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42화. 결혼식 없었다면 며느리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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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42화. 결혼식 없었다면 며느리도 없었다

초심으로, 사랑으로

  • 승인 2018-05-04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해외로 신혼여행을 떠났던 아들 내외가 집에 왔다. 선물꾸러미를 가득 들고 들어서는 아들과 며느리가 떠오르는 햇살보다 곱고 밝았다. "고생 많았지?" 잠시의 덕담 뒤에 '본론'을 꺼냈다.

"실은 니들 결혼식 바로 이튿날에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어…." "네? 그럼 왜 알리지 않으셨어요!" "이미 신혼여행을 떠난 니들에게 그런 부음을 알려봤자 득보다는 실이 더 많을 거라고 판단한 때문이었다. 또한 그런 소식을 들으면 너희들의 즐거운 허니문 여행이 가능이나 했겠니? 하여 귀국 후에 알리는 게 낫겠다 싶어 내가 일부러 함구령을 내렸다."



"……" 아내 역시 장인 어르신을 떠올리며 다시금 통곡했다. "어쨌든 네 외할아버지께서 너의 결혼식을 비켜서 작고하셨기에 정말로 감사하였단다!" 우리 부부의 오열에 아들과 며느리도 연방 눈물을 훔쳤다.

장례식 당시 결혼식으로 말미암아 부재(不在)한 아들 내외의 공백은 딸이 채웠다. 헤어진 지 불과 하루도 안 된 딸을 급히 불러들인 건 장인 어르신의 상을 당한 때문이었다. 그 바로 하루 전날에 아들의 결혼식이 있었기에 예식장엔 딸과 사위도 당연히 참석했다.



사위는 축의금 접수를 담당했고 한복으로 곱게 차려입은 딸은 하객들께 공손히 인사를 했다. "오늘 수고 많았다! 사위도 고맙고." 혼례를 마친 뒤 그렇게 작별을 하고 돌아온 시간은 4월의 둘째 주 토요일 오후 8시 즈음.

그로부터 정확히 12시간 40분 만에 장인 어르신께서 영면하셨다. 오랜 투병기간이었지만 가족들의 슬픔은 장강보다 깊었다. 어쨌든 장례는 치러야 했으므로 딸에게 전화를 걸었다. 비보를 알리니 직장에 얘기하고 서둘러 내려오겠다고 했다.

출장을 떠났다는 사위와 함께 딸이 온 것은 당일(當日) 저녁 즈음. 조의금을 낸 사위는 출장지에서 급히 올라왔다며 다시 가야한다고 했다. "기왕지사 온 김에 저녁이라도 먹고 가게."

"오빠는요?" "외국으로 신혼여행을 떠났으니 부음을 절대로 알리지 말거라!" 딸은 사흘장을 다 치른 뒤에야 비로소 상경했다. 가족들의 칭찬이 봇물 터지듯 했다. "외손녀가 참으로 의리 있네!" 의리(義理)는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를 뜻한다.

더욱이 가족 간의 관혼상제 발생 시엔 더더욱 긴요한 약속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의리부동(義理不同)한 사람은 당연히 욕을 먹는다. 이른바 '물벼락 갑질' 논란을 불러일으킨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의 경거망동으로 말미암아 촉발된 국민적 반감이 가히 쓰나미급으로 발전했다.

그녀와는 별도로 그의 어머니 '갑질' 또한 보기 싫은 뉴스로 도배되고 있다. 설상가상 오너 가족들의 밀수와 탈세 혐의까지 추가되면서 실로 목불인견의 점입가경을 이루고 있다. 검색을 통해 살펴본 조현민은 아들과 같은 나이다.

딸처럼 서울대를 나온 여자라는 공통점도 없진 않다. 허나 그녀는 필자 딸과 같은 '흙수저'가 아니라 엄연히 재벌의 딸인 '금수저' 출신이다. 따라서 그녀가 소위 명문대를 졸업할 수 있었음의 근저는 당연하게도 엄청난 돈의 위력 때문이었을 것이란 해석이 타당하다.

조현민과 그의 어머니의 갑질에 더하여 밀수와 탈세 혐의까지 발각된다손 치면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오너리스크는 그야말로 치명상을 입을 게 틀림없다. 미국에서는 10년에 한 번만이라도 기업이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탈세가 걸리면 패가망신한다는 얘기가 정설로 통하고 있다.

다른 재벌도 마찬가지겠지만 한진그룹(대한항공) 재벌의 오늘 역시 그동안 지지하고 노력해 준 고객과 직원들 덕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원을 하인 부리듯 했는가 하면 마치 황제와 그 가족인 양 온갖 갑질까지 일삼았다니 실로 어이마저 상실될 지경이다.

이들의 그러한 어떤 양두구육 행태는 의리에도 반(反)하는 총체적 무대책의 집합이라고 보는 시각이다. 국민들은 더 이상 재벌과 그 가족들의 부정과 일탈로의 모멘텀을 바라만 보지 않는다.

의리는커녕 예의조차 상실한 대한항공에서 '대한'이란 명칭을 강제로라도 떼어내야 하는 이유다. 한 마디로 나라망신이다. 언젠가 모 개그 프로그램에서 유행했던 멘트 중 "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세상~" 이란 게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도 똑같다. 투표에서 1등을 하지 않으면 대통령도, 국회의원도, 또한 지방의회 의원도 할 수 없다. 때문에 지금 이 시간에도 특히나 학생은 1등을 하고자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돈이 얼마나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언필칭 대한민국 1등 항공사라고 한다면 그에 걸맞은 처신은 당연한 기본옵션으로 갖추어야 마땅했다. 하지만 그 딸의 국적은 미국이며, 또한 가족 대부분이 마치 '분노조절장애' 증상이라도 있는 양 안하무인에 막말 일변도의 동영상에선 소름까지 끼쳤다.

분노를 조절하지 못해 타인에게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것을 분노조절장애라고 한다. 아무튼 재벌의 가족들이 그 모양이니 해당회사 직원들까지 나서서 각종의 부끄러운 자료를 언론에 제공하는 등 그야말로 자중지란(自中之亂)의 참극까지 빚어지고 있는 중이다.

그러한 부문에서도 '1등'을 하고 있다고 강변한다면야 딱히 대꾸할 말은 없지만. 아무튼 재벌이란 이유로 갑질을 일삼고 직원들을 마치 하인 다루듯 하는 행태는 "1등이라서 더 더러운 족속들~" 이란 세인들의 비아냥까지 자초하는 촉매다.

반면 시종일관 예의가 바르고 남을 배려할 줄 알며, 가족사랑에 있어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아들과 딸은 자타공인 '1등 자녀'다. 내 비록 사는 꼬락서니가 1등은커녕 만날 꼴등이지만 아이들만 떠올리면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그 항공재벌 가족보다 더 부자라는 느낌이다.

이야기가 잠시 격분의 샛길로 빠졌다.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씻은 뒤 장모님이 혼자서 집을 지키고 계시는 처갓집으로 이동했다. 아들 내외가 큰절을 하고 나니 장모님도 고인을 추모하며 마구 우셨다.

망자(亡者)를 떠올리는 건 누구보다 부부사이에서 더욱 각별한 법이다. 장모님을 겨우 달래드린 뒤 근처의 갈빗집으로 갔다. 거기서 갈비와 술을 마시고 집으로 오니 아들이 예약했다는 열차의 발차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서 가거라. 그리고 누차 강조하지만 초심(初心)으로, 그리고 사랑(愛)으로만 잘 살길 바란다. 살아보면 잘 알겠지만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건 역시나 부부란다." 아내와 부부의 연을 맺은 지 올해로 37년이다.

그동안 살면서 파경(破鏡)의 위기에 직면한 건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그걸 극복한 건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긍정마인드의 철저 이행에서 비롯됐다. 또한 이혼은 씻을 수 없는 상처 라는 인식의 공고화 역시 큰 몫으로 작용했다.

여하간 결혼식을 잘 치렀고, 신혼여행까지 다녀왔기에 며느리는 완전한 '우리가족'이 되었다. 그래서 결혼식의 유래를 알아보았다. 결혼식은 남녀가 부부관계를 맺는 서약을 하는 의식이다.

동양에서는 혼례 내지 혼인이라고도 하는데 혼례는 일생의 의례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그래서 조상님들께선 혼례를 일컬어 대례(大禮) 혹은 대사(大事)라고 하였던 것이다. 서양에서의 결혼의 유래는 탈환(奪還)에 의한 것이었다고 한다.

예를 들자면 신랑이 신부를 납치해서 신부의 종족으로부터 멀리 달아난다. 이때 신랑의 친구들이 신랑을 도와 신부를 원하는 다른 남자들을 물리쳐 주고 신부의 가족들이 찾지 못하도록 방해도 놓곤 했다는 것이다.

그리곤 신랑은 신부와 함께 숨어 지냈다는데 따라서 이게 소위 '허니문'이라고 하는 설도 있다. 신부의 가족들에게 들킬 때쯤엔 이미 신부가 임신 중인 까닭에 어쩔 수 없다며 포기했다는 말도 떠돈다.

또한 신랑이 자신의 신부를 원하는 다른 전사들과 싸울 때 오른손엔 칼을 쥐고 왼손으로 신부를 잡고 있었던 것이 전파되어 오늘날 신랑은 오른쪽에 서고 신부는 왼쪽에 서게 된 것이라고 하는 이도 있다.

필자는 아들을 결혼시키면서 나름 세 가지를 실천하여 더욱 뿌듯했다. 그건 '다이어트 결혼식'의 일환으로 예단과 폐백, 그리고 주례사를 없앤 것이었다. 덕분에 결혼식이 빨리 끝난 건 물론이며 신랑신부와 가족들의 피로감도 한층 덜 수(減少) 있었다.

아들 내외가 집에 오기 전엔 사돈어르신의 전화를 받았다. "오늘 00(며느리 이름)가 사돈댁에 간다더군요.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 부디 예쁘게 잘 봐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믄요! 이제부터 명실상부 제 며느리인데 여부가 있겠습니까."

예나 지금이나 아내는 심성이 비단처럼 곱다. 그처럼 고운 마음씨를 지녔기에 아이들도 본받아 성정이 거울처럼 맑다는 생각이다. 가정이라는 둥지를 꾸린 아들내외가 늘 그렇게 초심으로, 사랑으로만 행복하길 응원한다. 5월은 마침맞게 '가정의 달'이다.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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