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자기들끼리만 모여 있어서 그런지 자신들이 얼마나 친미적인지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자기들만의 조직 논리에 갇혀 그 속에서 누가 더 친미적인지 경쟁을 하고 있었다. 모든 일을 미국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게 외교부 공무원들의 습성이었다.
비록 우리나라에 이득이 된다고 해도 미국에 해가 된다고 판단되면 먼저 피하려고 했다. 미국과 부딪혀봤자 손해만 본다는 생각이 뼛속 깊이 박혀 있는 것이다. (중략)
외교부 출입 당시인 2002년 6월 주한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 사건, 일명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 발생하면서 불평등한 소파(SOFA,주한미군 지위 협정) 개정에 대한 국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촛불시위가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다…….
그렇지만 당시 우리 외교부는 효순이 미선이 사건을 단순한 교통사고 정도로 치부했다.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에 비유한 것과 똑같은 행태다...... 이런 상황에서 소파 개정이 이루어지겠는가. 우리가 기를 쓰고 물고 늘어져도 쉽지 않은 텐데 미리 선을 긋고 가장 소극적인 대응을 한 것이 잘난 외교부 공무원들이다."
이상은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지금까지 MBC뉴스 이용마입니다>(창비 출간)의 P.227~230 중 일부를 발췌한 내용이다. 이용마 기자의 외교부를 힐난하는 내용이 벼린 칼처럼 시퍼렇게 춤을 춘다.
SOFA 협정은 '한미주둔군 지위 협정(Status of Forces Agreement)으로도 불린다. 대한민국과 아메리카 합중국 간의 상호방위 조약 제4조에 의한 시설과 구역 및 대한민국에서의 합중국 군대의 지위에 관한 협정이다.
한미행정 협정은 주한미군의 법적인 지위를 규정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국제법상 외국 군대는 주둔하는 나라의 법 질서에 따라야만 하지만, 주둔하는 나라에서 수행하는 특수한 임무의 효율적 수행을 위해 쌍방 법률의 범위 내에서 일정한 편의와 배려를 제공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해당 국가와 미군 간에 행정 협정(SOFA)의 체결로 보장된다. 이에 따라 맺어진 주한미군의 지위에 관한 협정이 '한미행정 협정'이다. 이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국회 비준 없이 맺은 약식 협정에 해당하는 행정 협정이지만, 우리나라는 국회의 비준을 거쳐 맺은 조약이므로 우리 입장에서는 '한미주둔군 지위 협정'이라고 명명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할 수 있다.
1948년 '과도기에 시행될 잠정적 군사 안녕에 관한 행정 협정', 즉 주한미군의 지위에 관한 최초의 협정 이후 1980년대 들어 미군의 각종 범죄행위가 큰 사회 문제로 부각되자 1991년 1차 개정, 2001년 2차 개정에 이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2차 개정 이후에도 내용이 선언적이고 추상적인데다 여러 가지 전제조건 등으로 주한미군의 범죄에 대해 우리가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데는 어려움이 따르고 있는 게 현실이다. 3월16일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나눈 통화의 주제는 통상 문제에 맞춰졌다고 한다.
이날 통화에서 문 대통령이 미국의 '철강 관세' 문제를 제기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한국 대표단이 보다 융통성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문 대통령이 관심을 기울여 달라"며 사실상 발을 빼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트럼프의 확고한 '미국이익 극대화'의 도모 전략을 새삼 깨달았다는 것은 비단 필자만의 짧은 생각이었을까? 따라서 미국이 캐나다와 멕시코를 제외한 모든 국가에 대하여 미국으로 수입되는 철강재에 대해 25% 관세를 일괄 부과하는 조치는 불평등하고 부당한 제2의 SOFA 협정과도 같다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SOFA 협정은 왜 개선이 어려운 걸까? 우선 이는 우리가 6,25 한국전쟁 당시 미국에게 빚을 진 '빚쟁이'의 신세인 까닭이다. 대저 빚쟁이는 채권자에게 감히 큰소리를 낼 수 없다. 그럼 "당장에 빚부터 갚아!"라는 강공(强攻)의 부메랑을 자초하는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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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의 치욕을 견디고 나라와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과 청의 치욕스런 공격에 끝까지 맞서 싸워 대의를 지켜야 한다는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 그리고 그 사이에서 '인조'(박해일)의 번민은 깊어만 간다.
한데 이 역시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에 빚을 지게 된 조선의 무능한 정권과 관리들이 자초한 것이었음은 물론이다. 일본의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명나라를 치기 위해 길을 빌린다는 명목의 말도 안 되는 궤변을 내세우며 조선을 무단 침략하면서 임진왜란을 일으킨다.
임진왜란의 발발 전 당시 병조판서였던 율곡(栗谷) 이이(李珥)는 상소문을 통해 조선이 오래도록 전화(戰禍)를 겪지 않음에 따라 태만함이 날로 더하고 군대와 식량까지 모두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하찮은 오랑캐가 변경만 침범하여도 온 나라가 놀라 술렁이고 있거늘 더 큰 적이 침범해 오기라도 한다면 아무리 지혜로운 자라도 어떻게 계책을 쓸 수가 없을 것이라며 이른바 '십만양병(十萬養兵)설을 주장했다.
당시 오늘날 국방부장관에 해당하는 지위에 있던 율곡의 이러한 인식은 그러나 당시 국왕 선조(宣祖)의 인식부족 등이 원인으로 작용하면서 그예 전쟁의 비극을 불러들이는 단초로 작용하기에 이른다. 즉 스스로 빚쟁이의 처지로 전락하고야 만 셈이다.
일본의 후일 재침략은 6.25한국전쟁의 발발로 말미암아 우리나라를 남북으로 분단시킨 것도 모자라 미군과 연합군의 참전, 그리고 거기서 태동한 불평등한 SOFA 협정의 야기 등 각종의 난제를 양산시켰다.
이런 까닭으로 만약에 우리나라가 일본의 침략을 근원적으로 막았더라면 오늘날과 같은 한반도의 분단과 북의 핵 공격 등의 침략 협박, 그리고 SOFA 협정의 불평등 따위 역시 강 건너 불구경으로 치부해도 되었을 것이었다. '손자병법의 아홉 가지 지형(九地)'이란 것이 있다.
먼저 산지(散地)는 고향에 가까워 병사들이 전의를 잃고 흩어지기 쉬운 곳이다. 경지(輕地)는 타국의 영토이지만 이 역시 고향이 가까운지라 병사의 투지가 약하다. 쟁지(爭地)는 적이든 아군이든 어느 쪽이 점령해도 유리한 지역이되, 적은 병력으로도 쟁취가 가능한 지역이다.
고로 아군 뿐 아니라 적군에서도 만만히 본다는 치명적 약점을 내재하고 있다. 교지(交地)는 교통이 사방으로 뚫려있어서 누가 누구를 막기 힘들다. 구지(衢地)는 땅이 세 나라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땅으로 천하의 군대를 얻을 수 있는 곳이다.
중지(重地)는 적의 영토로 깊숙이 들어가 있어 쉽게 돌아오기 힘든 지역이다. '비지(?地)'는 호수나 늪지대 등 통행이 불편해 속히 벗어나야 하는 곳이며, 위지(圍地)는 지형이 아군을 둘러싸고 있어 소수의 적도 공격할 수 있는 곳이다.
끝으로 '사지(死地)'는 나아갈 수도 물러설 곳도 없는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형국인 까닭에 급히 싸우지 못하면 멸망할 수 있는 곳이란 뜻이다. 다소 장황하게 이를 소개하는 건 국방의 개념에 있어서도 고리타분한(?) 손자병법의 대입(代入)은 그러나 반드시 필요한 때문이다.
이는 또한 SOFA 협정의 개선(개정)이 어려운 까닭에 안타까운 마음으로 일부러 첨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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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