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호 소설] 아웃터넷(OUTERNET) 49. 순원의 사랑, 나리코의 사랑

[최민호 소설] 아웃터넷(OUTERNET) 49. 순원의 사랑, 나리코의 사랑

  • 승인 2017-11-21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카엘엠(KLM), 즉 로열 더치 항공사(Royal Dutch Airlines)의 에어버스는 순원과 나리코를 싣고 오사카 공항 활주로를 힘차게 박차고 올랐다.

해외여행이 처음이라고 말하는 나리코와 함께.

나리코와 이렇게 가까이 단둘이 앉을 수 있다니, 그것도 앞으로 11시간 반이나..

비행기 밖의 둥둥 떠다니는 솜구름 같이 순원의 마음도 솜털같이 둥둥 떠다니는 듯 했다. 순원은 설레는 마음을 주체하기 어려웠다.



창밖으로 펼쳐지는 일본의 산하를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는 나리코를 곁눈질로 쳐다보던 순원은 속으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무슨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나, 낭만적이고 달콤한 여행이 돼야 할 텐데….'

순원은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을 화제를 열심히 머릿속에서 찾느라고 노력했다. 하지만 나리코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심하기 그지 없었다. 그저 창밖에만 관심이 가는 듯...

순원에게는 그런 나리코의 옆모습도 싱그럽기만 하였다. 귀여운 다람쥐 꼬리 같이 뒤로 묶어 목덜미 위에서 탄력있게 윤이 나고 있는 머리채, 그리고 그 밑을 곱게 흘러내리고 있는 보송보송 솜털이 나 있는 목덜미 선.

고개를 외로 돌리고 있는 아리따운 나리코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순원은 혼자서 가슴을 두근거렸다.

순원이 마침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비로소 나리코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나리코씨. 제가 재미있는 이야기 해 드릴까요? 혹시 비행기 속도를 어떻게 재는지 아세요?"

"....."

"흔히 비행거리를 시간으로 나누면 되는 것 아니냐 라고 하죠. 그런데 비행거리를 재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늘에서 거리를 잴 방법이 없는 겁니다. 사실은 땅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적어도 인공위성 자동위치측정시스템(GPS)이 개발되기 전 까지는 그랬습니다.

자동차 주행거리는 거리가 아니고 실은 타이어의 둘레에 회전수를 곱한 것입니다. 그게 주행거리인 셈이죠.

비행기는 타이어도 없으니 이런 방법이 안 통합니다. 사실 비행기 속도를 재는 것은 정밀한 물리학적 기술입니다."

나리코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순원은 중단할 수 없어 이야기를 이어갔다.

'스위스 태생의 수학자 야콥 베르누이는 '공기의 압력, 즉 총압(總壓?total pressure)은 정압(靜壓?static pressure)과 동압(動壓?dynamic pressure)의 합과 같다'라고 정리했습니다.

베르누이의 정리에 따라 비행기 속도는 동압 즉, 항공기 전방에 설치된 속이 빈 뽀족한 침(피토관?Pitot Tube)을 통해 들어오는 공기의 압력과 항공기 측면으로부터 받아들여진 정압을 빼서 속도를 측정한답니다.

물론 아직도 피토관을 이용하는 것은 아니고 요즘은 금속재질의 다이아프램(diaphragm)을 이용하고 있지요. 사람들은 항공기 속도측정 정도야 간단한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고도의 물리학이 적용되지 않으면 측정하기 어려운 것이라는 사실을 잘 모르지요.

배 속도는 어떻게 재는지 아세요?"

나리코는 여전히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머쓱해진 순원은 다소 낭패감이 들었다. 순원이 입을 다물자 나리코는 다시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부드러운 머리칼에서 향기로운 냄새가 순원의 코에 전해졌다.

"순원씨."

창밖을 응시하던 나리코가 순원을 불렀다.

"순원씨는 네덜란드 하면 무엇이 생각나요, 과학자들 이름이 생각나나요?"

순원은 나리코의 물음에 숨이 탁 막히는 듯 했다. 제프와 튤립, 그리고 풍차와 제방이 생각났지만 어쩐지 그런 걸 말하면 싱거울 것만 같았다.

"나리코씨는 무엇이 생각나는데요?"

"저는 카스테라가 생각나요. 나가사키에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일본 최초의 카스테라 가게가 있어요. 거기서 맛본 카스테라가 얼마나 달콤하고 부드럽던지요. 그런데 바로 그 카스테라가 네덜란드에서 왔다고 하더군요. 네덜란드는 저에게는 맛있고 부드럽고 달콤한 카스테라 같아요."

순원으로서는 전혀 상상이 미치지 않는 추억을 나리코는 가지고 있었다. 순원은 네덜란드하면 무엇이 생각날까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하멜표류기나 고흐?

그렇지만 고흐라는 화가는 네덜란드의 이미지하고는 연결이 되지 않았다. 순원에게 고흐는 정신병을 앓던 비운의 화가일 뿐, 그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관계가 없었다. 그는 그저 인간이었을 뿐이다.

사실 고흐가 일본의 풍속화, 즉 우키요에(浮世畵)의 수집광이었다는 사실을 순원이 알 길은 없었다.

세계의 화단에서는 고흐의 그림에 일본 풍속화의 화풍이 어느 정도 숨어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도 순원으로서는 더더욱 알 길이 없었다.

"네덜란드하면 풍차가 생각납니다. 풍차란 참 낭만적이지 않습니까? 바람소리에 돌아가는 바퀴가 밀을 빻고요, 바닷가에 연해서 네덜란드에는 바람이 많았나 보죠? 저는 바람이 좋아요. 바람소리는 더욱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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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까요? 겨울 찬바람이 아니라면.."

준원은 그렇게 말하는 나리코를 바라보며 바람에 휘날리는 나리코의 머리칼을 상상해 보았다.

머리칼에서 풍기는 그 좋은 냄새.. 그리고 날리는 그 머리칼들.

마음 속에 아름다운 풍경화 한 점이 그려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순원씨는 과학밖에 모르세요? 물리가 그렇게 재미있나요?"

뜻밖의 질문에 순원은 답을 찾기 어려웠다. 순원은 마치 나리코가 초등학교 때 여선생님처럼 느껴졌다. 자기를 이렇게 저렇게 타이르고 어르면서 가지고 논다.

순원은 정색하며 말을 다듬었다.

"과학기술이 저는 인류와 역사를 바꾼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인간은 인간답게 되었지요. 과학기술이 없는 인간이라는 존재는 실로 연약한 짐승에 불과하지 않겠습니까?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자들이 말하는 생명의 존엄성이나 인간의 가치도 따지고 보면 과학기술이 삶의 질을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공허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나리코는 순원의 말을 헤아리다가 다시 물었다.

"물질이 없으면 존엄성도 없다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물질이 아닌 것은 세상에 없으니까요. 생명도 생화학적으로 미세하게 분석하면 결국 물질로 귀착되지 않을까요. 다만 어떤 물질이 더 중요한 것인가 하는 가치관의 문제는 남겠지요.

예를 들면 다 같은 물질이로되, 생명이란 물질은 TV나 자동차 같은 물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중요한 물질이라는 거지요. 이러한 가치관의 문제는 저 보다는 사회과학자나 인문과학자가 생각할 문제라고 봅니다마는."

말없이 앉아있는 나리코의 모습에서 지금까지와는 달리 낯선 느낌이 전해졌다.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은 저도 잘 압니다. 나중에 만나게 될 제프라는 사람은 저하고는 아주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지요.

그렇습니다. 저는 다르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제 생각이 틀렸다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제프요? 그 분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요?"

"말하자면 제프는 과학기술에 빠지면서 오히려 인류는 더 불행해졌다라고 주장을 하지요. 있는 그대로의 자연에 과학기술이라는 메스가 가해짐으로써 오히려 순수성을 잃고 상처의 악순환이 계속된다고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말하자면 그가 생각하는 과학이란, 자연을 잘 관찰하여 그 자체를 존중하고 서로 공존하는 법을 공부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는 식물학을 연구하고 있는데 그래서 유전공학이나 생명과학이라는 것에 질색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차라리 그런 연구를 증오한다고 하더군요."

"저는 어쩐지 그분 생각에 친근감이 드는데요. 사실 플라워텔레스코프는 그러한 자연과의 대화를 모색하는 채널이니까요."

순원은 아버지와 제프의 얼굴을 그리면서 동시에 나리코를 생각했다. 순원이 덧붙였다.

"자연, 그것을 녹색이라고 상상해도 될까요? 식물이라고 해도 좋겠지요. 요즘 녹색성장이라는 말을 세상에서 많이 씁니다만, 그것을 자연을 보호하고 나무를 가꾸고 녹지를 조성하고 냇물을 복원하고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면 달라질 것은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녹색성장의 핵심은 에너지입니다. 화석연료를 감소하자는 것이니까요. 그러니 녹색성장의 관건은 에너지기술 아니겠습니까? 이산화탄소를 쓰지 않는 에너지를 개발하지 않고 단지 에너지를 절약한다는 것은 생각은 갸륵하기는 해도 순진한 어리석음으로 밖에는 안보입니다.

풍력이든 조력이든 원자력이든 보다 효율적인 에너지기술을 개발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자연은 현재보다 더 보전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에너지기술의 발전을 통해 자연은 진정으로 보전되고 식물은 보호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과학기술과 자연은 서로 대립시킬 사안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녹색성장을 성공시키려면 녹색당이나 환경주의자의 말을 들을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자의 말을 들어야 하고 그들을 지원해야 합니다."

순원이 약간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자 나리코가 말했다.

"그래요, 순원씨. 플라워텔레스코프도 결국 과학기술입니다. 하지만 저는 과학기술이라는 것을 인간만의 전유물이라 하여 우월감에 빠져 대자연을 인간의 생활을 위한 도구로 이용하는 과학자들의 자세를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과학기술이 자연의 신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저는 그게 싫습니다."

"자연은 아름답지요. 아름다운 물질이지요.

하지만 물질이라 하여 아름답지 않다거나 정신이라 하여 더 숭고하다거나 하는 것은 아직도 우리가 과학의 마지막 결정체를 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병이 걸리면 무당을 불러야 낫는다는 생각이 지금은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 되었습니까. 무당보다는 의사를 찾지요. 그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사랑과 존경심이 어떤 호르몬의 작용이라고 판명되었다 하더라도 저는 사랑과 존경의 의미를 조금도 과소평가하고 싶지는 않아요. 오히려 저는 그런 사랑과 존경이 더욱더 충만된 사회 속에 살고 싶습니다."

순원이 말을 마치자 나리코는 순원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순원은 숨이 멈춰지며 가슴이 설레는 것을 참느라 애를 썼다.

떨리고 있는 것은 나리코가 아닌 순원의 손이었다.

나리코는 떨리는 순원의 손에 가만히 힘을 주어 잡았다.

어쩌면 나리코의 손은 이리도 연하고도 투명할까?

나리코와 함께 있는 순원은 꿈만 같이 행복했다.

과학과 물리만이 온 세상이요, 비행기가 나는 속도보다 그 속도를 측정하는 기술에 온 정신이 팔려있는 이 순진한 청년은 흥분이란,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는 것에 불과한 것임을 그리도 잘 알면서 왜 이리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는 것일까?

나리코는 순원이 한없이 사랑스럽고 귀엽기까지 하였다.

(계속)

우보 최민호

최민호컷1
최민호 전 충남도 행정부지사는 전)국무총리 비서실장, 행정중심도시 복합도시 건설청장, 행자부 소청심사위원장, 행자부 인사실장, 충남도 기획관리실장, 2002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 사무차장(운영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전)배재대학교 석좌교수, 공주대 객원교수, 고려대 객원교수, 국회의장 직속 국회의원 특권내려놓기 추진위원회 위원(2016)으로 활동했으며 현)홍익대 초빙교수이다.

단국대 행정학 박사, 일본 동경대 법학 석사, 연세대 행정대학원행정학 석사를 거쳐 미국 조지타운대 객원 연구원으로 활동했으며 영국 왕립행정연수소(RIPA)를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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