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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희 다산연구소 이사장이 다산학당 목민관에서 ‘다산의 일생과 학문'을 제목으로 특강하고 있다. 사진=한성일 기자 |
“다산의 일생은 영광과 좌절, 그리고 기다림의 생이었습니다.”
김태희 다산연구소 이사장이 2일 오후 7시 목원대 신학대학 1층 A113호에서 열린 도시공감연구소(이사장 송동섭, 소장 김창수), 목원대학교(총장 이희학), 다산연구소(명예이사장 박석무. 이사장 김태희) 공동주관 다산학당(학장 김갑동) 목민반에서 ‘다산의 일생과 학문'을 제목으로 한 특강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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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희 다산연구소 이사장이 다산학당 목민관에서 '다산의 일생과 학문'을 제목으로 특강하고 있다. 사진=한성일 기자 |
이준건 도시공감연구소 부소장의 사회로 열린 이날 특강에서 김태희 이사장은 다산에 대해 “회갑을 맞아 자찬 묘지명을 스스로 썼고, 기호남인이자 정치적 소수파로서 천주교를 만났고, 정조와의 만남은 풍운지회였다”고 설명했다. 또 “신유박해라 불리는 남인 세력 제거에 휘말려 강진으로 유배당했고, 다산초당은 역경 속 성취의 공간이었다”고 말했다.
김태희 이사장은 “다산초당에서 정약용은 여유를 찾았고, 이러한 여유가 큰 힘이 되어 이 곳은 정약용과 제자들이 학업을 정진하는 연구공간이 되었다”고 전했다. 또 “다산의 학문은 수기와 치인의 학문이었다”며 “500여 권의 방대한 저술을 했고, 수기의 경학과 치인의 경제학을 본과 말로 연결시켰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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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희 이사장이 ‘다산의 일생과 학문’을 주제로 특강하고 있다. 사진=한성일 기자 |
김 이사장은 “성기호설은 다산 심성론의 핵심 개념”이라며 “그는 성에 대해 선을 좋아하고 악을 부끄러워하는 기호의 경향으로 보았다”고 말했다. 또 “다산은 인의 개념에 대해 사람과 사람이 자기 분수를 다하는 것을 인이라고 한다”며 “옛사람들이 남을 사랑하는 것을 인이라 하고, 나를 착하게 하는 것을 의라고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산은 ‘자찬묘지명’에서 아버지를 섬길 때 효가 인이요, 형을 섬길 때 공손함이 인이요, 임금을 섬길 때 충청스러움이 인이요, 벗을 사귈 때 신의가 인이요, 백성을 다스릴 때 자애로움이 인이라고 썼다”고 소개했다. 특히 “성리학에서 인을 사람의 마음속에 내재한 본성이나 우주적 가치로 본 데 반해서, 다산은 인을 두 사람 사이의 실존적 관계 속에서 외부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인륜 문제로 보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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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태희 이사장이 정약용의 이름들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한성일 기자 |
그는 “성리학의 사변적인 논의를 비판하며 구체적 실천성을 강조한 것이 다산 경학의 특징이고, 다산의 경학은 경세학의 기반이 되었다”며 “260여 권의 다산 문집 중 <경세유표>는 관직 제도, 지방 행정, 토지 제도, 세금과 부역, 조세와 시장, 창고와 군사, 과거 제도, 해상 세금과 상업 세금, 말 관리와 배 만드는 법, 도성 경영 등에 대해 쓴 책”이라고 소개했다. 또 “<목민심서>는 지금 시행 중인 현실의 법 테두리 안에서 어떻게 고통받는 백성들을 잘 돌볼 것인가를 다룬 책”이라며 “율기, 봉공, 애민을 3대 강령으로 삼고, 옛날부터 지금까지의 훌륭한 사례를 모으고, 관리들의 간사한 비리 수법을 낱낱이 파헤쳐 목민관에게 지침으로 줌으로써 단 한 명의 백성이라고 그 혜택을 입은 자가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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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학당 목민반 9기 참여자들이 김태희 이사장과 함께 기념촬영하고 있다. |
이어 “<흠흠신서>는 사람의 목숨이 달린 형사 사건을 다루면서도 제대로 된 판결을 내리는 관리가 너무나 적어 경전과 역사서의 법 원리를 바탕으로 삼고, 역대 명판결문을 보조자료로 삼으며 실제 수사 기록을 증거로 삼아 하나하나 헤아리고 평한 책”이라며 “다산은 이를 재판관들에게 주어 억울하게 목숨을 잃거나 옥살이하는 백성이 없기를 바랐다”고 소개했다.
한성일 기자 hansung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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