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신화 읽기] 제23장-유천동 거리제와 선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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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신화 읽기] 제23장-유천동 거리제와 선돌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 승인 2026-08-11 10:21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대전 유천동의 선돌은 500여 년간 마을의 경계를 지키며 액운을 막아온 수호신으로, 주민들은 매년 정월대보름에 거리제를 지내며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도시 개발로 위치가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선돌은 여전히 주민들의 소망이 깃든 신성한 존재이자 공동체의 화합을 상징하는 중요한 매개체 역할을 합니다. 이는 고대 로마나 그리스의 경계신 신앙처럼 보금자리를 보호하려는 인류의 보편적 염원을 보여주며, 마을의 역사와 애환을 간직한 소중한 문화 자산으로 평가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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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중구 유천동 선돌 사진=한소민 소장
대전시 중구 유천동 행정복지센터 앞에는 선돌 하나가 세워져 있습니다. 유천동 주민들이 오랫동안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겨온 돌이지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윗부분에 사람의 눈과 코, 입을 닮은 부분이 엿보여 돌장승이 아닐까 추측하게도 됩니다.

선돌은 말 그대로 땅 위에 세워놓은 돌을 말합니다. 크기와 생김새는 저마다 다르지만 특별한 뜻이 담긴 돌이지요.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은 고인돌이나 거석을 세워 죽은 이를 기리거나 신성한 공간을 표시했습니다. 이후 농경사회에 들어서면서는 땅 위에 남성의 상징을 닮은 돌을 세워 풍요와 다산을 빌기도 했는데 대전 읍내동의 당아래 장승에서도 그러한 모습을 엿볼 수 있지요. 또 마을 어귀에 세운 돌은 잡귀와 질병이 들어오는 것을 막고 마을의 경계를 지키는 수호신이 되기도 했습니다.

유천동 선돌은 주민들의 안녕을 지켜주던 경계석이었습니다. 산신이 마을 전체를 굽어살피는 상당신이라면 마을 어귀의 선돌은 밖에서 들어오는 액을 막는 하당신이었죠. 원래는 태평초등학교 부근 중평과 하평 사이의 돌다리 앞에 있었는데, 마을이 개발되면서 여러 차례 옮겨졌고, 오늘날 유천2동 행정복지센터 앞에 자리하게 되었습니다.

유천동 주민들은 해마다 정월대보름 전날이 되면 선돌 앞에서 거리제를 지내며 마을의 질병과 사고는 막고 안녕과 풍요를 가져오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했습니다. 한때 중단되기도 했지만 1994년 버드내거리제보존위원회가 만들어지면서 그 전통을 이어가게 되었지요. 선돌 밑에는 이렇게 유래가 새겨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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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천동 선돌의 얼굴 추정 부분 사진=한소민 소장
이 선돌은 오백여 년 전 버드내 마을의 탄생과 함께 마을 입구에 홀로 서서 북풍한설 비바람 수난과 세파에 시달리며 궂은 일 즐거운 일 마을과 애환을 함께하고 마을에 들어오는 액과 모든 질병을 막아 번영과 화합을 이루게 하여 동네를 지켜 준 수문장으로 우리 조상들은 이 고마움을 기리고저 매년 정월 대보름날 거리제를 올려 왔습니다. 우리들은 그 뜻을 영구히 보존하겠사오니 예나 다름없이 동네의 질병과 거리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고를 막아 태평성대를 이루게 하옵소서.

마을의 경계에서 밖으로부터 들어오는 액과 질병을 막아 주는 역할은 오래전 신화에서도 찾을 수 있지요. 고대 로마에는 경계를 관장하는 신 테르미누스(Terminus)가 있었고, 그리스에서는 길과 경계의 신 헤르메스를 나타내는 돌기둥 헤르마(Herma)를 길가나 경계에 세웠습니다. (제18장 머들령, 경계를 넘는 고개 참고) 가까운 일본에도 이와 비슷한 도소진(道祖神) 신앙이 있지요. 마을 어귀나 길의 갈림길 등에 모셔진 도소진이 밖에서 들어오는 재앙과 역병을 막고 길을 오가는 사람들을 지켜 준다고 믿었지요. 지역에 따라 돌에 남녀 한 쌍의 모습을 새겨 풍요와 자손 번창을 기원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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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시 대덕구 읍내동 당아래장승 사진=한소민 소장
물론 유천동의 선돌과 로마의 테르미누스, 그리스의 헤르마, 일본의 도소진이 같은 신앙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지키기 위해 경계에 돌을 세워 무사함을 기원했다는 점은 많이 닮아있지요.

이제는 많은 사람이 오가는 행정복지센터 앞에 자리한 유천동 선돌. 여러 차례 자리를 옮겼지만 사람들은 늘 그 앞에서 마을의 평안을 빌었지요. 그렇게 마을 사람들과 함께한 선돌은 이제 다른 무엇으로도 대신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동안 그 앞에 쌓여갔던 무수한 소망들이 선돌의 신성함과 특별함을 만들어냈을 테니까요.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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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소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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