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쑥떡 쑥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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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난순의 식탐]쑥떡 쑥떡

  • 승인 2018-05-04 09:00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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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개떡이다. 요즘 일반 떡집에선 쑥떡을 모양을 내서 판다. 댜행히 어느 떡집에서 예전에 먹었던 투박한 쑥개떡을 팔아 반가웠다.
난 좋고 싫음이 분명한 성격이다. 싫은 것도 많지만 좋은 것 또한 많다. 난 떡을 아주 좋아한다. 냉장고 냉동실엔 늘 떡이 쌓여 있다. 팥떡, 콩떡, 영양떡 등. 때때로 전문 떡집에 한 박스 주문해 냉동실에 넣어 두고 아침 식사용으로 먹거나 산에 갈 때 몇 개씩 싸 갖고 가기도 한다. 회사에서 가끔 떡을 먹을 때가 있다. 누가 상을 타서 자축하는 떡이거나, 백일이나 결혼식 후 답례용 떡 말이다. 작년에 후배가 상을 타서 떡을 돌렸는데 배가 고프던 참이라 서너 팩을 뚝딱 먹어치웠다. 옆에 앉은 후배기자 송익준이 깜짝 놀라 가뜩이나 큰 눈이 왕방울만해서 쳐다봤다. 송익준 기자는 회사 최고의 훈남인데 과자든, 초콜릿이든 군것질하는 걸 본 적이 없다. 하여간 내가 떡 좋아하는 건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오죽하면 생일선물로 떡을 선물 받았겠는가.

정말 맛있게 먹은 떡이 생각난다. 오래 전 초여름에 휴가를 받아 강원도로 여행을 갔었다. 아침 일찍 버스를 타고 강릉에 도착했다. 점심 전이었지만 뱃속에서 화차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터미널을 나오다 입구에서 함지박에다 떡을 파는 할머니가 눈에 띄었다. 쑥 절편이었다. 참기름을 발라 윤기가 자르르 도는 절편을 보자 침이 꼴깍 넘어갔다. 2천원어치 사서 단숨에 먹었다. 시장이 반찬이라지만 그 쑥 절편은 기가 막혔다. 졸깃졸깃하고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후각을 일깨웠다. 찰진 절편이 씹을 때마다 입 천장과 혀를 감질나게 건드리며 내 입을 맘껏 갖고 놀았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만큼 행복한 건 없다.

쑥떡이 먹고 싶어 쑥을 한 바구니 뜯었지만 다 버린 적도 있다. 초등학교 때 학교에서 돌아와 큰 바구니를 들고 들에 나가 어둑해질 때까지 가득 뜯었다. 밭둑에 어찌나 쑥이 많던지 쑥 뜯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집에 가서 엄마한테 보여주며 송편을 해달라고 했다. 엄마는 안 된다며 도리질했다. "그건 물쑥이라 먹을 수 없어." 어라, 다 같은 쑥이 아닌가. 그러고 보니 좀 달랐다. 물쑥은 참쑥과 다르게 뽀얗지 않고 보송보송한 솜털도 없었다. 물쑥은 물가에서 자라고 참쑥은 햇볕이 잘 드는 산에 많다. 특히 잔디가 깔려 있는 묘지에서 잘 자란다.

어릴 적 시골에선 떡이 간식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딱히 먹을 게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가공식품이 흔치 않을 때였다. 다 자연에서 나는 걸로 먹을 걸 해결했다. 그래서 봄이 되면 쑥을 참 많이 뜯었다. 천지에 흔한 게 쑥이었다. 쑥개떡은 봄에 가장 많이 먹은 주전부리였다. 일단 쑥을 삶아 쌀가루와 버무려 절구에 찧는다. 한참을 절구질 하다보면 어느새 싱그런 초록색의 덩어리가 된다. 그걸 손바닥 만하게 납작하게 만들어 가마솥에 'Y'자로 된 나무 기둥을 걸고 채반을 얹어 베 보자기를 깔고 찌면 된다. 요즘 수제 햄버거 등 '수제'가 트렌드다. 집에서 만든 쑥개떡이야말로 진정한 수제 먹거리다. 절구에 찧어서 입자가 다소 거칠지만 얼마나 자연스러운가.



그런데 쑥떡이면 쑥떡이지 왜 쑥개떡일까. 우리말에 '개' 자가 붙은 건 좀 하찮고 막 생긴 것들이다. 개떡, 개복숭아, 개살구, 개망초, 개꿈…. 고 귀여운 '개'가 이처럼 쓸모없는 의미로 바뀌다니, 개들이 알면 서운해 할 일이다. 아마 개는 인간에게 밑도끝도 없이 충성스러워 귀하게 생각하지 않아서인 듯하다. 반면 고양이는 까칠하고 도도해서 섣불리 함부로 할 수 없는 존재로 여겨진다. 한마디로 개를 우습게 안다는 거다. 한 입 베어 먹으면 쌉싸름한 개복숭아는 생각만 해도 침샘이 터진다. 개복숭아는 요즘은 찾기 힘든 토종 과일이다.

몇 년 전 봄에 작정하고 쑥버무리를 시도했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멥쌀가루는 떡방앗간에서 샀다. 거기에다 쑥과 소금, 설탕을 넣어 버무렸다. 냄비에 찜기를 놓고 베보자기를 깐 다음 버무린 쑥을 설설 뿌려 찌기만 하면 된다. 처음 해보는 거라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 지 몰라서 뚜껑을 수시로 열어 보고 젓가락으로 찔러 보기를 여러 번. 여하튼 익긴 익었지만 쑥버무리는 말 그대로 떡이 됐다. 입체적인 모양은 간데없고 그냥 한 덩어리가 됐다. 쑥에 물기가 너무 많았던 모양이다. 생긴 건 우스웠지만 뭔가 해냈다는 뿌듯함이 컸다. 내가 한 떡이라 그런 지 맛도 별났다.

가끔 예전에 엄마가 해 준 떡이 그리워진다. 요즘은 집에서 떡을 해먹지 않는다. 시장에서 파는 떡이 많아 굳이 집에서 힘들게 해먹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연로하신 엄마보고 떡 해 달란 얘기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맛의 기억은 끈질기다. 나이를 먹으면 어릴 적 먹은 음식을 찾는다. 음식이 주는 위안이 크다. 실향민의 고향에 대한 기억도 따지고 보면 음식에서 비롯된다. 북한에 고향을 둔 사람들은 요즘 부쩍 냉면을 찾는다고 한다. 남북한 훈풍 덕분이다. 이북 사람들이 먹었던 고유의 음식은 뭐가 있을까. 언젠가 그 땅을 밟으며 평양냉면, 개성만두, 북한 쑥떡을 먹을 수 있으려나.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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