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11. 한신이 반란에 성공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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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11. 한신이 반란에 성공했더라면

숙대의 의리와 한신의 의리는 달랐다

  • 승인 2018-01-12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진나라에 이어 중국을 두 번째로 통일한 인물이 한나라의 제1대 황제인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다. 4년간에 걸친 항우(項羽)와의 대결에서 끝내 그를 이기고 중국 천하를 다스리게 된다.

유방이 천하를 거머쥔 데는 발군의 활약을 보인 참모들의 공이 지대했다. 그중의 탁월한 인재론 대장군 한신(韓信)을 꼽아야 한다. '전략의 달인'이었던 그는 배수진(背水陣)과 다다익선(多多益善), 사면초가(四面楚歌), 필부지용(匹夫之勇) 등 여러 고사 속의 주인공까지 되었다.



발음 상 조금은 민망스런 '유방'과 달리 한신은 이름부터가 신뢰스럽다. 그는 어려서부터 매우 가난했다. 끼니조차 제대로 먹을 수 있는 형편이 되지 못해 심지어 걸인처럼 밥을 얻어먹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다 쫓겨나 강가에서 빨래하던 아낙네에게까지 밥을 얻어먹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한신을 거렁뱅이에 더한 무능력한 인물로 사람취급조차 안했다. 하지만 그는 마음속에 품은 큰 뜻이 있었기에 항상 칼을 차고 다녔다.



어느 날, 한신이 고향 회음의 시장 거리를 거닐 때였다. 칼을 찬 한신이 눈에 거슬렸던 불량배 하나가 그에게 시비를 걸었다. "너는 늘 칼을 차고 다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없는 겁쟁이 아니냐? 네놈에게 사람을 죽일 만한 용기가 있다면 그 칼로 나를 한 번 찔러 보아라. 그렇지 못하겠다면 내 가랑이 밑으로 기어 나가라!"

그 소리에 구경꾼이 모여들어 웅성거렸다. 잠시 머뭇거리던 한신은 바닥에 엎드려 그 불량배의 바짓가랑이 밑을 기어 나왔다. 이 일로 시장 바닥 사람들이 다들 그를 겁쟁이라고 비웃었다. 과하지욕(袴下之辱)은 이래서 생성된 사자성어다.

진나라 말, 나라의 국운이 기울면서 난세가 되자 항우(項羽)가 그의 숙부인 항량(項梁)과 함께 군사를 일으켰는데 한신은 이에 가담하였다. 그러나 한신은 미천한 신분이라는 이유로 요직에 중용되지 못했고 한직으로만 전전했다.

과하지욕
한신의 과하지욕
'과하지욕'의 소문은 그를 더 이상 중용(重用)의 기회까지 얻지 못하게 하는 단초로 자리매김했다. 이 뿐만 아니라 귀가 넓었던 유방과 달리 항우은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표현처럼 평소 성품이 거만하기 짝이 없었다.

즉 한신이 없이도 자신의 능력만으로 충분히 천하를 제패할 줄 착각했다. 자신의 재능을 알아주지 않자 절망한 한신은 항우를 떠나 유방의 진영에 가담한다. 하지만 유방의 휘하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하다가 군법을 어긴 죄로 목숨이 경각에 달했다. 천만다행으로 사람을 알아본 하후영이 한신의 탄식을 듣고 살려주었다.

하후영은 한신의 재능을 알아보고 승상 소하(蕭何)에게 추천하였고 소하도 한신의 재능을 인정하였다. 소하는 유방과 함께 군사를 일으킨 사람으로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 인물이었다.

소하는 한신을 유방에게 천거하였고 유방 역시 그를 파격적으로 삼군 총사령관인 대장군에 임명하였다. 한신은 유방의 군사를 지휘하여 위(魏), 조(趙), 제(齊) 등 제국(諸國)의 군세를 잇따라 격파하였다.

특히 조(趙)나라와의 싸움에서 한신의 재능은 더욱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한신은 불과 2만의 군사로 배수진을 치고 그 10배인 조나라를 제압하는 등 그야말로 파죽지세의 연승을 거둔다.

한신의 기세가 날로 커지자 항우와 유방의 싸움에서 그는 새로운 변수로 떠오르게 되었다. 한신은 이어 제(齊)나라를 공격하여 함락시켰는데 이때 외교술로 전투 없이 공략하려던 유방의 뜻과 달리 무력으로 제나라를 굴복시켰다.

한신은 여기서도 크게 공을 세우자 유방에게 제나라 왕(齊王) 자리를 요구했다. 유방은 항우와의 싸움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할 수 없이 한신을 제나라 왕으로 임명했지만 후일 이 일로 말미암아 한신과 유방은 등을 돌리게 되었다.

한신을 창업공신이 아니라 자신을 위협하는 존재로 두려움까지 느낀 유방(실제는 여태후가 했지만 '부창부수'인 까닭에)은 결국 계략을 펼쳐 한신을 압송한다. 이때 한신이 호송수레 안에서 혼자 중얼거렸다는 "토끼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토사구팽(兎死狗烹)이 지금껏 역시도 세인들의 인구에까지 회자되고 있다.

한신의 처참한 최후의 이면엔 다소 우유부단의 유방보다 잔인하기 그지없던 그의 처 여태후가 있었다. 그럼 그녀가 얼마나 악랄했던가를 살펴보자. 기원전 197년 거록에 태수로 부임하였던 진희가 반란을 일으킨다.

이를 진압코자 한고조가 전장에 나간 사이, 여태후는 통일의 일등공신이었던 한신이 반란을 획책하고 있다는 누명을 씌워 압송을 명한다. 그리곤 한신을 참수한다. 연금 상태에 있던 팽월도 주살하여 그 시신을 소금에 절여 경포에게 보낸다.

팽월의 끔찍한 시신을 본 경포는 자신도 언젠가 그렇게 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반란을 일으켰지만 결과는 참담한 죽음이었다. 유방이 죽은 뒤 그녀의 악행은 더욱 정점을 달렸다. 유방의 애첩 척희가 낳은 아이들을 모조리 죽였으며 척희의 손발을 모두 잘랐다.

목과 몸만 남긴 후 눈을 도려내고 귀를 자른 뒤 약을 먹여 말을 못하게 만들었다. 산송장이나 다름없었던 척희를 변소 구덩이 속에 던져 넣은 후 '사람돼지'라 부르게 했다.

이처럼 잔인무도의 여태후를 진작 간파하지 못한 게 한신의 최대실책이었다. 그럼 왜 그는 그런 결정적 실수를 저질렀을까. 사견이지만 그는 항우와 달리 자신을 요직에 등용시켜준 유방에 대한 '의리'를 지키려 끝까지 노력했음이 그 사달의 실마리라고 보는 터다.

여기서 잠시 또 다른 의리의 한 장면을 등장시킨다. 평일의 주간근무 때면 꼭 오는 사람이 있다. 그는 택배를 하는 분이다. '칸트의 시계'인 양 정확한 시간에 우리 회사로 들어서는 그분은 항상 스마일 미소를 자랑한다.

"안녕하세요?" "추운데 수고 많으십니다!" 그렇게 덕담을 나누다보니 사소한 가정사까지를 알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그분의 딸이 작년 명문대에 진학했다는 사실을.

아울러 대학 등록금과 기숙사비 등의 납부는 같은 택배 일을 하시는 아버님의 도움을 받았다는 얘기도. 어제도 그분이 오셨기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참, 따님은 방학이라서 집에 있겠네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녀석이 워낙에 부지런한지라 하루도 안 놀고 알바하고 있어요"라며 자랑했다. 대저 자식자랑은 팔불출이라고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가뜩이나 팍팍한 세상이거늘 그러한 자랑조차 없어서야 과연 무슨 낙과 맛으로 살까.

그래서 맞장구를 쳤다. "와~ 자랑스런 따님을 두셨으니 밥을 안 드셔도 배부르겠네요." 충북 제천에서 일어난 대형화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들이 비극을 당했다. 마치 '세월호 사건'인 양 있어선 안 될 인재(人災)의 도돌이표에 많은 국민들이 분노했다.

그 피해자 중에 숙대 합격생 김다애 양(18)의 경우는 정말이지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슬픔의 극치였다. 경험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자녀가, 특히나 어려운 환경에서도 열심히 공부하여 소위 명문대에 합격했다는 건 그보다 더한 기쁨이 없는 법이다.

제천 화재로 사망한 제천여고 3학년 다애 양은 수시전형으로 숙명여대 4년 장학생으로 합격해 올해 입학을 앞두고 있었다. 하늘도 슬펐던지 제천 화재 사망자들의 영결식 날엔 굵은 비도 하염없이 내리며 종일 우중충했다.

그날 눈길을 끌었던 건 숙대에서 보낸 조화였다. 이는 고인들의 발인 전날 이형진 숙명여대 대외협력처장이 '숙명여자대학교'라고 적힌 조화를 들고 오면서 확인되었다. 이는 다애 양의 안타까운 사연을 접한 강정애 숙대 총장 등 학교 관계자들이 다애 가족의 슬픔을 함께 나누자고 의견을 모았다는 데서 기인했다고 한다.

이처럼 숙대가 고인에게 '파격'의 예우를 보인 건, 이 처장의 전언처럼 "숙대에서도 좋은 인재를 잃어 비통해하고 있다"는 발언이 그 방증이다. 지난해 공대를 설립한 숙대 입학전형팀은 여성 인재를 찾아 전국의 고교를 찾아다니다 제천여고에서 전교 1, 2등을 다투던 다애 양을 모의 면접장에서 만나 발탁을 결심했다고 한다.

대학도 경쟁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따라서 우수인재의 확보는 당연한 욕심이다. 그러하기에 숙대의 다애 양 입도선매(立稻先賣) 역시도 같은 맥락이라 하겠다. 명문대를 다니는 자랑스런 딸을 상상했을 다애 양의 부모님과 가족들 심정은 오죽했을까!

다애 양에게 새삼 심심한 조의를 표하며 아울러 숙대의 '의리'에도 박수를 보낸다. 의리(義理)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일컫는다. 그 의리가 하지만 갈수록 퇴행(退行)되는 즈음이기에 '숙대의 의리'는 더욱 그 빛을 발했다고 보는 시각(視角)이다. 여기서 다시 발길을 그 옛날 비극의 주인공이었던 한신에게 돌린다.

만약에 한신이 여태후의 부름을 자신의 최후로 인식했다면 어찌 되었을까? 기세등등의 전세로 항우를 물리치듯 여태후를 몰아냈더라면 아마도 그는 또 다른 국가의 건설을 도모한 황제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한신은 '과하지욕'의 결기를 끝까지 밀어붙여야 옳았다. 과하지욕의 끝은 대기만성(大器晩成)과 입신양명(立身揚名)이 축을 이루는 때문이다. 공신들까지 무차별로 죽이는 유방의 의리변절과 달리 외골수 의리의 고집에 한신은 결국 스스로 멸망의 늪을 팠다.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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