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34화. 지난 시절에도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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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34화. 지난 시절에도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댁의 자녀도 산부인과에서 낳으셨지요?

  • 승인 2018-04-02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아들의 결혼식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인륜지대사'처럼 큰일이 또 없다. 인간이 살아가면서 하는 큰일을 뜻하는 게 인륜지대사이다. 이는 조선시대의 유교사상과 맞물려 행(行)하는 것이라곤 하되 결코 허투루 볼 일이 아니다.

일반적으로는 혼인을 의미하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음에 더하여 종족보존을 위해 인간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하고 우선순위의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몸과 마음까지 덩달아 분주한 즈음이다. 어제도 지인들에게 종이 청첩장과 모바일 청첩장을 보내는 따위로 바빴다.

그렇게 보낸 지인들 중엔 모 도서관장님도 계셨다. 새벽에 출근하여 근무를 하고 저녁에 퇴근하는데 카톡 문자가 들어왔다. 그 도서관장님께서 보내신 문자였다.

"축하드립니다. 아드님이 00그룹에 입사해서 좋다며 기뻐하셨던 모습이 엊그제 같거늘 결혼까지 한다니 마치 제 일처럼 반갑습니다!" 그렇다. 그 관장님은 아들의 지난 날 '역사'까지를 한눈에 꿰고 계시는 때문이다.

지난 2015년 겨울 즈음 나의 생애 첫 저서가 발간되었다. 그 책의 발간 시 추천사를 바로 그 관장님께서 써주셨다. 아들과 딸이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부터 녀석들의 손을 잡고 도서관을 출입했다. 주말과 휴일에 도서관을 찾았는데 그때마다 관장님을 뵙곤 했다.

그때나 지금 역시도 내 별명은 '정월초하루'일 정도로 인사를 썩 잘 한다. "관장님 안녕하세요?" "네, 또 오셨군요? 오늘도 변함없이 자제분들이랑 같이 오시어 보기에도 참 좋네요!" 나는 어리보기인 까닭에 예나 지금 역시도 돈을 잘 버는 재주가 없다.

따라서 아이들에게도 다른 집 아이처럼 사교육을 시켜주지 못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아이 모두 원하는 대학에 합격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꾸준한 도서관 출입과 다독(多讀)에서 기인했다.

현재 내가 여러 곳의 언론과 국가기관 등지에까지 글을 쓰고 있는 원천 역시 많은 책과 동무한 덕분이다. 관장님의 반가운 문자에 고무된 나는 즉시 답신을 보냈다. "고맙습니다! 아들은 얼마 전 '과장님'으로 승진까지 했답니다~ ^^"

아들이 00그룹에 합격하고, 딸이 명문대를 들어갔을 때 역시도 진심으로 축하해주셨던 관장님이 새삼 감사하다. 사람은 누구라도 인정(認定)을 받을 때 진정 행복하다. 돌이켜보건대 두 아이를 기를 적에 한 번도 이웃집 아이와 비교하면서 면박을 준 적은 없었다.

반면 사랑과 칭찬만큼은 양수겸장(兩手兼將)의 비료로 뿌리면서 "지난달보다 성적이 더 올랐네? 역시 우리 아들(딸)은 달라!"라는 따위의 인정(認定)과 긍정 모드로 점철(點綴)했다. 오늘도 야근이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을 배낭에 챙긴다.

야근을 하면서 책을 읽으면 시간도 잘 간다. 마치 친조카를 살피듯 그렇게 불변하게 관심을 보여주시는 "000 도서관장님, 감사합니다!" 관장님까지 칭찬하신 아들과 딸은 지난 날 모두 산부인과에서 출산했다.

아들은 고향 천안의 S대학병원에서, 딸은 대전 부사동의 개인 산부인과에서 이 세상과 만났다. 산부인과(産婦人科)는 임신과 해산, 신생아와 부인병 따위를 다루는 의학 분야이다. 이중 세인들에게 가장 각인되는 분야는 단연 출산(해산=解産)일 것이다.

테디
출처=대전도시철도공사 인스타그램
대전지하철에 오르면 임산부 배려석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임산부를 볼 수 없는 게 저간의 현상이다. 그제도 콩나물시루의 지하철에 올랐는데 유독 임산부 배려석만 텅 비어 있었다. 근처에 서있던 할머니 두 분이 수군거렸다.

"다리도 시원찮은디 저기 앉지 그랴?" "저 자리는 애기 밴 색시만 앉으라는 디 아녀?" 보다 못해 내가 나섰다. "할머니가 앉으세요, 요즘 임산부가 어디 있어요?" "......!"

대전시민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에 감탄(?)하면서도 철지난 바닷가인 양 적막하고 쓸쓸하기 짝이 없는 오늘날 임산부의 부재(不在)현상이 실로 안타까웠다. '산부인과'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이길여(李吉女) 가천대학교 총장 겸 가천길재단 회장이다.

1932년에 전북 옥구군 대야면에서 태어난 그녀는 이리여고를 졸업한 후 한국 전쟁 중에 서울대 의대에 입학하여 1957년 졸업하였다. 이듬해 서울적십자병원에서 인턴과정을 수료한뒤 고향 군산에 내려가 군산도립병원에서 근무하기도 하였으며 같은 해, 인천에서 산부인과인 자성의원을 개원하였다.

1964년에 미국으로 가서 뉴욕의 Mary Immaculate Hospital에서 인턴 과정을 수료하였고 Queen's Hospital Center에서 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1968년에 귀국하여 이듬해, 다시금 인천에서 이길여 산부인과를 개원했다.

이후, 1975년 44세의 나이로 일본 유학길에 올라 2년 뒤 니혼 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거쳤다. 1978년 전 재산을 출연하여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인천 굴지의 종합병원인 의료법인 인천길병원을 설립하였다.

이어 1982년 의료 취약지인 양평군에 양평길병원을, 1987년 인천에 중앙길병원을 세웠으며 1988년에는 철원길병원을, 1993년에는 남동길병원을, 1995년에는 백령길병원을 차례로 개원시켰다.

1994년엔 경기전문대학과 신명여자고등학교의 재단 신명학원을 인수, 이사장에 취임하였으며 이듬해 법인 명칭을 바꾸고 학교법인 가천학원을 설립하였다. 1998년, 가천의과대학(지금의 가천의과학대학교)을 설립하였으며 같은 해, 경영난에 빠진 경원학원을 인수해 이사장에 취임, 2000년에는 직접 총장에 취임하였다.

2010년 경원학원과 가천학원을 가천학원으로 법인을 인수 합병하고, 2011년 경원대와 가천의과학대의 통합대학인 가천대학교의 통합승인을 받아 2012년 3월 공식출범되었다. 가천대학교는 글로벌캠퍼스(성남)와 메디컬캠퍼스(인천), 강화교육원, 미국 하와이에 가천하와이교육원이 있다.

1995년엔 가천문화재단을 설립, 산하에 가천박물관을 건축하여 국보 제276호인 초조본유가사지론을 비롯한 각종 유물 2만 여 점을 보관하고 있다. 1999년에는 경영난에 빠진 경인일보를 인수하여 회장에 취임하였으며 2002년에는 가천길재단의 회장에 취임하였다.

이길여 총장은 산부인과 의사가 된 후에는 돈 없는 환자들을 무료로 치료해줬다고 한다. 또한 그가 설립한 가천의대는 6년간 전액 장학금과 기숙사 제공으로 가난한 학생도 의사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이 총장은 병원 일이 너무 바빠서 결혼을 못 했다고 하지만 작금 젊은이들이 출산은커녕 결혼조차 않으려는 현실을 매우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이길여 총장에 관한 자료와 정보를 찾아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에 지난 시절에도 지금처럼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또한 아이를 산부인과가 아닌 집에서 출산했더라면 오늘날의 '이길여 전성시대' 역시 도래할 수 있었을까?' 결과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산부인과라는 장르가 과거에도 오늘날처럼 '사양산업'이었다면 오늘날의 가천대학교와 가천길재단 설립 역시 화중지병(畵中之餠)이었을 것임은 자명한 이치다. 이는 천문학적인 재원을 필요로 하는 것인 만큼, 과거 산부인과의 성업이 그 성공의 밀알과 담보가 되었을 것이란 예측의 펼침이다.

얼마 전 모 신문에 "귀하디 귀한 임신부들을 모셔라"라는 기사가 났다. 대전의 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올 초부터 '출산 장려 이벤트'를 시작했다고 한다. 자연분만 비용은 기존 50만 원에서 20만 원대로, 제왕절개 비용은 80만 원에서 50만 원대로 가격을 낮췄다는 것이다.

이는 병원을 찾는 임신부 수가 매년 20% 가까이 줄어들자 내린 고육책이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임신부들에게 각종의 사은품과 혜택을 제공하는 병원도 증가추세란다. 한 산부인과 병원은 지난달 말부터 모든 임신부에게 10종 선물세트를 공짜로 준다는데 기저귀와 젖병, 물티슈 등 아기에게 필요한 물품뿐 아니라 심지어 고급 레스토랑 식사권까지 포함돼 있다고 하니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끼지 않을 도리가 없다.

따지고 보면 산부인과든 다른 병(의)원 역시도 돈 벌자고 하는 사업의 영역이다. 따라서 산부인과의 분만비용 할인 등의 경쟁 역시도 탓할 건 없다고 본다. 다만 여전히 안타까운 것은 날이 갈수록 결혼과 출산인구가 감소하고 있어서다.

이런 추세라고 한다면 미구(未久)에 산부인과는 아예 찾아보기조차 힘들지 않을까도 싶어 심히 우려스럽다. 올 6월 13일에는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진다. 출마자가 누가 되었든 다음과 같은 공약을 나름 선거의 이슈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첨언한다.

"자녀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의 국책사업(國策事業)이다. 따라서 자녀를 하나 낳으면 대학까지 무상교육 실시를, 둘이면 주택마련까지 지자체가 보증한다. 세 명 이상의 출산 시는 매월 생활자금으로 500만 원을 지급하며 물가연동에 맞춰 매년 인상한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러나 얼마나 출산마저 지독한 가뭄의 갈증처럼 심했으면 심지어 이런 소리까지 나올까! 오늘도 대전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의 곰 인형 테디베어는 외롭다며 징징거리고 있다.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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