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6. 미국의 금주법이 우리나라에서도 시행되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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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6. 미국의 금주법이 우리나라에서도 시행되었더라면

술은 과유불급(過猶不及)이 제일

  • 승인 2017-12-27 09:49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지금도 이슬람 국가에서는 금주(禁酒)가 생활화되어 있다. 이슬람 율법에선 무슬림의 음주까지 철저히 금하는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의 보도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폐쇄적인 나라로 꼽히던 사우디아라비아에도 거대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현재껏 사우디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서구의 대중음악을 남녀 좌석 구분 없이 한자리에서 즐기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런데 이마저 깨지는 파격의 새바람이 불어오는 와중에 내년 초부터는 여성의 스포츠 경기장 입장 허용과 35년 만에 영화관 부활이란 국민적 선물까지 기다리고 있다는 외신이 반갑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여성이 운전대를 잡으면 체포됐는데, 내년 6월부터는 여성도 차량과 오토바이 운전까지 할 수 있게 됐다니 사우디에서는 그야말로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세상이 도래하는 셈이겠다. 사우디가 이처럼 파격의 정책을 선보이는 까닭엔 다 이유가 있다.

사우디의 재정수입에서 석유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88%나 된다. 하지만 예전과 달리 2014년부터 국제유가가 크게 하락하면서 외환보유고는 20%나 감소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사우디가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찾은 해법은 여성의 경제, 사회 활동을 지원하기로 한 것이란 게 이러한 변화의 전기다.

그렇지만 앞으로도 사우디에서의 '금주법'은 여전히 지속될 것이란 예측이다. 종교적으로 금주를 권하는 바에야 어찌 이를 어길 수 있으랴. 그런데 금주법(禁酒法) 하면 금세 떠오르는 나라는 미국이다.

1920년대 갱단이 지배하던 음습한 시대와 그 어둠을 틈타 술을 몰래 만들던 술 공장,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던 보안관과 갱단 사이의 총싸움...... 바로 이런 상상은 우리가 영화로도 보았던 금주법의 어떤 중심이다.

금주법은 1919년 미국 상원에서 통과되어 이듬해부터 발효되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제1차 세계대전 중에 부족한 곡물의 전용(轉用)을 방지하기 위해 추진된 게 바로 이 금주법이었다.

금주법
그런데 이 금주법은 풍선효과의 부작용처럼 그렇게 비정상적인 궤도(軌道)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설상가상 술의 합법적 생산과 제조가 금지되면서 제한적으로 유통되는 술의 가격마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폭등했다.

따라서 이는 당연히 술 한 잔으로 시름을 달래던 서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단초로 다가왔다. 그뿐만 아니었다. 가짜 술을 만드는 조짐이 확산되었는가 하면 그 과정에서 저질 술(가짜 술)을 마시다가 건강을 잃고, 심지어 목숨을 잃는 사람까지 속출했다.

이러한 대상은 물론 주머니가 가벼운 서민들이었다. 반면 금주법을 추진한 사회 지배층은 약간의 돈이 더 드는 불편을 겪었다지만 술을 마시는 데는 썩 어려움이 없었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 현상의 그것처럼 자본주의의 특성 상 어쩔 수 없는 괴리의 반향인 때문이었다.

더욱이 이즈음 알 카포네라는 전설적인 인물까지 등장하기에 이른다. 불과 스무 살에 불과했던 그는 시카고 갱단의 중심 세력으로 자리를 잡고 밀주와 매춘, 도박장 등의 사업 다각화를 통해 1927년에는 무려 1억 달러에 이르는 재산까지 축적했다니 실로 대단한 인물이었음에 이의를 제기하기 힘들다 하겠다.

알 카포네는 뉴욕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갱단의 말단 조직원으로 시작했지만 결국엔 미국의 암흑가를 지배하면서 '밤의 대통령'으로 일세를 풍미했다. 1929년 대공황을 겪으면서 미국 전역은 혼란에 빠져 들었고 이후 대통령에 출마한 루스벨트는 금주법의 폐지를 공약했다.

1932년 선거에서 승리한 그는 1933년 이 법의 폐지안에 서명했다. 하지만 미국은 연방국가인 만큼 각 주 정부의 결정이 남아 있었기에 미국 전역에서 금주법이 철폐되는 데는 1966년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그럼 우리나라에선 그와 유사한 '금주법'이 없었을까? 조선시대 영조는 즉위와 동시에 금주법을 시행했다. 영조는 "조선팔도에서 술 자체를 영원히 없애버리겠다"고 호언장담했다. 이에 신하들이 항의했지만 영조는 그대로 밀어붙였다고 한다.

심지어 술을 먹다 걸리면 사형이었다고 하니 당시 술은 그야말로 '극약'이었던 셈이다. 그러다가 정조가 즉위하면서 금주령이 풀렸다고 하는데 그 즈음 주당들은 과연 얼마나 환호작약했을지 '안 봐도 비디오'다.

술과 연관해서 등장시켜야 하는 인물들은 부지기수다. 그러나 지면 상 모두 그들을 소개할 순 없는 노릇이기에 '관동별곡'으로 유명한 송강 정철을 먼저 은밀히(?) 초대코자 한다. 당파 싸움이 한창이던 조선 중기,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었던 정치판에서 서인의 우두머리였던 정철은 반대파 동인의 숱한 공격을 받았다.

그때마다 임금 선조는 나서서 감싸줄 정도로 정철을 총애했다고 전해진다. 그런 선조도 말릴 수 없었던 정철의 결정적 결점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바로 술이었다. 정철은 술을 물 마시듯 사랑했는데 이는 복잡한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해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선조는 그에게 소주잔처럼 작은 은잔을 주면서 "앞으론 하루에 이 잔으로 딱 석 잔만 마시라"고 했다. 허나 그 조그만 석 잔 술로 만족할 수 없었던 정철은 이 잔을 두드려 늘리곤 사발처럼 만들어 술을 마셨다는 이야기도 없지 않다.

이 같은 풍설에 대해 정철의 후손들은 "왕께서 주신 하사품을 함부로 두드려 편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며 이는 당시 동인 측의 모함일 것으로 추측했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술에 관한 야사(野史)는 더욱 차고 넘친다.

조카인 단종을 죽이면서까지 정권을 탈취한 세조는 지금껏 역시도 비난과 비판의 손가락질 주인공으로 우뚝하다. 그렇지만 그는 신하가 어전(御前)에서 술주정으로 임금에게 무례를 저질렀다 해도 처벌하지 않은 꽤 괜찮은 '남아'였다.

1456년 1월에 세조는 사정전에서 술자리를 베풀었다. 그런데 이 때 만취상태의 구종직(丘從直)이 중언부언하면서 실수하는 우를 범했다. 세조는 그를 끌어내라고 명했다. 겨우 집으로 돌아온 그는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깼지만 하늘이 노랬다.

그도 그럴 것이 임금 앞에서 술주정을 했으니 어찌 살아남을 수 있었겠는가! 혼비백산하여 어전으로 달려간 그는 어제 술에 취해서 실수를 하였으니 죄를 달라고 청했다. 이에 세조는 술은 실수를 동반할 수도 있으니 괘념(掛念)치 말라며 오히려 관작(官爵) 1계급을 올려주는 파격까지 베풀었다.

허나 조선시대를 지나 이후로도 대중을 향한 금주법의 강행은 계속되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세수확보를 위해 양조장에서만 술을 빚도록 했으며 해방 이후에도 일반민가에서 술 빚는 것을 금지했다.

박정희 정권으로 바뀌면서 주세법이 개정되었고 쌀로 빚는 술 대신 이제는 국민주가 되어버린 희석식 소주가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근자(近者) 연거푸 술자리가 이어졌다. 먼저 아들의 장인과 장모님이 되실 사돈댁과의 상견례가 있었다.

꽃보다 수려한 미모를 자랑하는 며느릿감에 이미 내 마음까지 무장 해제된 터였다. 그래서 처음 뵙자마자 마치 십년지기를 만난 양 금세 화기애애의 탑을 쌓을 수 있었다. 더욱이 사돈 양반 내외께서는 우리부부와 같은 '베이비부머 세대'였다. 덕분에 어떤 공통분모의 마인드까지 형성되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게 상견례를 잘 마친 이튿날엔 고향에서 죽마고우들과의 정기모임이 있었다. 거기서 대취하는 바람에 대전역에선 가까스로 하차할 수 있었다.

술자리는 다음날에도 이어졌다. 이번엔 과거 몸담았던 모 언론사 간부들과의 송년회. 그날 역시 돌아온 것은 무수한 술잔. 하지만 그처럼 사흘 연속 마셔댄 술은 결국 과유불급(過猶不及)의 부작용으로 이어지는 디딤돌이었다.

머리는 깨질 듯 아프고 속은 콘크리트가 비벼진 양 괴롭기 짝이 없는 게 꼭 싸다듬이를 당하는 느낌이었다. '아, 너무 달렸어!!' 헛개차를 마셨어도 별무효과였다. 꿀물 역시도 비위만 와락 상하게 할 따름이었다.

사흘 거푸 '술과의 전쟁' 이전, 이틀 연속 고된 야근과 악전고투의 이어진 주간 근무가 불러들인 필연적 부작용이었다. 이럴 때의 비방(?方)엔 뭐가 있을까? 그건 바로 충분한 수면과 옥답(沃畓)처럼 넉넉한 긍정마인드의 구축이 답이었다.

기운은 여전히 쇠잔했으되 억지로 일어나 뜨거운 물로 목욕부터 했다. 아내가 사온 감기 몸살약을 먹은 뒤 침대에 누웠다. 천장이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았다. 그럼에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쉬어야 산다! 그것도 푹.

밤새 식은땀까지 흘러가며 억지로 잠을 청했다. 덕분에 오늘은 아침이 되자 비로소 하늘도 제 색깔로 보이기 시작했다. 연말연시가 되면서 송년회 등의 술자리가 빈번해지고 있다. 술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부드럽게 이어주는 징검다리다.

그러나 과유불급(過猶不及)이 말하듯 적당한 술은 건강에 좋지만 과하게 마시면 건강을 해친다. 사람들은 과음이 몸에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때론 미련스럽게 마구 들이켠다.

그 바람에 술은 사람이 처음 마시기 시작할 때는 양처럼 온순하지만, 조금 더 마시면 사자처럼 사나와지고, 거기서 더 발전하면 원숭이처럼 춤추고 노래를 부르다가 결국엔 마치 돼지처럼 추해진다고 탈무드에선 경고했던 것이리라.

최근 어떤 책을 보았는데 세상에 절망한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매일 술로 지내는 바람에 결국은 간이 다 녹아내려 세상을 떠났다는 내용이었다. 술이라는 게 그렇다. 처음엔 사람이 술을 마시지만 나중엔 술이 사람을 마시는 경우도 없지 않다.

어쨌든 만약에 미국의 금주법이 우리나라에서도 시행되었더라면 어찌 되었을까? 상상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하다. 술을 금한다면 절친했던 친구와 지인들조차 조차(潮差)의 간극처럼 저 멀리 십 리, 아니 백 리 밖으로까지 줄행랑을 치는 때문이다.

아직도 또 한 건의 술 약속이 남아있다. 과유불급을 교훈 삼아 술보다 밥부터 우선 먹고 볼 요량이다.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홍경석-인물-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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