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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시 중구 석교동에 소재한 '봉소루' /사진=한소민 소장 |
조선 인조 때의 학자이자 교육자인 남분붕(1605~1674) 선생은 관직에서 물러난 뒤 보문산 남쪽 자락에 봉소루를 짓고 후학을 가르치며 유유자적한 삶을 보냈습니다. 선생은 틈틈이 낚시를 즐겼지만 잡은 물고기를 살려주곤 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유난히 커다란 잉어 한 마리를 잡았다가 다시 놓아주었는데, 잉어는 인사라도 하듯 물가를 한참을 맴돌다 깊은 물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선생의 꿈속에 나타나 '개울에 다리가 없어 사람들이 건너기 어려우니 조금 아래에 있는 큰 바위를 찾아 다리를 놓으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이튿날 그곳에 가 보니, 과연 잉어가 일러준대로 커다란 바위를 찾을 수 있었지요. 선생은 바위를 개울로 옮기게 해 다리로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주민들은 편하게 오갈 수 있게 되었지요. 이때부터 이곳은 돌다리가 있는 곳이라 하여 '돌다리마을'이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석교동이라는 지명의 시작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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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소루 앞 대문과 봉소루 모습 사진=한소민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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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소루에서 바라본 녹음이 싱그럽다. 사진=한소민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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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전시 중구 석교동행정복지센터 앞에 있는'석교동' 돌다리 전설을 상징하는 유래석과 설명문 사진=한소민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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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한소민 소장 |
사람들은 왜 이런 이야기들을 즐겨 전해왔을까요? 동물 보은설화는 생명을 가진 모든 존재는 크건 작건 간에 서로 감응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도움 받은 것에 보답해야 한다는 도리가 담겨 있습니다. 은혜를 잊지 않는 동물들을 통해 인간이라면 마땅히 지녀야 할 보은의 마음을 일깨우며, 배은망덕한 인간을 꾸짖고 우리의 이기심의 되돌아보게 하기 위함이었지요.
석교동 돌다리 전설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대부분의 보은설화가 주인공 개인의 물질적 풍요나 가문의 영광으로 끝나는 데 비해 남분붕 선생이 받은 보답은 마을 전체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평소 마을 주민들의 어려움을 세심히 살피며 공동체의 안녕을 헤아렸던 마음 씀씀이와 봉소루를 지어 향촌 교육에 힘 썼던 그의 덕망이 투영된 것일 테지요.
잉어가 전해준 보은이 돌다리가 된 마을에 수많은 세월이 흘러 풍경은 많이도 변해 버렸습니다. 개울은 자취를 감추었고 돌다리도 그 자리를 벗어났지요. 하지만 석교동이라는 이름만큼은 여전히 살아남아 아름다운 옛 이야기를 기억하게 합니다. 돌다리 남씨라 불리는 고성남씨 후손들 또한 선조가 남긴 자비의 이야기들을 오늘날까지 소중하게 전하고 있지요.
언덕 위 아늑하게 자리한 봉소루에 올라 불어오는 바람을 맞이합니다. 눈부시게 싱그러운 오월이네요.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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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소민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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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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