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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 용 교 前 충남도정책기획관 前 아산시 부 시 장 |
김대길의 부친은 일찍 세상을 떠나셔서 어려서부터 홀어머니를 모시고 살았다.
대전 가양동 덕포리(德布里) 우암 송시열 선생 사당 아래에 둥지를 틀고 살아오고 있다. 도청에서 대전 동쪽 끝 자택까지는 꽤 먼 거리로 아침 일찍 버스로 출근하고 밤 늦게 버스로 퇴근한다. 퇴근 후에는 어머님 거처방을 먼저 들려 이불속에 손을 넣어 온기를 살피고 모자간에 정담을 나눈다. 출근할 때도 어머님께 먼저 인사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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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길 국장의 한시. 사진=김용교 제공 |
일찍부터 수신(修身)과 제가(齊家)에 솔선수범하였음을 나는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었다. 김대길 공직생활의 ‘청렴’은 이미 널리 알려진 일이다.
선비정신의 청빈(淸貧)은 가난한 삶을 지향(指向)하지만 김대길 청렴의 근본은 근면·검소·절약이고 탐욕을 내지 않는 것이다. 불가(佛家)의 탐·진·치(貪·瞋·痴)는 모든 죄악의 근본이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절약할 수 있는 한 절약하고 마땅히 써야 할 때는 주저하지 않는다.
오랫적에 김대길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이 보턴식 전화기로 바꾸어 쓸때였는데도 다이얼 전화기를 쓰고 있었다. 손가락 멀쩡하고 전화 걸 때 지장이 없는데 굳이 또 돈을 주고 바꿀 필요가 있느냐?가 그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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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길 국장의 한시. 사진=김용교 제공 |
김대길은 돈에 대해 쩨쩨하지 않았으며 섣불리 돈으로 접근하려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었다. 애경사 등 인간의 도리상 챙겨야 할 곳은 결코 빠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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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길 국장께서 나에게 아호(雅號)를 작호(作號) 해주시겠다며 고송(孤松)과 남송(南松)을 작호 안(案)으로 제시하였다. 사진=김용교 제공 |
자기가 그린 한국화에 약(略)하여 유농(儒農)으로 낙관한다. ‘근검절약’,‘인정가득’,‘욕심경계’, ‘청렴고수’를 신조로 삼고 살아간다.
그래서 김대길은 예의염치(禮義廉恥)를 중시한다. 예절·의리·청렴·부끄러움을 알아차리고 몸소 실천하는 태도다. 김대길은 좋은 일이 이루어지고 성과를 냈을 때 자랑하고 생색내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나누고 베품에 생색내지 않는다.
자랑하고 생색내는 순간 그 공덕은 사라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김대길은 겸손하다. 지식이 겸손을 모르면 무식만도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이 ‘선비정신’이요 김대길은 ‘선비정신’을 함양시켜 나가고 있는 주인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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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길 국장께서는 나의 아호를 ‘고송’으로 작호하신 후 그 기념으로 친히 소나무를 화폭에 담으신 후 선물로 주셨다. 사진=김용교 제공 |
(5) 김대길은 시·서·화(詩·書·畵)를 낙(樂)으로 삼고 교우(交友) 폭도 넓다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선비는 시·서·화를 할 줄 알았고 이를 즐겼다. 시심(詩心)이 있는 사람은 마음이 비단결같이 순박하다. 시심이 있는 사람은 사물을 보는 눈이 예리하고 편협되거나 편견이 없다.
시심이 있는 사람은 악을 멀리하고 선을 가까이한다. 김대길은 시심이 있고 하루도 빠짐없이 한시(漢詩)를 쓴다. 시심이 떠오르고 시작(詩作)을 하면 몇몇 지인들에게 카톡으로 그날의 한시를 보내주고 있다.
나는 김대길의 한시를 평가할 자격은 없다. 하지만 어디서 그렇게 시심이 샘솟는지 매일 받아보는 한시를 음미하다 보면 감탄을 자아낸다. 치매의 접근은 엄두도 못 내리라. 글씨는 기량 이상으로 중요한 도(道)를 닦는 수양(修養)에 있다. 그래서 서도(書道)라 일컫는다.
김대길은 정년퇴직 후 충남대 미술과 교수의 사사(師事)를 받으며 한국화를 공부해왔다. 화법을 담아내고 기량이 향상되면서 개인전을 여는 등 상당한 경지에 이르렀다는 평이다.
한·중(韓·中) 교류전에도 출품하면서 매년 중국과 대전(大田)을 교차 방문하며 작지만 실속있는 민간 외교도 펴나가고 있다. 선비는 시(詩)를 짓고, 글을 읽으며,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을 챙기고, 정신을 밝히며, 육체를 다스리면서 교우(交友) 폭을 넓히고 유지해간다.
복(福)중에 최고 복을 인연복(因緣福)이라고 한다. 김대길은 한번 맺은 인연은 소홀함이 없고 소중하게 간직한다. 조심(操心)하고 조신(操身)하면서 신의를 지키고 신뢰를 받는다. 80이 넘은 지금도 지인·친구들과 만남은 계속된다.
핸드폰 한 달 일정표를 보면 ‘만남의 일정’이 빼곡하게 차있다. 찾는 사람 별로 없고 만날 사람 많지 않은 나로서는 참으로 부럽기만 하다. 김대길의 ‘선비정신’은 ‘올바름’과 ‘의리’와 ‘꼿꼿함’에 있다. 그러면서 온유함과 인정(人情), 자비가 마음 곳곳에 스며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작시(作詩)한 수백 편의 한시(漢詩)는 언젠가는 한시집으로 묶음이 되어 세상에 드러낼 것이다. 그 때 이 한시는 밝고, 맑고 훈훈한 사회를 만드는데 하나의 밀알이 되리라.
주옥(珠玉)같은 김대길의 한시(漢詩) 몇 편을 소개한다.
방하착
노욕이 올라가면 머리가 무거웁고
조금씩 내려오면 심신이 가벼웁네
여름에 땀흘리면 겨울이 편안하고
가족이 화목해야 만사가 이뤄지내
유심조
맘비고 사랑하면 웃음꽃 피어나고
숨어서 보시하면 행복의 싹이트네
물질을 탐욕하면 근심이 아니그쳐
구름에 달가듯이 말없이 살라하네
회 고
새벽종 울리면서 초가집 부수었네
새마을 박대통령 기억이 생생하네
가난한 살림살이 아내에 맡겨두고
밤낮을 안 가리고 다함께 달렸다네
경 애
자녀가 소원하면 내자취 돌아보고
이웃이 드문것은 부덕의 소치라네
미움과 질투심은 지옥을 자초하고
감사코 사랑하면 천국을 오른다네
인 연
부자가 이어짐은 하늘의 섭리이고
부부가 맺어짐은 사람의 윤리라네
마음과 몸둥이가 맑으면 건강하고
믿고서 사랑해야 가정이 화목하네
가 족
부부는 유별해도 자비로 하나되고
아들딸 형제자매 핏줄은 못속이네
공경과 내리사랑 효행의 기본이고
가족이 화목해야 만사가 이뤄지네
김 용 교(前 충남도정책기획관/前 아산시 부 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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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