘러 '어둠도 빛이더라, 또 다른 이야기'가 출간하게 되었다. 나는 앞이 보이지 않아 기억의 어둠 속에 고여 있는 아픔과 좌절, 기쁨과 희망까지도 끄집어낼 수 있도록 도왔다. 그리고 그 작가들에게서 글쓰기의 가장 기본인 진심과 삶의 자세인 버텨내기를 배웠다. 자신들의 이야기가 책으로 세상과 이어졌다고 좋아하는 모습에서 새삼 글쓰기의 보람이 뭉글뭉글 피어올랐다.



제2의 스티븐 호킹이라고 일컫는 카를로 로벨리의 '무엇도 홀로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세계를 연결하는 아주 작은 호기심만 있다면 우리는 알지 모르지만 세상의 무수한 것과 연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줄기에서 갈라져 나왔지만 제각각 다른 나뭇가지의 잎처럼 다양한 관점을 가졌다. 자칫 눈앞의 이해관계에만 빠지면 서로서로 분리되기 쉽다. 한 편의 진심 어린 글은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로 12월의 첫눈처럼 살며시 다가가 감정을 이어줄 수 있는 소박한 안부일지 모른다.

글쓰기는 우물처럼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생각의 파편들을 이어 옷을 만드는 것과 같다. 경험의 깊이와 넓이가 곧 글쓰기의 공간이기에 호기심 어린 눈으로 관찰하고 책과 신문, SNS, 유튜브도 보고, 돌아다녀서 세상의 변화를 이해해야 한다. 무엇보다 내면으로 침잠하여 침묵 속에서 응시하는 힘이 필요하다.



하지만 세상은 나를 알리려는 저마다의 소리와 메시지로 가득 차 있다. 그럼에도 자기와 대화를 나누기에 가장 좋은 벗은 고독이다. 고독 속에 나를 가두는 힘이 없다면 적어도 진심 어린 글은 되지 않는다. 진심이 담겨 있지 않으면 뻔하거나 번지르르한 글이다. 그런 글을 가장 잘 쓰는 친구는 생성형 AI일 것이다. 개인적인 서사와 감정을 담은 글은 AI에게 어려울 테다.

한 편의 글을 쓰는 일은 쉽지 않다. 주제를 선정하고 단어를 연결하여 문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기 안에 있는 자만감과 비하감, 무용과 유용, 지(知)와 무지의 경계에서 번민하는 나를 보게 된다. 자기 안에 있는 한계를 보고 그 한계 너머를 꿈꾸면서 어디까지가 나의 앎이고 그 앎이 과연 자기의 삶에서 절실했는가를 겸허하게 질문을 던지는 시간도 필요하다.

우리가 일상에서 늘 쉬는 숨은 한 번도 쉬겠다는 의도 없이 그냥 쉬어진다. 숨은 내 것이 되려고 오지도 않았고 그냥 나의 몸에서 바람처럼 흘러 들어왔다 나갈 뿐이다. 우리의 삶도 그렇고 한 편의 글도 마찬가지다. 수많은 조건 속에서 마음속에 우연히 일어난 생각과 감정은 사유의 담금질을 통한 글로 다시 누군가의 마음에 흘러 들어가 하나의 실마리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달랑 한 장 남은 달력이 안쓰럽다. 관세 협상, 고환율, AI 열풍 속에 힘든 2025년이었다. 인생은 강물과 같다. 우리 모두 쉼 없이 흘러가는 흐름에서 물거품처럼 일어났던 순간의 기억을 기록하는 지금이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때인지도 모른다. 올해가 가기 전 마음속에 자신도 모르게 새겨진 단어나 문장을 발견하여 한 편의 글로 써보는 값진 시간을 가져보시기를! /김태열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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