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14. 개화파가 일본을 끌어들이지 않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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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14. 개화파가 일본을 끌어들이지 않았더라면

줏대 없는 외세 의존은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

  • 승인 2018-01-22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김옥균
김옥균/출처=위키백과
김옥균(金玉均)은 갑신정변(甲申政變)의 주역이다. 그러나 '삼일천하'로 막을 내렸다. '갑신정변'은 1884년(고종 21) 김옥균을 비롯한 급진개화파가 개화사상을 바탕으로 조선의 자주독립과 근대화를 목표로 일으킨 정변이다.

김옥균과 박영효, 서광범과 홍영식, 서재필 등의 양반 출신 청년지식인은 19세기 중엽 박규수, 오경석, 유홍기 등의 사상과 그들로부터 받은 서구사회에 관한 문명서적을 통해서 실학사상의 긍정적 요소와 세계정세의 흐름 및 자본주의에 관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함으로써 조선사회의 개혁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이들 개화파들은 온건개화파와 급진개화파가 혼재했다. 온건개화파는 부국강병을 위해 여러 개혁정책을 실현하되, 민씨 정권과 타협 아래 청나라에 대한 사대외교를 종전대로 계속 유지하면서 점진적인 방법으로 수행하자는 입장이었다.

반면 급진개화파는 청나라에 대한 사대관계를 청산하는 것을 우선과제로 삼고 민 씨 정권도 타협의 대상이 아닌 타도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던 중 1882년(고종 19년)에 임오군란(壬午軍亂)이 일어난다.

신식군대를 양성하는 별기군(別技軍)이 급료와 보급에서 좋은 대우를 받는 데 비해 구식군대인 무위영(武衛營), 장어영(壯禦營) 2영의 군졸들은 13달 동안 봉급미를 받지 못해 불만이 높았다.

어찌어찌 겨우 한 달 치를 받게 되었으나 그것마저 턱없이 부족한 데다 모래가 반 넘게 섞여 있었다. 이에 격분한 구식군졸들이 고지기를 선혜청 당상(堂上) 민겸호의 집으로 몰려가 저택을 파괴하고 폭동을 일으켰다.

사태는 더욱 격화되어 군민의 불평은 민 씨 및 일본 세력의 배척운동으로까지 확대되었다. 군민들은 별기군 병영으로 몰려가 일본인 교련관 호리모토 공병소위를 죽이고 일본 공사관을 포위한 뒤 불을 지른 뒤 일본순사 등 13명의 일인을 더 살해했다.

하나부사(花房義質) 공사 등 일본의 공관원들은 대경실색하여 인천으로 도망쳐서 영국 배의 도움으로 본국으로 돌아갔다. 이튿날 더욱 강력해진 군민은 대원군의 밀명에 따라 영돈령부사 이최응 등을 살해하고, 명성황후를 제거하기 위해 창덕궁 돈화문 안으로 난입한다.

혼비백산한 명성황후는 궁녀의 옷으로 변장한 후 궁궐을 탈출, 충주 장호원(長湖院)의 충주목사 민응식의 집으로 피신했다. 사태가 위급함을 느낀 고종은 전권을 대원군에게 맡겨 반란을 수습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대원군을 불러들였다.

이리하여 왕명으로 정권을 손에 넣은 대원군은 반란을 진정시키고 군제를 개편하는 등 군란의 뒷수습에 나섰지만, 민 씨 일파의 청원을 받아들인 청나라가 재빨리 군대를 파견함으로써 그의 재집권은 단명에 그치고 말았다.

청나라는 이 난의 책임을 물어 대원군을 톈진(天津)으로 납치해갔으며, 일본은 조선정부에 강력한 위협을 가해 주모자 처벌과 손해 배상을 내용으로 하는 제물포조약을 맺게 했다.

군변으로 시작된 이 난은 결국 대외적으로는 청나라와 일본의 조선에 대한 권한을 확대시켜주는 결과가 되었다. 또한 대내적으로는 개화세력과 보수세력의 갈등을 노출시켜 갑신정변의 바탕을 마련해주었다.

임오군란은 수구적인 민 씨 정권과 급진개화파의 관계를 급속히 냉각시켰다. 점입가경(?) 민 씨 정권의 요청으로 조선에 출병하여 봉기를 진압한 청나라는 이때다 싶어 군대를 주둔시키며 조선침략을 획책하였다.

이처럼 외세에 의한 정권의 안정 도모는 결국 망국의 지렛대로 작용했다. 1884년 8월 안남(安南 = 지금의 베트남) 문제를 두고 청나라와 프랑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 청나라는 조선에 주둔하고 있던 군사 3,000여 명 가운데 절반을 철수시켰다.

때는 이때다 싶어 1884년 음력 10월 17일 저녁, 낙성식이 열리던 우정국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아수라장이 된 연회장에서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이 급히 빠져나왔다. 이들은 서재필 휘하 사관생도들을 경우궁으로 이동시키고 그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일본 공사관으로 가서 일본군의 출동을 확인한 뒤 대궐로 향했다.

고종을 만난 이들은 우정국에서 변란이 일어났음을 알리고 형세가 위급하니 피할 것을 요청했다. 고종과 명성황후는 급히 경우궁으로 몸을 피했다. 그러자 곧 일본군이 경우궁 외곽을 에워쌌다.

여기서 잠깐, 당시의 조선 정부는 임오군란의 진압에는 청나라 군대를, 갑신정변엔 일본군을 끌어들이는 따위의 그야말로 줏대 없는 외세 의존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랬으니 어찌 조선이 망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아무튼 그렇게 수구파 수뇌들을 제거한 개화파는 날이 밝자 대내외에 새 정부의 발족을 알렸다. 홍영식은 좌의정에, 박영효는 전후영사, 서재필은 병조참판, 김옥균은 호조참판을 맡는 등 국가의 중추기관을 장악한다.

그렇지만 이들의 '혁명'은 불과 3일 만에 끝나고 나는데 이는 예상외로 청군이 신속하게 개입하면서 사태가 급변했기 때문이다.

당시 청군을 이끌던 원세개(위안스카이)는 일본과의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었던 반면, 전쟁 준비가 미처 되어 있지 않았던 일본은 한 발 물러섰다고 한다. 결국 홍영식 등은 왕에게 투항하고, 김옥균과 박영효 등은 인천항에 입항해 있던 일본 배에 올라타 조선을 탈출했다.

김옥균은 1851년 충청남도 공주군 정안면에서 안동 김 씨 가문 김병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22세 되던 해 알성시에 장원급제했고 그 후 사헌부 감찰과 홍문관 교리 등을 거치며 청년 엘리트로 정계에 두각을 나타냈다.

정치적으로도 더욱 성장하여 고종으로부터 신임까지 얻게 된 그는 외채를 빌려 오겠다며 일본에 갔다. 하지만 묄렌도르프와 수구파의 음모로 차관 교섭은 실패로 돌아갔고 개화파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외채 도입 실패를 추궁하는 수구파의 압력에 신변의 위협까지 느낀 개화파들이 선택한 길은 급진적인 개혁이었다. 마침 프랑스와 전쟁 중이던 청이 병력을 빼가 조선에 주둔하던 청군의 병력은 반으로 줄어 있었다.

이들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일본군의 협조가 필요하다고 느낀 개화파는 병력 파견을 요청했다. 가뜩이나 조선침탈의 야욕을 숨기고 있던 일본은 얼씨구나 하면서 적극 협조를 약속했다.

하지만 청군의 기세에 밀린 일군은 거사에 실패한 김옥균에게 일본 거주를 허락하는 것으로 생색을 냈다. 일본에 도착한 김옥균은 고단한 망명생활을 시작했다. 분기탱천한 조선 정부는 '역적'에 다름 아닌 그를 죽이려 끊임없이 자객을 보냈다.

감탄고토(甘呑苦吐)라고 일본 정부 역시 더 이상은 이용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곤 그를 홀대해 오카사와라 섬에 강제 연금을 시키기도 했다. 1894년 김옥균은 마지막 승부수로 당시 청나라를 이끌고 있던 이홍장과의 담판을 위해 청으로 건너갔다가 상하이에서 조선에서 보낸 자객 홍종우에게 암살되었다.

조선에 넘겨진 김옥균의 시체는 양화진(楊花津)에서 능지처참되었다. 김옥균을 죽인 홍종우(洪鍾宇)는 법률을 공부하기 위해 프랑스에 갔다가 귀국하던 길에 동경(東京)에 머무르게 된다. 이때 친구 김유식을 통해 이일직과 만나게 되었다.

이일직은 자신이 일본에 망명중인 김옥균을 주벌(誅伐)하라는 국왕의 밀명을 받고 일본에 왔다고 고백한다. 그리곤 김옥균을 암살하는 일에 가담해 줄 것을 권유하였다. 이 제의를 받아들여 그 뒤 동지로 가장하고 김옥균에 접근해 마침내 그를 중국에서 살해했다.

경찰에 붙잡혔지만 조선 정부와 청국 정부의 교섭으로 석방되어 청국 군함의 호송 하에 김옥균의 시체를 가지고 귀국하였다. 김옥균 암살의 공으로 홍문관 교리 직을 제수받는가 하면 서울에 사택(舍宅)까지 하사받아 세도를 누렸다.

김옥균을 골칫거리로 여겨 냉대했던 일본은 막상 그가 죽자 돌변하는 이중의 간교한 모습을 보인다. 생전의 차가웠던 대우와는 사뭇 달리 김옥균의 죽음을 애도하는가 하면 조선의 개화와 독립을 위해 애쓰다 희생됐다고 칭송까지 했으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암살 배후엔 청이 개입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등 청에 대한 침략전쟁을 유도하기까지 했다. 김옥균의 미완의 혁명가였다. 그렇지만 일본이라는 외세까지 끌어들인 건 그의 결정적 실수였다.

그래서 얘긴데 만약에 개화파가 일본(군)을 끌어들이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또한 일본이 중국으로 가겠다는 김옥균을 만류했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더불어 그가 당시의 실권자였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의 바둑친구였듯 일본정부가 김옥균을 홀대하지 않고 애지중지했더라면 과연 어떤 일이 또 빚어졌을까?

아마도 그를 이용하여 개화(開化)를 빌미로 조선에 대한 노골적 침략의 야수 발톱을 더욱 거칠게 내밀었을 게 틀림없지 싶다. 스페인 철학자 조지 산타야나(George Santayana)는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부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그중에서 최선을 선택하고 최악을 회피할 최상의 기회를 가진다"고 했다.

김옥균은 미래예측의 혜안 부재에 이어 최악을 회피할 최상의 기회까지 놓친 인물이었다. 김옥균이 끌어들인 일본은 지금도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며 바득바득 우기고 있다.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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