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필톡- 겁쟁이 양조위씨

  • 오피니언
  • 우난순의 필톡

우난순의 필톡- 겁쟁이 양조위씨

  • 승인 2017-05-11 17:39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그림= 우난순 기자
▲그림= 우난순 기자


‘화양연화(花樣年華)-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 검붉은 장미가 막 피어나는 5월의 이 봄날을 사는 사람들은 가장 아름다운 인생을 맞고 있을까. 내 인생의 화양연화는 언제였나. 냇 킹 콜의 감미롭고 나른한 ‘Quisas’가 아직도 귓전에 맴도는 영화 ‘화양연화’는 장만옥을 위한 영화다. 낭창낭창한 버들가지 같은 가냘픈 몸매를 드러내는 치파오의 화려한 색체는 얼마나 고혹적인가. 이 영화를 본 여성관객이라면 한번쯤 입어보고 싶은 치파오의 매력을 한껏 뽐낸 장만옥의 몽환적인 눈빛과 몸짓은 다른 여배우는 상상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이 영화에 부여했다.

화양연화는 가슴을 아리게 하는 영화다. 시작도 해보지 못한 채 끝내야 하는 아픈 사랑의 결말을 받아들이는 남녀의 운명론적 체념에 나 역시 아쉬움을 안고 극장문을 나서야 했다. 그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이 영화를 돋보이게 하는 훌륭한 장치지만 현실이라면 어떨까. 양조위는 영화 속 ‘차우’라는 남자의 캐릭터를 잘 살려냈다. 머리카락 한올 내려오지 않은 올백 머리에 말쑥한 양복차림의 모습은 160㎝를 갓 넘을 것 같은 단신의 양조위가 결코 왜소해 보이지 않는다. 한치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는 단정한 모습은 칼같은 냉정함을 보여주지만 그 이면엔 겁많은 남자의 소심함이 느껴진다.


히틀러, 스탈린, 양조위, 그리고… 그들의 내면세계는?


양조위는 싱가포르로 떠나기 전에 장만옥에게 이렇게 말한다. “처음에는 그런 감정이 아니었는데 걷잡을 수 없이 바뀌어갔소. 나는 나쁜 놈이오.” 이런 잔인한 이별선언이 어딨을까. 겁많은 남자 양조위는 세상의 평판에 갇혀 도덕적으로 우월한 남자로 남는 선택을 함으로써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겁이 많은 사람은 내면에 상처를 안고 있다. 그 상처는 때론 대단히 깊고 복잡하다. 상처가 인간의 심성 깊숙이 잠재해 있는 것이다. 어릴 적 경험이 인간 정신의 60%가 형성되는데 이때의 상처가 성인이 되어 겪는 어려움의 원천이 된다. 공포정치로 악명을 떨쳤던 히틀러와 스탈린은 수많은 인명을 학살한 20세기의 쌍둥이 악마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철저하게 주민을 통제하면서 무자비하게 절대적인 권위를 내세웠다. 두 독제 체제하의 사람들은 새로운 체제에 소속되기 위해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과 진실을 희생시켜야 했다. 히틀러와 스탈린은 현실을 왜곡하고 반대자들을 무섭게 탄압하면서 그러한 간극을 메우는 일에 전념했다.

프로이트는 장래 성격 형성에 소아기 4년 동안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정돈되고 평화로운 가정 환경에서 성장했더라면 우리가 알고 있는 무시무시한 악마같은 히틀러는 인류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지 않았을 것이다. 권력에 굶주린 살인자로 알려진 스탈린 역시 최고 권력을 손에 넣자 마자 잠복해 있던 정신병적 충동들이 풀려나와 대학살을 저질렀다. 그는 그냥 사람을 투옥하고 죽인 게 아니었다. 정신과 신체에 고문을 가해 그들을 가장 치욕스런 방식으로 무너뜨렸다. 거기서 그는 깊은 만족을 얻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스탈린이 어릴 적 경험 때문에 인격장애가 있었다는 것이다.

히틀러와 스탈린의 예에서 보듯이 어린시절의 상처와 결핍은 성인이 되어 열등감과 불안의 원인이 된다. 이런 유형의 인간이 지도자가 되면 많은 사람을 고통에 빠뜨린다. 아들 부시나 박근혜처럼 평범하지 않은 가정환경에서 자란 지도자로 인한 후유증이 얼마나 큰가.


권력자는 야생을 떠도는 겁먹은 한 마리 이리에 불과할 뿐


이런 위험스럽기 짝이 없는 현상은 일반 조직문화에서도 발견된다. 상명하복식의 수직적 구조에서 갑과 을은 엄연히 존재한다. 재밌는 사실은 을이 계급장만 달면 그악스런 갑으로 변신한다는 것. ‘시집살이 당해본 며느리가 더 악독한 시어머니가 된다’는 말처럼 고난을 겪은 권력자는 위험하다. 그들은 한풀이 하듯 마음 밑바닥에 쌓인 분노를 표출한다. 그들의 결핍과 열등감은 억압의 근원이 되어 부하직원들에게 절대복종을 강요한다. 자신의 비위를 건드리는 행위에는 가차없는 응징과 불이익을 준다. 마키아벨리는 “권력자들은 사랑받기 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데서 더 큰 안전을 느낄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에게 두려움의 대상인 권력자도 사실은 야생을 떠도는 겁먹은 한 마리의 이리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후배가 들려준 후배 회사의 높으신 상사는 치를 떨게 했다. 노조 일로 눈밖에 난 직원들은 조직적으로 중요업무에서 배제하거나 묵살함으로써 결국 회사를 그만두도록 한다고 했다. 후배는 일거수일투족 감시하고 겁박하는 일에 맛들인 그 실세가 공포에 떨고 있는 쥐를 잡아먹기 직전에 갖고 노는 고양이 같다고 했다. 후배에게 말했다. “그렇게 자신이 없을까. 그 사람도 자리 지키려고 그러는 거야. 불쌍하게 생각해.” 우리 안의 최순실은 언제나 존재한다. 문재인 정부는 어떨까.


우난순 기자 rain4181@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45년 방치 공간의 변신…김해 수안마을 수국축제 열린다
  2. 국세청, "국세 징수 넘어 통합 재정수입 기관" 도약
  3. [대전의 숨은 이야기] 대전에서 연시은 따라잡기! '약한영웅 Class 2' 성지순례
  4. 반도체 생산 고순도 중수소암모니아 국산화 기술 개발
  5. 대전 초등생 피살사건 유족 손배소 일부 승소…명재완·대전시 공동배상
  1. 대전·세종 교권보호위원회 평교사위원 '0'명
  2. "망상 등 청소년 조기정신증, 조기 개입 효과 뚜렷"
  3. 이태호부터 황인범까지 대전 출신의 월드컵 영웅들
  4. [한화에어로 참사] 화약 찌꺼기 제거 중 폭발 가능성에 경찰 "확인 필요"
  5. 충청권 지역의사제 사실상 '수시 전형'…의대 입시전략 바뀐다

헤드라인 뉴스


충청권 벤처 잠재력 최대인데… ‘돈·사람’은 여전히 서울로

충청권 벤처 잠재력 최대인데… ‘돈·사람’은 여전히 서울로

충청권 벤처기업 생태계가 수도권을 제외한 비수도권 중에서 가장 높은 잠재력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자본과 인재, 투자 등의 벤처 생태계 핵심 인프라는 여전히 수도권에 집중돼 지역별 잠재력을 고려한 균형성장 정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제언이 나온다. 11일 벤처기업협회가 발표한 '지역 벤처기업 현황 및 지원정책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중소기업 중 벤처기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10.2%로 집계됐다. 권역별로는 수도권(11.5%)과 충청권(10.7%)이 평균을 웃돌았으며, 이 외의 비수도권 지역은 6~9%에 머물렀다. 특히..

대전 출신 황인범 체코전서 `멀티 공격포인트`, 북중미 월드컵 첫승 견인
대전 출신 황인범 체코전서 '멀티 공격포인트', 북중미 월드컵 첫승 견인

2026 북중미 월드컵에 나선 태극전사들이 대전 출신 황인범(페예노르트)과 오현규(베식타시)의 후반 연속골로 체코에 역전승을 따냈다. 홍명보 감독이 지휘하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12일(이하 한국시간) 멕시코 사포판의 과달라하라 스타디움에서 열린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A조 1차전에서 체코에 2-1로 승리했다. 한국은 후반 14분 라디슬라프 크레이치(울버햄프턴)에게 먼저 실점했으나 후반 22분 이강인(파리 생제르맹)의 도움에 이은 황인범의 동점 골, 후반 35분 오현규의 역전 골로 승점 3을 챙겼다. 특히 황인범은 오현규의 골을 돕기도..

충청권 지역의사제 사실상 `수시 전형`…의대 입시전략 바뀐다
충청권 지역의사제 사실상 '수시 전형'…의대 입시전략 바뀐다

2027학년도 지역의사제 시행을 앞두고 충청권 의대 입시의 무게중심이 수시로 이동하고 있다. 충북대를 제외한 충청권 6개 의대가 지역의사제 모집 인원을 전원 수시에서 선발하기로 하면서 수험생들의 입시 전략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11일 교육계와 종로학원에 따르면 지역의사제는 지역 의료인력 확충을 위해 일정 기간 해당 권역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할 인재를 선발하는 제도로, 2027학년도 대입부터 처음 도입된다. 충청권에서는 충북대 39명으로 가장 많고 충남대 27명, 순천향대 18명, 단국대 천안캠퍼스 15명, 건국대 글로컬캠퍼스 7명, 건..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임직원들이 함께 즐기는 월드컵 임직원들이 함께 즐기는 월드컵

  • ‘더 빠르게 접근한다’…무인수난구조보드를 활용한 인명구조 ‘더 빠르게 접근한다’…무인수난구조보드를 활용한 인명구조

  • ‘건강한 치아를 위해’ ‘건강한 치아를 위해’

  • 북중미 월드컵 개막 D-2…‘어디서 응원하지?’ 북중미 월드컵 개막 D-2…‘어디서 응원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