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칼럼]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 오피니언
  • 중도칼럼

[중도칼럼]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 승인 2017-03-01 10:06
  • 신문게재 2017-03-02 22면
  • 박노권 목원대학교 총장박노권 목원대학교 총장
▲ 박노권 목원대학교 총장
▲ 박노권 목원대학교 총장
얼마 전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다녀왔다. 아직 한기(寒氣)가 가시지 않은 늦겨울의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오후였다. 그래도 강당엔 수백 명의 학생들이 빈자리 없이 꽉 채우고 있었다. 딱딱한 오리엔테이션을 시작하기 전에 학생회에서는 여러 가지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하여 그들을 즐겁게 해주려 애쓰고 있었지만, 기대한 만큼의 분위기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것 같았다.

공연 내내 프로 못지않은 솜씨로 흥겹고, 다소 요란한, 노래가 몇 곡 연주되었지만 강당의 분위기는 날씨처럼 여전히 가라앉아 있었다. 마지막으로 감미로운 반주를 곁들인 “그대여 아무 걱정 말아요”란 노래가 나오면서 분위기가 좀 나아지긴 했지만, 학생들의 표정에서는 설렘과 기대보다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의 그늘이 쉽게 가시지 않는 것 같아 보였다. 경기도 어려운데 세상마저 시끄러우니 왜 아니 그랬겠는가?

그들을 보면서 몇 가지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저 학생들에게 삶의 의미란 무엇일까, 혹시 무언가에 잔뜩 주눅 들어 있어 인생의 의미 같은 걸 생각할 여유조차 없이 그저 암담한 것은 아닐까, 미래가 희미하게나마 희망적인 빛으로 상상되질 않고 그저 깜깜해서 도무지 어떻게 되어갈지 감 잡을 수 없는 상태인 것은 아닐까, 혹시 선배 학생들이 불러준 '아무 걱정 말아요'란 노래가 공허한 메아리처럼 들린 것은 아닐까?

노래방 같은 델 가면 화면에 뜨는 가사가 어쩌면 그렇게 구구절절이 맞는 말일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날 재즈 전공 학생이 불렀던 노래 가사도 그랬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란 가사 말이다. 우리는 지금 풍요롭지만 의미는 없는 현대를 살고 있지만, 사실 인생을 길게 보면 의미 없는 것이란 거의 없다. 아니, 의미 있을 줄 알고 죽을힘을 다해 추구했던 것들이 오히려 별 의미 없는 일이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기도 하지만, 도무지 의미 있을 것 같지 않던 지나간 것들이 나중엔 아주 의미 있는 것이었음을 종종 보기도 한다. 그것이 다른 이들에게도 감동을 주는 의미라면 그 인생은 참 아름답다 아니할 수 없다.

모든 인생의 의미를 물질이란 척도로 계산하는 데 익숙한 현대의 물질문명 속에서는 매우 힘든 일일지 모르지만, 모든 것이 결핍된 삶도 실은 얼마든지 의미 있는 것이 될 수 있다. 아니, 폴 투루니에가 말했듯이, 결핍이 결핍된 삶은 결코 행복하지가 않다. 물질적인 풍요나 출세는 사실 인생의 의미와는 별 관련이 없다. 높은 지위와 재물은 본래 삶의 의미와는 별 관련이 없는 것이기도 하거니와, 그게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다른 이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한하운(韓何雲)이란 시인의 삶이 떠오른다. 일제 때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외국유학까지 마치고 돌아와 공무원이 되어 안락한 생활을 하던 그는 나병에 걸린 사실이 알려져 직장에서 쫓겨나고 모든 이에게서 멀어져, 급기야는 오직 병 고칠 약값을 벌기 위해 서울의 길거리에서 한데 잠을 자면서 구걸을 하게 된다. 얼굴이 붓고, 눈썹이 빠지고, 발가락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 그 처절한 삶이란 오늘날의 물질적 척도로 보면 제로에 가까울 텐데, 그는 그런 상황에서도 시를 써서 그 아니면 보여줄 수 없는 기막힌 의미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 막히는 더위 속으로 절름거리며/ 가는 길... 신을 벗으면/ 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 발가락이 또 한 개 없어졌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가도 가도 천 리(千里), 먼 전라도 길.”

죽지만 않으면 모든 삶은 의미가 있다. 불경기도, 어수선한 정세도, 빨리 물러가지 않고 수시로 우리를 괴롭히는 이 한기도 결국은 물러가게 되어 있다. 너무 풀죽어 있을 하등의 이유가 없다. “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 우리는 살아야 한다. 기왕에 살 수밖에 없다면 그걸 의미 있는 삶으로 바꾸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함께 노래 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새로운 꿈을 꾸었다 말해요.”

기쁠 땐 흥겨운 노래를 부르고 슬플 땐 슬픈 노래를 부르며, 현실이 녹록치 않을 땐 또 꿈을 꾸며 사는 게 인생이다. 나더러 우리나라의 모든 신입생들에게 한 마디 하라면, “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라고 따스한 목소리로 말해주고 싶다.

박노권 목원대학교 총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천안시체육회-더보스턴치과병원, 체육인 구강 건강 증진 업무협약
  2. [숏폼영상] 도심 한복판에서 숲속 공기 마시는 방법
  3. 백석대, 건학 50주년 기념 기독교박물관 특별전 '빛, 순간에서 영원으로'
  4. 남서울대, 제2작전사령부와 국방 AI 협력 업무협약 체결
  5. 천안시, 성고충상담 담당자 역량강화 교육
  1. 첫 법정 공휴일 된 노동절…차분히 즐기는 휴일
  2. 천안법원, 무면허 음주사고 후 바꿔치기로 보험금 타려한 50대 남성 징역형
  3. 연암대, 직업재활 치유농업 충청권 워크숍 개최
  4. 천안 대학병원 재학생, 병원서 실습나와 숨진 채 발견
  5. 보존된 서울 상암 일본군관사와 흔적 없는 대전 일본군관사…"같은 피해 없도록 피해자성 공유 중요"

헤드라인 뉴스


한 마리 학이 알려준 기적의 물! 유성 온천 탄생의 전설

한 마리 학이 알려준 기적의 물! 유성 온천 탄생의 전설

대전 유성 하면 떠오르는 것 바로 ‘유성온천’입니다. 지금은 뜸해졌지만 과거 유성온천은 조선시대 임금님이 행차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유명했다고 하는데요. 유성온천은 과연 언제부터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을까요? 유성온천의 기원은 무려 1000년 전 유성지역에 살던 어머니와 아들의 사연에서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따뜻한 온천과도 같은 어머니의 정성이 담겨 있다는 유성온천 탄생의 전설을 전해드립니다. 금상진 기자유성온천은 언제부터 사람들에게 알려졌을까 1000년 전 유성지역에 살던 어머니와 아들의 사연에서 시작한..

`5점대 평균자책점`…한화 이글스, 투수진 기량 저하에 고초
'5점대 평균자책점'…한화 이글스, 투수진 기량 저하에 고초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가 2026시즌 초반부터 하위권으로 추락하며 고초를 겪고 있다. 팀 내 주축 선수들의 기량 저하가 핵심 원인으로, 특히 5점대 평균자책점을 찍을 정도로 불안정한 투수진은 한화가 가장 먼저 극복해야 할 과제로 지목된다. 2일 KBO에 따르면 한화는 올 시즌 11승 17패 승률 0.393의 성적으로, 리그 10개 구단 중 8위에 올라있다. 최근 10경기 성적은 3승 7패로, 이달 1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원정 경기에 패하며 3연패 수렁에 빠진 상태다. 중위권과는 2경기 차로 뒤처진 상황이며, 9·10위권과는 단 0.5..

보존된 서울 상암 일본군관사와 흔적 없는 대전 일본군관사…"같은 피해 없도록 피해자성 공유 중요"
보존된 서울 상암 일본군관사와 흔적 없는 대전 일본군관사…"같은 피해 없도록 피해자성 공유 중요"

전투가 벌어진 장소를 전쟁유적이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전쟁 시설 조성에 동원된 인력과 그 과정도 유적에 포함된다. 일제강점기에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로서 제국 일본의 영역이었으므로 지배를 강압하고 아시아태평양전쟁을 준비한 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정혜경 일제전쟁유적네트워크 대표는 그의 저서 '한반도의 일제 전쟁유적 활용, 해법을 찾아'에서 "우리 주변에 남아 있는 일제 전쟁유적은 일본 침략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강제동원의 역사에서 피해자성을 공유할 수 있는 곳"이라며 "피해자성이란 피해의 진상을 파악하고 강제동원 피해자의 아픔에..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다양한 체험과 공연에 신난 어린이들…‘오늘만 같아라’ 다양한 체험과 공연에 신난 어린이들…‘오늘만 같아라’

  • 대전 찾아 지원유세 펼치는 정청래 대표 대전 찾아 지원유세 펼치는 정청래 대표

  • 첫 법정 공휴일 된 노동절…차분히 즐기는 휴일 첫 법정 공휴일 된 노동절…차분히 즐기는 휴일

  • 기자간담회 갖는 이장우 대전시장…오늘 예비후보 등록 예정 기자간담회 갖는 이장우 대전시장…오늘 예비후보 등록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