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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서(대전대 총장) |
세상은 이런 사회에 대처하는 최고의 답으로 창의성을 내놓았고 전 세계가 유아시절부터 창의성 개발을 위한 교육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나 창의성이란 개념정의가 쉽지 않고 창의성 개발을 위한 제도권에서의 교육개혁은 더욱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언젠가 학생들에게 특강을 하며 창의성을 강조했더니 학생이 질문을 했다. "총장님은 창의성을 강조하는데 교수님들은 왜 주입식 교육만 하느냐?" 문제는 창의성 교육 자체의 어려움에 그치지 않고 창의성 교육에 매달리고는 있지만 창의성은 개발되지 않은 채 인성교육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학교나 학생들은 무한경쟁을 펼치고 있지만 창의성 개발과는 거리가 먼 지식암기 경쟁을 펼치며 인성마저 메말라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인 것이다. 무한경쟁을 하다 보니 협동정신, 동료애, 배려는 사라지고 개인주의, 조급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요즘 학교에서는 교육적 목적에서 조를 편성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과제를 내주곤 한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 팀플을 매우 싫어한다. 성격이 맞지 않는 학생들과 같은 조에 모여 활동하는 것이 힘들고 무임승차를 해 성적만 받아가려는 얌체족도 있기 때문이다. 기숙사에서도 외국인 학생들과 같은 방에 배정되면 외국어를 배우려는 학생들에게 환영받을 일이지만 실상은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는 다양화되고 사람들도 개성이 강해질 뿐만 아니라 국제화 속에서 세계인들과 같이 살아가야 하는 젊은이들에게 창의성보다 인성교육이 앞서야 할 이유인 것이다. 산업현장에서도 제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는 과거보다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협업을 해야만 가능해졌다. 자동차를 보더라도 기계공학 중심에서 전자, 디자인, 환경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협업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어려운 과제지만 이 두 가지를 아우르는 '창의적 인성교육'을 제안해본다. "왜, 무엇 때문에 인간은 기뻐하고 고통스러워하는가? "무엇을 어떻게 하면 인간이 더 행복해지고 불편함이 없어질 것인가?"에 대해 주변의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늘 관심을 갖고 답을 찾는 습관을 길러주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에 대한 애정과 창의적 노력이 동시에 증진될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것을 창의적 인성교육이라 부르고 싶다.
무한경쟁이 펼쳐지고 승자독식의 사회가 되면 승자는 홀로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 국가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내가 가장 먼저 최고의 것을 개발하여 독점적으로 판매한다 하여도 이 제품을 소비해주려면 주변의 사람들 역시 소득이 보장되고 발전되어 있어야 한다. 경제적 부국이 어려운 국가들에 원조하고 지원하는 것은 인류애 차원도 있지만 이 나라들도 발전해야만 부자국가의 경제활동도 결실을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과의 관계에서도 자연과 무한경쟁하여 개발만 하면 현재도 고통을 겪고 있는 것처럼 기상이변으로 지구의 종말을 가져올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우리는 인간끼리는 물론이고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에서 협력과 배려는 창의성보다 앞서는 것이고 인간이란 존재의 더 높은 가치라 할 것이다.
이종서 대전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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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서 대전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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