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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윤수 학예연구관 |
한 사람의 일생만이 그러할까. 최근 대전시는 미국에서 환수된 '송자대전판' 한 점과 이 책판의 제작 과정을 알려주는 고문서 한 점을 입수했다. 대전시의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송자대전판은 흔히 생각하듯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18세기 정조대 만들어졌던 송자대전판은 1907년 일본군에 의해 소실되었고, 현재 대전 우암사적공원에 보관 중인 것은 일제강점기 그것을 다시 새긴 '중간판(重刊板)'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번에 발견된 「송자대전판중간소망첩」에 따르면, 그것을 중간하는데 처음 팔을 걷어붙인 이들은 다름 아닌 당대의 대표적인 친일 인사들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중간사업이 1927년 마무리되었는데, 이번에 미국에서 대전시로 돌아온 송자대전판도 그때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대전시 문화유산의 첫 해외 환수 사례로 언론에 소개된 이 송자대전판은 우암사적공원 장판각에 보관된 다른 책판들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활자에는 은박이 입혀져 있었고, 마구리에는 화려한 금속장식과 함께 용도를 알 수 없는 고리가 달려있었다.
아마도 이 이야기의 전말은 이럴 것이다. 조선 유림의 큰 스승, 송자(宋子) 우암의 문집 책판이 일본군의 방화로 사라지자, 친일파들이 나서 복각을 주도했고, 몇 차례의 부침 끝에 송자대전판의 중간이 완성되고, 이를 지금의 우암사적공원이 있는 남간정사(南澗精舍)에 보관했다. 그러다 광복 후 한국전쟁이 터지자 밀려든 피난민들이 책판 일부를 빼내 땔감으로 썼다(물론 이 또한 기록에 나오는 일이다.). 그렇게 난리통에 몇 점이 불타 없어지고, 또 일부는 어디론가 흩어졌는데, 그중 하나가 서울 인사동으로 흘러 들어갔다. 그것을 1970년대 초 한 미국인이 구입해 고국으로 가져갔다. 그렇게 미국의 어느 가정집 거실 벽을 장식하는 인테리어 소품으로 걸려있던 송자대전판이 이번에 반세기 만에 다시 고향 대전으로 돌아온 것이다.
미스터 션샤인과 송자대전판. 어느 쪽이 더 드라마 같은가. 누군가에게는 이 이야기가 더없이 흥미롭겠지만, 누군가는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엄숙하고 교훈적인 교과서 속의 이야기와 달리, 사실 역사는 이처럼 온갖 아이러니와 역설, 모순과 희비극이 교차하는, 말 그대로 하나의 '스토리'이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문화유산을 대할 때 기대하는 것은 어떤 교훈과 자부심, 미학적 만족보단, 이런 다사다난한 이야기일 것이라 생각한다.
미국에서 귀향한 송자대전판은 클리닝 작업과 보존 처리를 통해 제 모습을 찾은 뒤, 원래 다시 있던 우암사적공원 장판각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신산했던 세월의 흔적을 지워내기 전, 장식품이었던 송자대전판이 지금 대전시립박물관에 전시 중이다. 이 가을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역사의 뒤안길에서 돌아와, 이제 우리 앞에 수줍고 낯설게 선 송자대전판을 만나러 가보자. 진열장 너머, 아마 아주 긴 긴 이야기를 들려줄 것이다.
/고윤수 대전시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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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바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