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시평] 동지 팥죽과 붉은 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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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시평] 동지 팥죽과 붉은 색

/백향기 대전여성미술가협회 회장

  • 승인 2019-12-24 15:38
  • 신문게재 2019-12-25 14면
  • 고미선 기자고미선 기자
백향기 미술가협회장
백향기 대전여성미술가협회장
동지를 그냥 보내기 아쉬워서 남편과 함께 동네 죽가게에 가서 팥죽을 한 그릇 사먹었다.

워낙이 죽을 좋아 하지만 그중에서도 팥죽을 유난히 좋아 해서 동지를 그냥 지나치려니 아쉬웠던 것같다. 어릴 적 동지가 되면 어머님께서 팥죽을 만들어 식구들을 먹이곤 하셨다. 그래서 동지에는 의례 따뜻하고 고소한 팥죽을 먹으려니 했을 뿐 그 의미를 따져 보고 하지는 않았었다. 그저 좋아 하는 팥죽에 새알심을 그득 넣어서 맛있게 먹는 일이 즐거웠을 뿐이다. 그러나 한국 사람이라면 팥죽을 먹는 것이 액막이의 의미가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기도 하다.

팥의 붉은 색이 귀신을 쫓는 액막이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귀신은 붉은 색을 싫어 한다는데 귀신이 붉은 색을 싫어 하는 것은 신라의 처용 설화에서 유래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처용이 아내를 범한 역신을 보고 화를 내기보다 노래를 지어 부르자 그 관대함에 감복하여 처용으로부터 물러가면서 처용의 얼굴을 그려 문에 붙여 두면 다시는 근접하지 않으리라 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처용의 얼굴이 붉은 색이기 때문에 붉은 색이 액막이와 관계가 있다는 해석인 것같다. 무당들이 사용하는 부적을 붉은 색으로 그리는 것도 이러한 액막이와 관계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붉은 색이 액막이와 관계가 있다는 것이 처용설화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은 꼭 사실은 아니기도 한 것이 이러한 믿음은 적어도 동아시아권에서는 공통된 상징이 있는 것같다. 일본에서도 축하할 일이 있으면 찹쌀로 지은 팥밥을 먹는 풍습이 있다고 한다. 팥의 붉은 색이 액을 물리치고 복을 부른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하는데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유사한 의미와 상징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붉은 색이 반드시 액막이하고만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색 중에서 빨간 색 만큼이나 다양한 의미와 상징을 지니고 있는 경우도 드물 것 같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는 황금색은 권력, 황제의 색이라고 하는데 일반인들이 사용할 수 있는 색 중에는 빨간 색을 가장 선호한다. 중국인들에게 빨간 색은 기쁨이나 즐거움, 경사의 의미를 갖는다. 중국인들의 빨간 색 선호는 유별나다. 새배돈도 빨간 색 봉투에 주고, 설날 터뜨리는 폭죽도 대부분 빨간 색이다.

다른 한편으로 빨간 색은 피의 색이기도 해서 희생을 뜻하기도 한다. 구약에 나오는 빠스카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이집트에 내려진 재앙중 모든 장자들의 생명을 거두어 갈 때 문설주에 양의 피를 발라 두면 그냥 지나치겠다는 약속을 통해 유다인들이 아이들의 생명을 보존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때 피의 색인 빨간 색은 희생을 통한 구원을 의미한다. 가톨릭의 추기경들이 입는 빨간 색 제의 역시 순교의 피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 볼세비키 혁명 이후 빨간색은 사회주의, 노동운동을 의미하는 상징색이 되었는데 이는 빨간 색을 사회주의 혁명을 상징하는 색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권력이나 명예를 상징하기도 해서 조선시대 임금의 곤룡포가 빨간 색이었고, 요즘도 외국에서 귀빈이 오면 빨간 색 카펫을 깔아 두고 이를 밟고 오도록 예우하는 용도로 사용하기도 한다. 국제적인 영화제를 할 때 영화 배우들이 레드 카펫을 지나 입장하면서 다양한 의상을 뽐내는 것을 명예롭게 여기는 것도 빨간 색이 명예를 상징하는 것으로 인지되는 대표적인 예이기도 하다. 적어도 레드 카펫을 보고 사회주의를 상징한다고 이해하는 사람들은 없을 것이다. 또한 임금의 빨간 색 곤룡포를 보고 액막이를 떠 올리는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색 자체가 어떤 상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용되는 맥락이 의미를 만들고 상징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동지가 지났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겨울이 시작될 것이다. 같은 빨간 색이라도 그것이 사용되는 맥락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듯이 겨울의 추운 날씨와 얼어 붙은 경제도, 사회분위기도 그것을 어떤 맥락에서 바라보고 받아 들이는 가에 따라 견디어 낼만한 일들이 되기도 하고 견디기 어려운 일들이 되기도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동지를 지내며 한 그릇 먹은 팥죽의 붉은 색이 액운을 막아주기도 하고 기쁨이 되기도 하고, 명예의 상징이 되기도 해서 좋은 의미와 상징으로만 가득한 한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백향기 대전여성미술가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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