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13. 마리 앙투아네트가 정략결혼을 안 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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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13. 마리 앙투아네트가 정략결혼을 안 했더라면

'양날의 칼' 小考

  • 승인 2018-01-18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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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앙투아네트
마리 앙투아네트(Marie-Antoinette)는 프랑스 왕 루이 16세의 왕비였다. 오스트리아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딸로 태어난 그녀는 온전한 '금수저' 출신이라 하겠다. 그녀는 베르사유 궁전의 트리아농관에서 살았으며 아름다운 외모로 인해 '작은 요정'이라 불렸다고 한다.

앙투아네트는 1770년 불과 14살의 어린 나이 때 정략결혼으로 말미암아 1774년에는 일약 프랑스의 왕비가 되었다. 검소했던 국왕 루이 16세와는 달리 낭비가 어찌나 심했으면 '적자부인(赤字夫人)'이라는 빈축을 사기까지 했다.



프랑스 혁명(French Revolution)은 1789년 7월 14일부터 1794년 7월 28일에 걸쳐 일어난 프랑스의 시민혁명이다.

왕정(王政)의 대부분이 그러했듯 프랑스 역시 소수의 귀족과 성직자들만이 별도의 특권신분을 구성했다. 그리곤 그들만의 리그에서 무위도식의 '참 좋은 세월'을 구가했다. 그러한 과정에서 루이 16세(재위 1774∼92)의 정부는 미국독립혁명을 지원한 군사비 때문에 재정궁핍에 빠졌다.



이에 재정총감 칼론은 1787년 2월에 명사회(名士會)를 소집하고, 특권신분에게도 과세하는 '임시지조(臨時地租)'를 제안하였다. 이에 대항하여 귀족과 성직자들은 국왕을 뒷받침하던 사법관료의 핵심인 파리 고등법원과 결탁한다.

이어 고등법원이 가진 법령심사권한을 이용해서 왕정고문부의 재정안(財政案)에 저항하였다. 이렇게 왕권 내부에서 투쟁하는 사이에 재정총감 칼론과 그 후임자 브리엔이 실각한다. 1788년 8월에 네케르가 재차 재정총감으로 기용되었는데 그는 고등법원의 요구를 받아들여 1614년 이래 열리지 않았던 전국 삼부회를 다음해에 소집할 것을 국민에게 약속하였다.

하지만 프랑스 왕권은 1789년 7월 11일 삼부회의 최고책임자이기도 했던 네케르를 파면한다. 이 소식이 알려지자 프랑스의 파리 시민들은 성문을 굳게 닫고 바리케이드를 구축하여 경계했다.

7월 14일엔 약 1만 명의 시민이 시의 동부 요새이며 정치범을 수용하는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였다. 진압 차 달려온 군대도 시민들의 열렬한 열기에 압도되어 감히 손을 쓰지 못하였다고 하니 당시의 위압(威壓)은 마치 우리나라의 5.18 민주화 운동다웠지 싶다.

아무튼 바스티유 감옥 습격 사건은 순식간에 지방으로도 전해져 전국 각지에서 격렬한 농민반란을 유발하였다. 영주의 성관(城館)과 호적. 토지대장의 보관소가 습격당하고 전국은 공포분위기에 휩싸였다.

사태를 우려한 헌법제정의회는 1789년 8월 4일 밤의 회의에서 노아유 자작의 제안을 받아들여, 봉건적 신분제와 영주제의 폐지를 단행하였다. 이와 함께 프랑스에는 비로소 법 앞에 평등한 조건이 실현되어 전 국민이 대등한 권리와 의무를 보증받는 형태가 되었다.

다만, 농민에 대하여는 10분의 1세와 부역은 폐지되었으나 현실적으로 영주 지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신분을 돈으로 되사야 하였기 때문에 그 후에도 분쟁은 계속되었다. 헌법제정의회는 이러한 경우에 있어선 여전히 영주와 지주층의 이해를 대변하였으므로 '지주 부르주아' 편향이라는 악평을 받았다.

8월 26일 의회는 라파예트 등이 기초한 '인권선언'을 가결하고, 인간의 자유 ·평등, 국민주권, 법 앞의 평등, 사상의 자유, 과세의 평등, 소유권의 신성 등 신질서의 기본적 제원칙을 명시하여 혁명의 정의(正義)를 내외에 선양하였다.

이 '인권선언'은 부르주아적이기는 하였지만 근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일대 기념비로서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 프랑스 혁명 당시 파리의 식량사정은 급속히 악화되었다. 파리 하층시민의 부녀자들은 1789년 10월 5일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행렬을 지어 베르사유를 향해 시위행진을 시작했다.

그 뒤에는 남편과 국민군의 병사들도 뒤따랐다. 저녁 때 일행은 왕궁에 도착하여 루이 16세에게 파리 귀환을 요구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하룻밤을 숙영(宿營)하고 다음날 왕궁으로 난입하였다. 국왕 일가는 시민에게 포위된 채, 파리의 튈르리 궁전으로 귀환하였다.

의회도 파리로 옮겨졌으며, 이후 왕궁과 더불어 파리 시민의 엄중한 감시를 받게 되었다. 결국 국왕은 1793년 1월, 국가에 대한 음모죄로 기요틴(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마리 앙투아네트 역시 프랑스혁명이 시작되자 파리의 왕궁으로 연행되어 시민의 감시 아래 생활하다가 1793년 10월 16일 국고를 낭비한 죄와 반혁명을 시도하였다는 죄명으로 처형당한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거론하자면 "(프랑스 국민들에게)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하세요"라고 했다는 말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그러나 이는 '역사는 승자(勝者)에 의해 쓰여진다'는 말이 있듯 곡해된 부분이 많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어쨌거나 마리 앙투아네트의 비참한 최후는 정략결혼에서 비롯된 것이었음은 분명하다. 주지하듯 정략결혼(政略結婚)은 가장이나 친권자가 자신의 이익이나 목적을 위하여 당사자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시키는 결혼이다.

과거 우리나라의 조선시대엔 신랑의 얼굴도 모르고 시집을 가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고 한다. 한데 이러한 경우의 후유증과 파열음은 마리 앙투아네트의 경우처럼 '잭 나이프현상(jack knifing)'을 초래하기도 한다.

이는 기계공학 용어인데 트랙터와 트레일러의 연결 차량에 있어서 커브에서 급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트레일러가 관성력에 의해 트랙터에 대하여 잭 나이프처럼 구부러지는 현상을 뜻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화물차나 기차가 갑자기 속도를 줄이면 뒤에 연결된 차량이 앞 차량의 무게중심 때문에 앞으로 들리고 꺾이는 이치와 같다. 정략결혼의 대표적 비극 인물로는 역사의 격랑 속을 살아간 조선의 마지막 옹주였던 덕혜가 거론된다.

1912년 5월 25일,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 있던 고종의 거처 덕수궁에서 아기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조선의 마지막 옹주인 덕혜(1912~1989)가 태어난 것이다. 고종이 회갑을 맞던 해에 얻은 늦둥이 딸이었으니 오죽이나 예뻤을까!

그렇게 태어난 덕혜옹주는 1907년 일제의 압력으로 강제 퇴위를 당한 후 실의의 나날을 보내던 고종에게 삶의 큰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덕혜의 나이 겨우 8살 때 고종은 승하한다. 간악한 일제는 조선 황실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라도 덕혜에게 철저한 일본식 교육을 시키려 획책했다.

일제는 영친왕에게도 그랬듯 덕혜에게도 일본 유학을 강요했다. 일제의 압박에 굴복한 순종은 1925년 3월 24일 덕혜의 동경 유학을 명한다. 14세의 어린 소녀 덕혜는 정든 궁궐을 떠나 일본이라는 낯선 이국땅에 발을 디뎠다.

덕혜의 슬픔은 계속되었다. 1926년엔 오빠 순종의 죽음과 1929년의 생모 양씨의 죽음이 바로 그것이었다. 덕혜는 일본 땅에서 말 그대로 '고아'가 되었다. 일제는 덕혜를 대마도 백작 소 다케유키(宗武志)와 정략결혼까지 시키는 만행을 저지른다. 그 정략결혼의 상처는 금지옥엽 딸이었던 정혜(正惠)마저 1956년에 자살하겠다는 유서를 남기고 실종된 지 7년 뒤 사망처리 되었음에서 볼 수 있듯 더욱 극명한 아픔을 남겼다. 설상가상 덕혜는 결혼 후엔 조현병에까지 시달렸다고 한다.

결국 덕혜는 법적 보호자였던 영친왕과의 합의를 통해 남편과 이혼을 한다. 1945년 해방 이후 흐릿한 정신 속에서도 덕혜는 어린 시절을 보낸 고국의 궁궐에 가기를 학수고대했다.

이 무렵 서울신문의 김을한 기자가 덕혜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귀국을 위해 백방으로 노력을 했지만 조선 황실의 존재에 정치적 부담을 느낀 이승만 정부는 덕혜의 귀국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박정희 정부 시절에 다시 탄원서를 올린 끝에야 마침내 귀국길에 오를 수 있었다. 덕혜는 1962년 1월 26일에야 비로소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 무려 37년 만의 귀국이었다.

14세의 꽃다웠던 소녀가 51세의 중년 여인으로, 그것도 풍상에 찌든 얼굴에 초점 없는 눈매를 한 채 돌아온 것이었기에 많은 국민들이 함께 슬퍼했다. 덕혜는 귀국 후에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요양했지만 병세는 크게 회복되지 않았다.

1989년 4월 21일 덕혜옹주는 병세를 이기지 못하고 낙선재에서 세상을 떠났다. 마리 앙투아네트 얘기에 애먼(?) 덕혜옹주까지 등장시킨 건 정략결혼의 폐단과 부작용을 새삼 강조하기 위함에서의 어떤 변통(變通)이다.

그레그 제너가 쓴 <소소한 일상의 대단한 역사>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을 보면 마리 앙투아네트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장면이 등장한다.

- '거창한 드레스의 대명사였던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희한하게도 베르사유 궁전 근처에 '왕비의 마을'이라는 시골풍 테마파크를 만들었다. 그리곤 그 안에서 시골처녀 행세를 하고 노는 취미가 있었다.

그곳에서 그녀는 왕비로서의 호화로운 장식을 모두 벗어던지고 미천한 농장 처녀인 척 하며 소젖을 짰다. 그러면서 소박한 생활을 체험해 보고 싶다는 환상을 충족했다.' -

만약에 마리 앙투아네트가 정략결혼을 안 했더라면 그녀는 오스트리아의 공주에 이어 심지어는 여왕의 자리에까지 올라 죽을 때(그것도 자연사(自然死)로)까지 호의호식을 누리지 않았을까?

권력은, 더욱이 정략결혼은 역시나 양날의 칼인 양 위태롭기 짝이 없음은 만고불변의 어떤 이치가 아닐까 싶다.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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