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칼럼] 내면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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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칼럼] 내면과의 만남

  • 승인 2017-05-24 13:55
  • 신문게재 2017-05-25 22면
  • 박노권 목원대 총장박노권 목원대 총장
▲ 박노권 목원대 총장
▲ 박노권 목원대 총장
한 직원에게 긴 연휴에 뭘 했는지 물었더니 “멍 때렸다”고 말한다. 아무 일도 안 하고 아무 생각도 없이 지냈다는 말이다. 평소엔 처리할 일도 많고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을 텐데, 모처럼 육체적ㆍ정신적으로 실컷 휴식을 취한 모양이다. 우리는 특히 이런 휴식을 필요로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몸을 쉬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을 쉬게 하는 것 말이다.

현대는 복잡한 일이 많기 때문만이 아니라 무수한 말과 문자의 홍수 속에 살기 때문에 피곤하다. 정보화 시대라고 하는 지금은 더 그렇다. 차를 타고 어디를 가다가도 무심코 무언가를 읽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각종 알림 문자, 광고, 스팸문자 등등. 방금 중요한 통화를 막 끝냈는데, 또 다른 전화가 걸려온다. 받고 보면 스팸전화다. 호젓한 골목길 저 앞에 한 사람이 다가온다. 분명히 혼자인데, 큰소리로 무슨 말을 하고 있다. 통화중이다. 세상이 이러니 멍 때리는 것이 얼마나 큰 휴식인가.

그러나 멍 때린다고 해서 머릿속이 완전히 비는 것은 아니다. 외부에서 가해지는 말의 자극 못지않게 우리의 의식 속엔 무언가가 끊임없이 들어온다. 생각 말이다.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의식 속엔 별의별 생각이 다 찾아든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고 굳게 결심해도 생각 말자는 생각을 줄기차게 하는 경우도 있다. 고도의 심신수련자가 아닌 이상 우리의 의식 속에서 생각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다. 그러니 멍 때렸다는 것도 기껏해야 떠오르는 생각을 바로바로 지우거나 생각을 좀 덜 했다는 말일 게다.

말이나 생각이 우리를 피로하게 만드는 이유는 그것들은 모두 어떤 표지판처럼 끊임없이 우리의 의식을 무언가로 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언가를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아서, 우리로 하여금 무심코 그것이 지시하는 쪽을 향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 “어머, 저것 좀 봐!”라고 누군가가 큰 소리로 말하면, 그 주위에 있는 사람치고 그 쪽을 보지 않을 사람은 별로 없다. 우리의 마음속에 수시로 찾아오는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하찮은 생각이라 하더라도 일단 떠오르면 우리의 의식은 그 쪽을 향하지 않기가 어렵다. 이래저래 우리는 안팎에서 끊임없이 우리를 불러대는 것들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학생들은 어떨까? 아마 일부는 강의를 들으면서도 다른 무언가를 계속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어떤 대목에서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니 꼭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고 여러 번 강조해서 말했는데도 강의가 끝나기가 무섭게 한 학생이 찾아와서 그 부분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아까 중요하다고 여러 번 강조해서 말한 부분이다. 아마 그 학생은 그 부분을 말할 때 필시 그의 의식을 잡아끄는 무엇에 사로잡혀 있었을 것이다. 강의시간도 이럴진대 혼자 있을 땐 어떻겠는가?

우리의 생각 중 십중팔구는 쓸 데 없는 생각인 경우가 흔하다. 그것에 근거해서 행동으로 옮겼다가는 패가망신할 수 있는 생각 말이다. 요즘은 그 엉뚱한 생각에 휘둘려 크고 작은 일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많이 배운 사람도, 지체 높은 사람도 예외가 아니다. 왜 그럴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에 한 가지는 영성(spirituality)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전통적으로 영성이라 하면 종교적 과정을 일컫지만, 현대에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기댈만한 심원한 가치와 의미에 대한 주관적 경험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세계 너머의, 자기 자신의 깊숙한 내면과의 만남, 그리고 그곳에서 얻은 깨달음이라 할 수 있다. 당장의 욕망과 목표를 떠나서,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해 우리의 인생을 살 것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의미 있는 인생일까에 대한 성찰 같은 것이다. 그런 것이 확립돼 이런 저런 헛된 생각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지킬 수 있다면, 그 사람은 헛된 인생을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성과 인성에 더해서 영성을 심어주는 것은 교육에 매우 중요하다.

대학들이 많은 예산을 투입해 연중 내내 명사들을 초청해 그분들이 소중히 여겨온 가치의 세계를 털어놓게 하는 것도 학생들의 시선을 자신의 내면 깊숙한 곳으로 향하게 해 무언가 깨달음을 주기 위한 것이다. 학생들이 그 때만은 제발 딴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글쎄 그게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박노권 목원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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