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찬 국립한밭대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
이전 정부에서도 의대 입학 정원을 확충하려는 시도는 여러 차례 있었지만, 의사들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되었다. 2020년 문재인 정부는 매년 400명씩, 10년간 총 4000명을 증원하는 방안을 제안한 바 있다. 의대 증원을 이야기할 때 가장 흔히 인용되는 수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기준 의사 수다. 2021년 기준 국내 인구 1000명당 임상 의사 수는 2.6명(한의사 포함)으로, 30개 회원국(평균 3.7명) 중 멕시코(2.5명) 다음으로 가장 적다. 그렇지만 대한의사협회는 한국과 의료체계가 비슷한 일본(2.6명)이나 미국(2.7명)과 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의 보고서를 토대로 의대 증원을 하지 않으면 오는 2035년에는 의사 1만 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정부는 의대 교육 기간(6년)과 전공의 수련 기간(4~5년)을 고려할 때 2025년 의대 증원 효과는 빠르면 2031년, 늦으면 2036년 이후에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이 때문에 연간 2000명보다 더 적은 숫자로 증원할 경우 의료 공백기가 길어진다고 한다. 의료계에서도 의사 증원 자체는 필요하다고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다만, 현재 입학 정원의 65%에 해당하는 인원을 한 번에 증원하는 것은 의대 교육 질 저하를 비롯해 시스템적으로 부담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가까운 미래에 의사 수가 부족할지를 두고도 의견이 엇갈린다. 지난달 보건복지부 브리핑에서 "2035년 인구가 약 1.6% 감소하더라도 고령인구의 증가로 의료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은 예정된 미래"라고 설명했다. 반면 의사들은 저출생으로 인해 국내 인구 자체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에 인구당 의사 수가 크게 부족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와 같은 수요예측으로 볼 때 극한 대립이 아닌 한 발짝씩 양보하는 차원에서 정부 측안과 의료계측 안을 놓고 합리적 조율을 통해 대안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의료진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지만, 현재 의료계의 문제는 비인기 학과의 지원자가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의대생들이 쉽고 임금이 높다는 이유로 피부과, 재활의학과와 같은 일부 전문 과목을 선호한다. 비인기 학과의 의사 부족은 큰 문제를 낳고 있다. 특히 소아 환자는 면역력이 낮고 몹시 민감하여 작은 질병에도 방심할 수 없다. 하지만 소아과는 비인기 학과이기에 담당해야 하는 환자에 비해 의사의 수가 너무 적다. 지방의 경우, 응급환자는 여러 병원을 전전하다가 필요할 때에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에 이르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현실에 문제로 구급대원이 환자 수용을 거부당하는 거절 이유에는 학회참석 등으로 전문의의 부재도 있었다.'골든타임'내에 적절한 의료 조치를 받지 못한 중증응급환자는 더 큰 질병으로 번지거나, 아니면 심한 경우에는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 전체 의료진의 증원도 물론 중요하지만, 지금은 비인기 학과로의 유인책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다. 단순히 의료 인력만의 자원을 늘리면 비인기 학과도 채워지기 마련이라는 원시적인 주장만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 현실적으로 볼 때 2000명의 의대 증원만으로 모든 것을 해결한다기보다는 의료계와의 합리적 합의에 의해 점진적 의료인력 증원과 현장 의료계의 의견을 존중하면서, 비인기 학과로의 유입을 위한 파격적 정책 또한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민병찬 국립한밭대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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