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야드 연가-김재석 작가]Episode.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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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야드 연가-김재석 작가]Episode.18

마호멧이…

  • 승인 2020-01-10 13:59
  • 한성일 기자한성일 기자
리야드연가 책표지 완성본(7월4일)
에피소드18
Episode.18

마호멧이…

"그럼 마호멧 왕자가 시킨 일 인가요. 저희를 감시하라고."







이집트 카이로 인근





나는 울고불고 하는 아키코를 끌고, 영어가 안 통하는 현지인에게 "폴리스, 폴리스" 물어가며 경찰서를 찾아갔다. 나는 신참처럼 보이는 젊은 경찰관에게 그녀가 여권을 잃어버린 자초지정을 설명했다. 그런데 가관인 건 컷, 하면서 다시 한 번 설명하란다. 싱글벙글 하면서 말이다. 한 번 더 이야기를 하자, 또 컷, 한다. 나는 머리 뚜껑이 열리는 줄 알았다.

'이것들이 지금 영화 찍냐, 컷!, 컷! 하며 앤지(NG)내게!'

젊은 여자 여행객이라고 놀려먹는 게 분명했다. 우리 둘은 지금 눈앞이 깜깜한데….

경찰서 문이 열리고 한 중년의 아랍인이 들어오더니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이 사람은 안소니 퀸처럼 생긴 택시기사보다 더 잘 생겼는데 폼은 점잖았다. 또 뭔 해코지를 하려나 싶었다.

"제가 좀 도와드릴까요."

그는 친절하게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우리 의사는 듣지도 않고 경찰에게 말했다.

"경찰 양반, 그만 놀리고 도와줍시다. 바깥에서 쭉 지켜보다 여행객들이 불쌍해서 들어왔어요. 나도 이집트인이지만 피라미드만 있으면 뭐해요. 매너가 있어야지."

그가 따끔하게 한마디 하자, 젊은 경찰관은 분실경위서를 내놓으며 기입하라고 했다. 물론 중년의 이집트 아저씨는 아키코와 내가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아랍어로 말했고, 나중에 이렇게 말했지 않았을까, 하며 그가 고개를 끼우뚱했을 뿐이다. 그러고 보니 젊은 경찰관이 컷, 컷 한 것이 영어를 못 알아들어서 그랬나 싶었다.

아키코와 나는 도장 찍힌 확인증을 들고 경찰서를 나왔다. 이걸 들고 일본 대사관을 찾아가면 임시 여권을 발급받을 수 있다나. 아랍인 아저씨가 대사관에 데려주겠단다. 카이로는 구석구석까지 잘 안다며 말이다.

우리 둘은 한 번 믿어 봐, 했다. 물어가면서 찾아간다고 해도 말이 안 통하면 온종일 헤맬 거 아니야 싶었다.

우리 둘은 동시에 "땡큐, 미스터 …."

이집트 아저씨는 전화박스에서 전화를 한통 하고 돌아왔다. 근처에 세워진 택시로 우리를 데려갔다. 난 짐을 실으려고 택시 트렁크를 여는데, 기절할 뻔 했다.

"아키코, 니 엔티크한 가방이…."

우리 둘은 중년의 이집트 아저씨를 동시에 쳐다봤다. 혹시 도둑 놈?

그는 우리 눈빛을 알아챘는지 손사래를 쳤다.

"내가 이 가방을 훔쳐가는 녀석을 잡는다고 공항 밖까지 쫓아갔지요. 두 분을 하마터면 놓칠 뻔 했지요."

"What???"

이집트 아저씨는 택시 앞좌석에 타면서 나에게 혹시, 얼굴이 기억나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좌우로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는 알아카리아 쇼핑센터 입구에서 루루와 마호멧을 마중 나갔다가 마주쳤다고 말했다.

"맞다. 그 운전기사."

나도 모르게 큰소리 치고 말았다. 그는 운전기사란 말에 또 한 차례 손사래를 쳤다. 운전은 어쩌다 하고, 마호멧 아버지가 후견인이 돼 주어서 오랫동안 그 집안일을 돌보고 있단다. 이래 보여도 왕족 집안의 집사라고 은근히 힘주어 말했다.

"그럼 마호멧 왕자가 시킨 일인가요. 저희를 감시하라고."

나는 조심스레 물었다.

"은근히 지켜보라고 했죠. 혹시나 여자 혼자서 낯선 땅에서 해코지 당할 수 있으니까. 이스탄불에서도 숙소까지 데려다 주려고 했는데, 그렇게 놀랄 줄 몰랐네."

'뭐야, 그럼 이스탄불 시내 밤거리에서 오두방정을 떤 건 나였어.'

'안소니 퀸'보다 잘생긴, 이런 점잖은 아저씨가 아키코와 나를 숙소까지 에스코트해 주려는 건지도 모르고…. 아키코는 콧물, 눈물 다 마르고 격한 행복감이 밀려오는지, 마냥 장화신은 고양이 눈을 하고 이집트 아저씨를 바라봤다.

"조금 전에 전화했는데 마호멧 왕자님이 오신답니다."

"예! 마호멧이…."

"넌 마호멧이 뭐니! 왕자님이 오신다잖아."

아키코가 정신이 나가도 단단히 나갔다. 하늘로 승천했다. 이름은 안 듣고 왕자님 소리만 들린 모양이다.



리야드 국립중앙병원 외래검사센터



마호멧이 외래검사센터에 찾아왔다. 쇼핑센터에서 루루와 함께 만난 후로 얼마간 얼굴을 보지 못했다. 동행도 없이 혼자 왔다. 로라 아줌마가 모하멧을 급 반겼다. 그는 압둘라 닥터 칩을 찾았다. 마침 닥터 칩이 잠시 자리를 비웠다. 임상병리센터에 다른 닥터 칩 친구를 만나러 간 모양이다. 로라 아줌마는 압둘라 닥터 칩 방으로 상전 모시듯 마호멧을 데리고 들어갔다. 무슨 커피를 마시겠냐며 호들갑을 떨었다.

"전에 미스 수진이 타 준 커피가 맛있던데. 향기도 좋고…."

로라 아줌마는 열린 방문으로 나를 쳐다봤다.

"로라는 압둘라 닥터 칩이나 찾아오세요."

마호멧이 튕기듯 한마디 하자, 그녀는 방문을 나서며 못마땅한 듯 나에게 커피 주문을 넣었다. 자기는 닥터 칩 찾아온다며…. 입술을 삐죽하고는 외래검사센터를 나갔다.

나는 검사 시약을 정리하고 일어나서 탕비실로 가려고 했다. 그때 마호멧이 방 밖으로 나왔다.

"오늘 피검사할까 해서 왔어요. 직접 해 줄래요."

마호멧은 양복을 벗어 옷걸이에 걸었다. 셔츠 소매를 걷었다.

내가 앉은 책상에 가까이 와서는 보조의자에 앉았다. 나는 주사바늘을 들고 그의 팔뚝을 더듬었다. 그와 눈을 맞출 수가 없었다. 침을 꿀꺽 삼켰다. 팔뚝에 불끈불끈 돋아난 그의 검푸른 핏줄기를 집어가는 나의 손가락이 떨렸다. '찌릇찌릇' 전기가 와서 도무지 못 찌를 것 같았다.

나는 긴장을 낮추려고 농담을 던졌다.

"마호멧 씨는 왕자인데 왕궁하고는 거리가 먼 모양이죠. 바깥에서 근무하게. 아람코!"

그는 나를 따라 피식 웃었다.

"혹시, 아웃사이드 프린스 씨?"

"오! 놀라운 눈을 가졌네요. 듣기도 나쁘지 않은데요. 아웃사이더 프린스."

나는 그제야 긴장이 낮춰졌다. 한결 그의 팔뚝을 만지기가 수월했다.

"내가 이슬람 왕궁에 좀 적응 못하는 면이 있죠. 그런데 아람코는 뭐랄까, 이슬람 율법이 미치지 못하는 별천지라고 할까. 자유롭고 진취적인 기업분위기가 있어요. 거기서는 사우디 남녀가 함께 근무해요. 협약에 의해서 종교경찰이 들어올 수 없어요. 샬라 타임 때 기도 안한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심지어 미국 직원을 위한 기독교 예배실도 있어요. 아무튼 외국대사관 같은 곳이죠. 치외법권지역."

"정말 아웃사이더 프린스 씨네요. 그런 자유로운 아람코 왕국에 사시다니."

"맞아요, 하하하, 아람코는 사우디의 핏줄이니까. 검은 핏줄, 어떤 분은 돈줄이라고 하더라고요.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되는…."

나는 그의 팔뚝에서 맥을 잡았다. "혹시 이 팔뚝에서 검은 피가 솟아나면 어쩌죠?" 하며 바늘을 찔렀다. 다행히 주사기 안에 붉은 피가 뚝뚝 떨어졌다.

순간 쓰나미처럼 손끝을 타고 온 몸으로 전율이 밀어닥쳤다. 동공이 꽉 쪼였다. 시신경을 타고 뇌리 깊숙한 곳을 파고들었다. 전율이 잠들어 있던 기억을 깨웠다.

아마 내가 다섯 살 때쯤 기억이다. 앞집에 도둑이 들었던 모양이다. 다음 날, 앞집 아주머니가 오더니 날 집으로 데려갔다. 방 안에 금고가 있었다. 무당으로 보이는 여자가 나를 금고 앞에 세우고는 손으로 잡게 했다. 그리고 눈을 감겼다. 그녀는 몇 분간 방울소리만 딸랑거렸다. 나는 검은 중절모를 쓴 사람이 눈꺼풀 앞에 보였고, 눈을 떴다. 여기 집주인 아저씨하고 비슷하게 생긴 것 같다고 했다. 범인은 집주인 남동생이었다.

또 하나의 기억이 떠올랐다. 저물 녘, 집 앞 공터에서 놀다가 날이 어두워져 집으로 돌아왔다. 집 앞에서 검은 옷을 입은 두 사람이 서성거렸다. 아저씨들 누구예요? 나는 검은 옷깃을 만지며 천연스럽게 물었다. 그들의 얼굴을 제대로 보았는지 안 보았는지 모르겠다. 기억이 없다. 단지 나는 무서워서 문을 열고 빨리 들어갔다. 그날 밤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나는 환자의 피를 뽑을 때, 어떤 피는 전율이 밀려오는 찌릿함을 느낀다. 그 사람의 피에 닿는 순간, 삶의 기로에 선 운명을 느끼는 걸까? 아니면 신내림처럼 귀신의 눈을 빌려 보는 것일까? 나는 두려움이 있었다. 누군가의 운명에 닿았다고 해도 섣불리 알아보고 싶지 않았다. 신내림을 받는 무당은 더더욱 되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주사바늘을 모하멧의 팔뚝에서 빼냈다.

"피가 참 맑고 깨끗하네요. 탁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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