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와중에 지난주엔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에서 후원자에게 보내는 감사 안내서신이 도착했다. 약간의 성금을 매달 기탁하고 있는 데 따른 감사함의 표현이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 세상을 비추는 기부의 역사>는 예종석이 쓰고 살림에서 펴낸 책이다.
자선 사업이나 공공사업을 돕기 위하여 돈이나 물건 따위를 대가 없이 내놓는 것이 기부(寄附)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막상 이를 실천에 옮기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어쨌거나 기부만큼 아름다운 행동이 또 있을까?
마음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기부를 하려고 하면 선뜻 어디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리고 그 많고의 적음이 조금은 망설여지게도 된다. 권력자와 정치인들은 '금일봉'이라고 쾌척한다.
허나 그 모습을 보노라면 '저 봉투 안에 있는 금일봉은 그 액수가 과연 얼마인가?'라는 궁금증에 휩싸이곤 한다. 아울러 '그들은 우리네 필부들처럼 피와 땀으로 만든 정직한 부(富)로 정당하게 기부하는 것일까?'라는 물음 또한 어쩔 수 없는 한계의 정서를 구축한다.
기부는 사회의 온정을 재는 척도다. <노블레스 오블리주 - 세상을 비추는 기부의 역사>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의부터 설파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프랑스어로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뜻하는 말이다. 노블레스는 원래 '고귀한 신분(귀족)'이란 뜻이고, 오블리주는 동사로 '책임이 있다'는 의미이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및 중세의 귀족들은 신분에 따르는 여러 가지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본래 그러한 특권을 향유하는 것에 상응하는 도덕적 임무를 다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는 용어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귀족이라는 사회적 신분은 사라지거나 유명무실해졌고 오늘날에는 보다 포괄적인 의미의 사회지도층이 그 자리를 대신 메우고 있다.
따라서 지금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사회지도층의 책무' 즉, 부나 권력 또는 명예를 갖고 있는 지도층의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책임과 의무를 의미하는 용어가 된 것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에서 로마제국의 2천 년 역사를 지탱해준 힘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철학이라고 지적했다.
로마의 귀족은 전쟁이 일어나면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스스로 전장의 선봉에 서서 용감하게 적과 싸웠다고 한다. 한 예로 한니발의 카르타고와 벌인 16년간의 제2차 포에니전쟁 중 최고 지도자인 콘술(집정관)의 전사자 수만 해도 13명에 이르렀다.
로마 건국 이후 500년 동안 원로원에서 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15분의 1로 급격히 줄어든 것도 계속되는 전투 속에서 귀족들이 많이 희생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로마 귀족들은 이처럼 노예와 귀족의 차이를 사회적 책임 이행능력에서 찾았다.
로마 시대에 이어 영국과 독일, 프랑스에서 면면히 계승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전통은 신흥국가인 미국으로 건너와 새로운 모습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처음부터 봉건적 계급제도 없이 만인이 평등한 민주국가로 시작한 미국에는 유럽과 같은 귀족계급이 없었다.
고로 미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특정계급인 귀족의 책무가 아니라 모든 시민의 책무로 형성되었다. 또 미국에서 찬란한 자본주의의 역사가 꽃을 피우게 되면서 노블레스의 자리에는 자연스럽게 기업가들이 들어서게 된다.
앤드류 카네기 이후 록펠러, 포드, 그리고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미국의 부자들은 사업을 통해 쌓아온 부를 사회에 환원하는 데 경쟁적이다. 지금까지 무려 300억 달러 가까운 돈을 기부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은 "부의 사회 환원은 부자의 의무"라고 말했다.
미국 부자들의 이러한 선행은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쳐 이제 미국인들은 기부를 생활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전체 미국인들의 98%가 어떤 형태로든지 기부에 참여하고 있다.
소액기부자들의 기부가 총 기부액의 77%에 이르고 있고 그들의 연평균 기부액수가 140만 원을 상회한다는 통계가 이러한 사실을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우리에게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은 있었다.
경주 최 부자 집안은 무려 300년 동안 만석의 재산을 유지했으며 많은 선행과 독립운동의 후원자 역할을 통하여 부자로서는 드물게 존경과 칭송을 받았다. 그 외에도 유한양행의 설립자 유일한, 공무원이었다가 미래산업을 세우고 한국과학기술원에 거액을 기부한 정문술, 교육재단을 세워 인재 양성에 힘쓰고 있는 관정 이종환, 가진 것 없이 평생 모은 돈을 사회에 쾌척한 김군자 할머니 등이 한국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해당하는 인물들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의 기부문화는 어떠한가. 개인기부보다 기업의 기부가 많고 그 기업의 기부도 준조세적 성격의 비자발적 기부라는 것이 자주 지적되고 있다. 특히 연말연시나 재해가 발생할 때에는 사방에서 무언의 기부 압력을 받는 일이 비일비재한 것이 현실이다.
그러다보니 기부를 하는 기업들도 기부를 사회공헌의 일환이라기보다는 면피나 보신을 위한 방책쯤으로 여겨, 기부 자체보다는 그것의 홍보활동에 더 신경을 써왔다. 게다가 우리 경영자들의 기부는 아직도 대부분 기업의 자금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빌 게이츠나 워렌 버핏처럼 개인의 재산을 자선사업에 쾌척하는 경우는 드물다. 또한 우리 사회의 개인 기부는 여전히 일부 계층에 한정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일회성이고 충동적인 기부에 그치고 있다.
세월호 참사 때 대통령으로서 국민의 생명권을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다하지 못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시 행적이 밝혀지면서 국민들은 다시금 충격에 휩싸였다. 박근혜의 측근들이 필사적으로 은폐하려 들었던 세월호 침몰 당일의 '7시간 행적'은 그러나 손바닥으로 해를 가릴 수 없듯 얼추 전모의 베일이 벗겨진 때문이다.
필자의 경우 주간근무 때는 아침 첫차로 직장에 나가야 한다. 따라서 새벽 4시면 기상하여 출근준비에 몰입한다. 그러하거늘 일국의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당일 '의문의 7시간' 대부분을, 그것도 엄연히 '근무시간'을 침실에서 보냈다고 하니 실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뿐만 아니라 다시 드러난 '상왕' 최순실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방문을 제안하자 마지못한 듯 외출 준비를 시작했다는 부분에 이르면 박 전 대통령은 그의 '로봇'이었음이 새삼 드러났다.
이것이 '기부'와는 다소 동떨어진 뉴스 같지만 실은 필자의 의도적 삽입임을 밝힌다. 우리나라 25개 대기업은 지난해에 전년보다 14.5%나 줄어든 7420억원을 기부금으로 집행했다.
주요 대기업의 기부금 지출이 2년 연속 줄어든 것은 우선 2016년에 터진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결정적 배경이었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등에 기부금을 출연했다가 호되게 당한 이후 학습효과가 생겼기 때문이다.
기업의 기부가 범법 행위라는 인상을 주게 되면서 기업들 사이에서는 '차라리 아무것도 안 하는 게 낫다'는 트라우마가 생겼다는 건 어떤 정설이다. 설상가상 여중생을 살해한 이영학의 기부금 탕진 등으로 말미암아 기부에 대한 세인들의 불신까지 풍선처럼 커졌다.
이러한 일련의 현상에 대해 유니세프의 관계자 역시 "최근 2~3년간 흐름을 보면 기업들이 소극적으로 변한 것이 느껴진다"고 중앙일보의 3월 29일자 보도 인터뷰에서 밝혔다. 결론적으로 기부란, 주는 사람도 기분 좋고 받는 사람도 기분이 좋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기부를 많이 하는 대기업을 못 잡아 안달을 하고, 그도 모자라 기업(인)을 마치 범죄자인 양 사시(斜視)로 보는 경향까지 다분하여 큰일이다. 이런 풍조가 만연하는 이상 과거와 같은 기부의 봇물 현상은 앞으론 보기 힘든 과거지사로 치부될 가능성까지 배제할 수 없음은 물론이다.
그래서 얘긴데 기부가 없었으면 가뜩이나 험한 이 세상은 얼마나 더 험난했을까! 어쨌거나 기부는 흐뭇한 행복이자 힐링이다. 베푼 만큼 되돌아오는 게 기부의 모멘텀이자 세상의 이치다. 이 주장에 걸맞게 오늘은 아들이 결혼하는 날이다.
아들은 이제 한 여자의 남편이 되고, 사돈댁의 정식사위까지 된다. 평소의 성정이 유리처럼 곱고 예의가 깍듯하며 불의를 못 참는 아들이다. 취업 즉시부터 남다른 기부까지 실천해 오고 있는 참 착한 아들이다.
이러한 '아름다운 기부' 덕분에 선녀처럼 고운 처자를 평생의 반려자로 맞았지 싶다. 앞으로도 소외받고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향한 아들과 며느리의 기부가 계속되길 응원한다.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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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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