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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천 고모저수지. (사진= 김영복 연구가) |
삼국시대는 고모리에서 비득재를 넘어 퇴계원을 지나면 한성백제로 통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진출하려는 고구려나 남쪽에서 북쪽으로 북진하려는 백제, 신라 등은 모두 비득재를 이용했다.
'비득재'는 고모리로 통하는 장령(長嶺)의 모습이 흡사 비둘기가 나는 모습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한자로는 구현(鳩峴)이라고 한다.
이곳은 교통의 요지로 방어를 목적으로 고모산(古毛山, 해발 386.5m) 정상부를 둘러쌓아 고모리 산성을 축조했다.
경기도 기념물 제185호로 지정된 이성(城)의 성곽은 대부분 붕괴되어 정확한 성벽을 확인하는 것은 어려운데, 이성의 전체 둘레는 822m이며 대부분 흙으로 쌓은 토성이고, 일부분에서 흙과 돌을 함께 사용한 흔적이 확인된다. 성의 전체적인 형태는 남북으로 길고, 남쪽이 높고 북쪽이 낮은 형상을 하고 있다. 이는 남쪽 한강 일대에서 북쪽 포천, 철원으로 침입하는 적을 방어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고모리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바라보면 정면은 고모산이고 왼쪽은 산의 형태가 대나무 잎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죽엽산, 오른쪽은 향적산이다.
죽엽산과 고모산은 산세가 웅장하고 능선이 뚜렷하다면 향적산은 찾는 이가 거의 없는 등산객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다.
서울에서 30~4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이곳 고모리(古毛里)는 고모리는 '효부 고 씨 할머니의 묘 앞이라 하여 묘앞 또는 고뫼앞, 고모동'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고모리에 있는 노고산은 어떤 사람이 늙은 고모님[姑, 할미]을 모시고 그 산 밑에 살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인데, '늙을 노'[老] 자와 '고모 고'[姑] 자를 합친 것이다. 이 불쌍한 할미가 외로이 세상을 떠났는데 이 할미를 매장한 묘 앞에 개설된 마을이라 하여 이곳을 '고뫼앞'이라고 하고 고묘(姑墓)·고모(古毛)라 쓰기 시작하면서 마을 지명으로 사용되었다는 설이 있다. 『한국 지명 총람(韓國地名總覽)』에 "고모리를 묘앞·고뫼앞·고모동으로도 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고모리의 한자명 古毛里는 고모(姑母)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물론 '비득재'와 마찬가지로 새가 높은곳에서 춤을 추다는 의미인 고무(高舞)의 발음이 변화된 것으로 새가 나는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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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쟁이 할머니집. (사진= 김영복 연구가) |
고모저수지 주변에 조성된 호수주변공원은 경기도 포천시 고모리 죽엽산(해발 600m) 중심부에 있는 공원이다. 면적 0.18㎢에 저수량 1,300톤 규모이다. 이 고모호수공원 둘레길'은 물결 위로 비치는 윤슬과 숲의 정취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이곳의 매력을 지닌 곳으로 약 2.6km의 길이로 성인 걸음으로 천천히 걷다 보면 40분에서 1시간 정도 소요되는 부담 없는 코스로 호수 위를 걷는 듯한 수변 데크길과 싱그러운 나무 사이를 지나는 숲길이 조화롭게 섞여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둘레길 주변에는 광장, 분수대, 쉼터, 운동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분수는 4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 휴일 12:00~17:30에 30분 간격으로 가동한다고 한다. 주변에 카페 갤러리, 레스토랑 등이 많아 나들이 겸 산책코스로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다.
고모리에는 욕쟁이할머니 정류장이 있다. 정류장 근처에 '욕쟁이할머니집'이라는 식당이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그만큼 이 집은 유명한 맛집이다.
욕쟁이할머니집은 우선 가게 건너편에 널직한 주차장이 있어 주차가 용이하다.
매일 오전11시에 문을 열고 저녁 8시까지 손님을 받는다.
필자도 오래전부터 이 집의 단골이 되었고 어떤 손님을 데리고 와도 누구하나 이 집 음식이 맛없다는 소리를 들어 본적이 없다.
두부김치는 물론 들기름 두부, 감자전은 막걸리 주전자를 비우게 하는 최상의 안주다.
뭐니뭐니해도 이 집 주 메뉴는 시래기 정식 등 시골집에서 먹을 수 있는 소박한 백반이다.
시래기 정식과 참숯불고기를 시켰다. 반찬 가짓수가 제법 많다. 호박, 콩자반, 깻잎, 가지무침, 콩나물, 도라지무침, 고추장아찌, 미역줄기, 나물무침, 마늘종, 김치 등과 청국장, 콩비지찌개까지 어느 것 하나 입에 맞지 않는 반찬이 없었다.
특히 조미료를 거의 넣지 않는 음식이라 자극이 확실히 덜했고, 밥을 먹고도 속이 더부룩하지 않아 좋았다. 특히 흰 콩비지가 무척 고소하고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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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래기 정식. (사진= 김영복 연구가) |
이 집은 해마다 일년 치 시래기를 며칠에 걸쳐 삶는다. 그 광경이 지나 가는 행인도 멈춰 세울 만큼 실로 대단한 볼거리라고 한다.
강원도 철원의 약 7천여평 무밭에서 거둬온 양만 해도 무려 5톤 트럭 6대 분량이라고 한다.무청은 시래기로 사용하고, 무는 깍두기와 절임 무로 알뜰하게 쓰이니 하나도 버릴 게 없다.이곳의 시래기는 삶지 않은 싱싱한 무청을 통풍이 잘되는 그늘에서 20일 정도 말리거나 무청을 삶아 소금에 절여 창고에 저장한 것들이라고 한다. 이른 새벽부터 참나무 장작불에 무청을 삶는데 그 양이 많다 보니 보통 일이 아니다.
이 집의 시래기는 검은 빛을 띄고 맛있게 곰삭아 입안에서 살살 녹는다고 해도 과한 표현이 아니다.
우리는 보통 무청 말린 것은 시래기, 배춧잎 말린 것은 우거지라고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무청이나 배추 잎을 말린 것을 '시래기'라고 되어 있다.
그렇지만 입의 시래기는 무청 말린 것임에 틀림 없다.
청(菁)은 무를 말하고, 무(蕪)는 '무성하다' 또는 '풀이름'으로 무청(蕪菁)을 말한다.
무청 시래기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아 보자.
조선 후기의 문신 김진규(金鎭圭) 선생은『죽천집(竹泉集)』에 '食菁莖羹(식청경갱)시래기 나물죽을 먹으며'에 "나의 숟가락이 어찌하여 갑자기 씩씩한지? 이에 배가 비로소 가득 불렀다. 많은 돈을 써 한번 좋은 음식을 배불리 먹고 그치는데 다섯 솥이라도 최고의 음식에는 쓸데없다. 하늘의 천기는 도리어 즐기고자 하는 욕구라, 말린 고기의 해악은 진실로 놀란 만한 일이다. 만일에 이 맛을 알 수 있다면 온갖 일을 이루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누린내 비린내를 어찌 감당하리오. 비루한 안생이 비웃는다. 무슨 이유로 여럿이 공동으로 함께 먹는가? 온 세상 사람들이 어찌 나물국을 즐겨할까? 맛이 좋은데도 어찌 상대하지 말라 하는가? 말린 채소를 되돌아보기 위해 평(評)하노라."라며 "고기와 생선을 먹으면 죽은 음식을 먹는 것이고, 채소를 먹으면 산 음식을 먹는 것이다"라며 말린 채소인 시래기의 유익함을 강조했고,『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세조실록(世祖實錄) 1권, 세조(世祖) 1년(1455년) 7월 24일자를 보면 "蕪菁根爛蒸淹醬(무청근란증엄장)무청(蕪菁)의 뿌리(根)를 푹 쪄서 장(醬) 속에 담는다," 라고 나온다.
역시 예나 지금이나 음식 맛은 장(醬) 맛이라 하겠다.
이 집은 매년 담그는 햇장부터 3~4년 된 묵은 장 그리고 10년도 훌쩍 넘은 귀한 장까지 있어 간장과 된장이 음식 맛의 기본이 된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다 보니 벽에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다.
제목이 바로 [욕쟁이 할머니]다.
1시간 30분짜리 다큐멘타리 영화로 경기도 포천시에서 제작됐으며, 제10회 서울세계단편영화제 우수상을 받았다고 한다.
경기도 포천에서 된장 요리전문점을 운영하며, '욕쟁이 할머니'로 유명한 정의만(당시 92세)할머니와 막내아들 홍승표 화백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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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숯불고기. (사진= 김영복 연구가) |
정의만 할머니가 젊었을 적은 너나 할 것 없이 고생 안해 본 사람이 없을 정도인 시기였다.
충청도에 살면서 식모살이부터 안해 본 장사가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다 충청도에서 포천으로 이사와 부침개, 풀빵, 뱀까지 잡아 경동시장에 내다 팔았다고 한다.그러다. 식당 옆 작은 구멍가게에서 고모리 호수 낚시꾼들을 상대로 라면을 끓여주다가 된장찌개를 끓여 팔았는데 입소문을 타고 확장 이사를 하게 됐다. 고 한다.포천 고모리 욕쟁이 할머니 한식집은 외지인이 더 많이 찾는 곳이 되었다. 언론과 인터넷에 정갈한 음식과 할머니의 구수한 입담이 알려지면서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마치 어릴 적 이웃집 할머니처럼 친근하고 순박하지만 맛있고, 믿을 수 있는 반찬과 시래깃국 등은 가성비가 훌륭하여 수많은 마니아층까지 생겼다. 뭐니 뭐니 해도 이 집의 시그니쳐는 구수하고 묵직한 할머니의 입담이었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일일이 주방과 손님상을 챙기던 욕쟁이 할머니 '정의만' 씨는 이 집의 상징적인 존재였다.
그러나 2009년 장염으로 병원에 입원하면서 급격히 체력이 떨어져 주방일도 손님을 맞이하는 일도 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서예와 회화 부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막내아들 홍승표 화백은 이런 어머니의 모습이 안타까워 어머니 곁에서 어머니를 돌보며 한식집 운영에 참여하게 되었다.
병중에 계시면서도 식당에 나와 구수한 입담으로 손님들에게 후한 마음을 내 주시던 어머니에게 그림을 권하고 어머니의 소질을 알아 본 홍 화백은 이런 어머니의 그림으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또한, 어머니의 생에서 그림으로 마지막을 장식하던 시간을 엮어 단편 영화 '를 통해 욕쟁이 할머니의 삶과 인생을 잔잔하게 그려낸 영화다.
이 영화는 이미 2025년 1월23일(목) 오후6시에 건대입구역 롯데시네마 5관에서 상영한 바가 있다. 홍 화백은 이 영화를 전국의 영화관에서 상영을 할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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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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