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도 사실은 주간근무라서 모임을 가질 수 없었다. 하지만 그걸 핑계로 앞세웠다간 다시금 한 달이 '연체'될 듯 싶어 꾀를 냈다. 직장동료에게 부탁을 하여 대근(代勤)을 시킨 것이다. 천안의 초입은 모내기가 끝나 푸른 논이 더 고왔다.
이윽고 도착한 천안시 서북구 성정동 주공6단지 상가 앞. 기다리고 있던 친구들과 악수를 나누며 고마움을 피력했다. "지난달에 바쁜 데도 불구하고 수원(아들이 예식을 치른)까지 와 줘서 정말 고마웠다! 우리 맛난 거 먹으러 가자. 오늘은 내가 쏜다!"
"일요일이라서 문을 열었나 모르겠네……" 어디론가 전화를 건 친구가 "마침맞게 오늘도 영업을 한다"며 차에 타라고 했다. 이어 도착한 곳은 천안시가 인증한 맛집 천안삼거리 앞의 충남 천안시 동남구 충절로 '금** 장어구이'집.
장어구이 두 판을 시켰더니 밑반찬(소위 '스키다시')이 먼저 나왔는데 그 구성이 자못 휘황찬란했다. 장어뼈에 단호박, 마늘과 썬 고추, 더덕무침과 생각, 부추와 번데기, 물김치에 상추와 깻잎도 모자라 삶은 메추리알까지…….
"와! 오늘 배 터지겠네~" 친구들의 환호성에 답했다. "아무 걱정 말고 실컷 먹어. 모자라면 또 시킬 테니까. 그리고 우선 거국적으로 건배 한 번 하자꾸나." 나의 제안에 친구들이 모두 술잔에 술을 채웠다.
"진작 이런 자리를 가져야 했으나 아다시피 아들의 결혼식 바로 이튿날에 장인어르신께서 영면하셨습니다. 그래서 늦어진 것이니 우리 친구들의 너른 양해 부탁드립니다. 자, 건배합시다. 위하여~" "위하여~"
화기애애한 분위기와 으뜸의 맛 덕분에 장어구이와 술을 추가로 주문해야 했다. 그럼에도 하나도 아깝지 않았던 건 당연론이겠지만 '친구에겐 인색하지 말라'는 나름의 가치관과 우정의 발로 때문이었다.
'가난이 친구를 갈라 놓는다'는 속담도 없지 않지만 '옛 친구 하나가 새 친구 둘보다 낫다'는 게 정석이고 진리다. 남북정상이 만나면서 새삼 회자된 속담에 '길동무가 좋으면 먼 길도 가깝다'는 말이 화제가 되었다.
'좋은 친구가 없는 사람은 뿌리 깊지 못한 나무와 같다'는 속담 또한 돋보인다. 2주 전 일요일에도 천안에 다녀왔다. 사돈어르신과의 만남이 있어서였다.
사돈께서 사시는 수원과 내가 살고 있는 대전의 가운데인 천안역이 적지(適地)라서 천안역에서 만나 맛난 집을 찾곤 한다. 사돈어르신을 다음에 또 뵈면 지난 일요일에 갔던 '금** 장어구이'로 가고 볼 일이다.
천안시에서도 인정해준 '천안맛집'의 명성에 걸맞음에 사돈께서도 크게 만족하시리라 믿는다.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한 충남 천안은 이밖에도 '천안 12경(天安 12景)'을 자랑한다.
천안시는 지난2009년 1월 22일 지역의 대표성과 자연 경관, 문화적·역사적 가치, 발전 가능성, 접근성, 인지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고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였다. 그리곤 천안시의 대표적 관광 자원이자 명소인 12개소를 '천안 12경'으로 선정하였다.
제1경인 '천안 삼거리'를 시작으로 제2경 '독립 기념관', 제3경 '유관순 열사 사적지'가 그 뒤를 잇는다. 제4경은 '아라리오 광장'이며 제5경은 '병천 순대 거리'다.
제6경은 '태조산 각원사'이며 제7경은 '광덕산 설경', 제8경으론 '천안 종합 휴양 관광지'가 당당하다. 제9경은 '왕지봉 배꽃'이고 제10경은 '입장 거봉 포도 마을'이 꼽혔다. 제11경은 매년 가을 명불허전의 전국축제로 자리매김한 '흥타령 춤 축제'이며 마지막으론 제12경 '천호지 야경' 또한 압권의 절경을 자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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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관순 영정. 출처: 2007년도 중학교 <국사> 교과서. |
독립투사로 쉬 거론되는 인물로는 김구와 안중근, 유관순 등이 거명된다. 이중 유관순은 단연 천안이 자랑하는 독립운동가이다. 유관순(柳寬順)은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로 아우내 장터에서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눠주는 등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
천안에서 태어난 그녀는 1914년 공주영명여학교에 입학하였으며 1916년 선교사의 소개로 서울 이화학당 보통과 3학년에 교비생으로 편입하였다. 1919년에 3·1운동이 일어나자 학생들과 함께 가두시위에 참가하였고 일본총독부의 학교휴교령으로 휴교에 들어가자 고향인 천안으로 내려가 만세시위에 다시 참가했다.
천안·연기(燕岐)·청주(淸州)·진천(鎭川) 등지의 학교와 교회 등을 방문하여 만세운동을 협의하고 음력 3월 1일 아우내(竝川) 장터에서는 3,000여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시위를 주도하다가 출동한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이때 아버지 유중권(柳重權)과 어머니 이씨(李氏)는 일본 헌병들이 쏜 총에 맞아 피살되었다. 집마저 불탔으며 자신은 공주 검사국으로 이송되었다. 그곳에서 영명학교(永明學校)의 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끌려온 오빠 유관옥(柳寬玉)을 만났다.
그 후 경성복심법원에서 3년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중 고문에 의하여 순국하였다. 그야말로 꽃다운 나이에 운명을 달리 한 것이었다. 유관순에 대한 서훈(敍勳)은 너무나 늦게 이뤄져 1962년이 되어서야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충청남도는 그녀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2년에 '유관순상'을 제정했다. 최근 들어 3·1운동의 상징이랄 수 있는 유관순 열사에 대한 서훈이 하지만 고작 '3등급 훈장'이라는 부분에 많은 국민들이 이의 부당함을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 높아지고 있다.
충청남도와 천안시가 유관순 열사에 대한 서훈 등급 격상 운동에 돌입했다는 게 이런 주장의 방증이다. 위에서 열거하였듯 유관순 열사의 집안은 3·1운동에 참가했다는 이유만으로 일제로부터 그야말로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하였다.
만약에 그녀가 선각자다운 애국 활동을 안 했더라면 그러한 비극은 없었을 것이었다. 그러했거늘 유관순 열사에 대한 정부의 평가는 천안 12경의 제3경에 위치한 '유관순 열사 사적지'처럼 그 순서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지우기 어렵다.
독립기념관이 천안에 위치한 까닭은 논외로 치더라도 천안은 능수버들과 호두과자 외에도 유관순 열사를 모티브와 마스코트화(化)한 '횃불낭자'가 돋보인다. 1963년에 제정된 상훈법에서는 서훈의 기준을 '공적이 국가와 사회에 미친 효과의 정도와 지위, 그 밖의 사항을 고려해 결정한다'고 돼 있다고 한다.
따라서 55년 전에 정해진 유관순 열사의 등급을 현대적 시각에서 다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건 타당한 주장이라고 보는 시각이다. 유관순 열사는 좌와 우의 이데올로기와 정치적 이분법, 그리고 편견의 프레임에서도 자유로워야 마땅한 우리 모두의 영원한 '독립투사 누나'와 '언니'인 때문이다.
국가보훈처와 행정안전부는 '동일한 공적에 대하여는 훈장 또는 포장을 거듭 수여하지 아니한다'며 유관순 열사의 서훈을 격상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서훈이 현저히 낮게 매겨진 인물들을 재평가하여 훈격을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건 이제 국민적 공감대이자 상식이 되어야 마땅하다.
유관순 열사가 '고작' 독립운동가 서훈 3등급이 된 데에는 천안에서만 활동한 지역 운동가로 여겨진 탓이 크다는 분석 역시 지나친 편견임은 물론이다. 내년이면 3·1운동이 100주년을 맞는다고 한다.
따라서 유관순 열사의 서훈 등급을 올려달라는 범국민 운동은 타당성이 농후하다. 유관순 열사는 1962년 심사 당시 건국훈장 중 가장 낮은 등급인 3등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3·1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에 대한 평가가 지나치게 야박하다는 세간의 지적에 귀를 크게 열어야 할 때다.
또한 '한국의 잔 다르크'랄 수 있는 유관순 열사에 대한 소위 좌우의 이념적 편향은 이제 그만 접어도 되지 않을까. 속 깊은 사람은 지엽적 편견 역시 버리고 볼 일이니까. 이런 관점에서 최근 일독한 <사랑밭 새벽편지>에서 배달된 '속이 깊은 사람'이란 좋은 글을 첨부한다.
- "마음이 깊은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까지도 사랑할 줄 안다. 그 이유는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의 잘못까지 담을 수 있을 만큼 마음의 그릇이 깊기 때문이다. 마음이 얕은 사람 곁에 있어 본 적 있는가?
마음이 얕은 사람은 양재기나 냄비가 요란하듯 무얼 하면 소리가 많이 난다. 마음이 깊지 못하면 어디서나 시끄럽다.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사소한 일도 꼭 한소리 하고 넘어가기 때문에 그렇다.
안 나도 될 소리까지 말이다. 하지만 마음이 깊은 사람과는 말을 한 마디 안 하는 데도 왠지 상대가 묵직하고 믿음이 가서 그냥 믿어진다. 믿지 못하는 세상에 이렇게 심지가 깊고 생각이 깊은 사람 어디에 숨어 있나?
길 가다가도 치듯이 마음이 깊을 것 같은 사람 이런 사람을 한 번만 만나도 천금을 얻은 듯 심장이 잠시 멎고 기쁨이 쑤욱~ 솟아난다. 그냥 고개가 저절로 휘익 돌아가는 것도 참 어쩔 수 없다." -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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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