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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노권 목원대학교 총장 |
공연 내내 프로 못지않은 솜씨로 흥겹고, 다소 요란한, 노래가 몇 곡 연주되었지만 강당의 분위기는 날씨처럼 여전히 가라앉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감미로운 반주를 곁들인 “그대여 아무 걱정 말아요”란 노래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좀 나아지긴 했지만, 학생들의 표정에서는 설렘과 기대보다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의 그늘이 쉽게 가시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경기도 어려운데 세상마저 시끄러우니 왜 아니 그랬겠는가?
그들을 보면서 몇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저 학생들에게 삶의 의미란 무엇일까, 혹시 무언가에 잔뜩 주눅 들어 있어 인생의 의미 같은 걸 생각할 여유조차 없이 그저 암담한 것은 아닐까, 미래가 희미하게나마 희망적인 빛으로 상상되질 않고 그저 깜깜해서 도무지 어떻게 되어갈지 감 잡을 수 없는 상태인 것은 아닐까, 혹시 선배 학생들이 불러준 '아무 걱정 말아요'란 노래가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린 것은 아닐까?
노래방 같은 델 가면 화면에 뜨는 가사가 어쩌면 그렇게 구구절절이 맞는 말일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날 재즈 전공 학생이 불렀던 노래 가사도 그랬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란 가사 말이다. 우리는 지금 풍요롭지만 의미는 없는 현대를 살고 있지만, 사실 인생을 길게 보면 의미 없는 것이란 거의 없다. 아니, 의미 있을 줄 알고 죽을힘을 다해 추구했던 것들이 오히려 별 의미 없는 일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기도 하지만, 도무지 의미 있을 것 같지 않던 지나간 것들이 나중엔 아주 의미 있는 것이었음을 종종 보기도 한다.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도 감동을 주는 의미라면 그 인생은 참 아름답다 아니할 수 없다.
모든 인생의 의미를 물질이란 척도로 계산하는 데 익숙한 현대의 물질문명 속에서는 매우 힘든 일일지 모르지만, 모든 것이 결핍된 삶도 실은 얼마든지 의미 있는 것이 될 수 있다. 아니, 폴 투루니에가 말했듯이, 결핍이 결핍된 삶은 결코 행복하지가 않다. 물질적인 풍요나 출세는 사실 인생의 의미와는 별 관련이 없다. 높은 지위와 재물은 본래 삶의 의미와는 별 관련이 없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그게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다른 이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한하운(韓何雲)이란 시인의 삶이 떠오른다. 일제 때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외국유학까지 마치고 돌아와 공무원이 되어 안락한 생활을 하던 그는 나병에 걸린 사실이 알려져 직장에서 쫓겨나고 모든 이에게서 멀어져, 급기야는 오직 병 고칠 약값을 벌기 위해 서울의 길거리에서 한데 잠을 자면서 구걸을 하게 된다. 얼굴이 붓고, 눈썹이 빠지고, 발가락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 그 처절한 삶이란 오늘날의 물질적 척도로 보면 제로에 가까울 텐데, 그는 그런 상황에서도 시를 써서 그 아니면 보여줄 수 없는 기막힌 의미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 리(千里), 먼 전라도 길.”
죽지만 않으면 모든 삶은 의미가 있다. 불경기도, 어수선한 정세도, 빨리 물러가지 않고 수시로 우리를 괴롭히는 이 한기도 결국은 물러가게 되어 있다. 너무 풀죽어 있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우리는 살아야 한다. 기왕에 살 수밖에 없다면 그걸 의미 있는 삶으로 바꾸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함께 노래 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새로운 꿈을 꾸었다 말해요.”
기쁠 땐 흥겨운 노래를 부르고 슬플 땐 슬픈 노래를 부르며, 현실이 녹록치 않을 땐 또 꿈을 꾸며 사는 게 인생이다. 나더러 우리나라의 모든 신입생들에게 한 마디 하라면, “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라고 따스한 목소리로 말해주고 싶다.
박노권 목원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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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권 목원대학교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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