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51. 딸 없었으면 얼마나 적막강산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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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51. 딸 없었으면 얼마나 적막강산이었을까

딸바보 아닌 아빠는 없다

  • 승인 2018-06-14 15:4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 "딸이 친정 오는 것을 기다리며(待女兒歸覲)"

흰옷 아른아른 눈앞에 있어(素服依依在眼前)



문을 나서 자주 바라보니 해는 서산에 걸리네(出門頻望日西縣)

친정 돌아오면 슬픈 말 많이 하지 말아라(歸來愼莫多悲語)



늙은 내 마음 너무 캄캄해지니(老我心神已暗然) -

조선 중기의 유학자였던 김우급(金友伋 :1574~1643)이 지은 한시(漢詩)다. 광해군 때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나 폐모론에 반대하는 벽서를 붙여 유적(儒籍)에서 삭제되었다. 그 후 낙향하여 후학을 양성하였다.

호는 추담(秋潭)이며 임진왜란 때 명나라 병사들의 행패를 보고 명나라 장수에게 항의하여 사과를 받아낸 일화가 있다. 사후 병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모암서원(慕岩書院)에 배향되었다. 문집으로 추담집(秋潭集)이 있다.

김우급의 '딸이 친정 오는 것을 기다리며'를 암송하자면 필자 역시 시집간 딸이 떠올라 마음이 심란해진다. 세상에 딸바보 아닌 아빠는 없기 때문이다.

1961년도에 개봉한 방화 <마부>는 딸에 대한 친정아버지의 아픔까지를 그리고 있다.

시집을 가긴 했으나 벙어리라는 이유로 남편에게서 학대를 받는 큰딸은 툭하면 구타를 당한다. 그걸 못 견뎌 매번 친정으로 도망을 오지만 마부 아버지는 달래서 돌려보낸다. 하지만 결국엔 그 딸이 한강에 투신해 죽음으로서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을 수 없게 만들었다.

지금으로선 어림도 없었겠지만 과거엔 딸이 소박을 맞는 걸 아버지로선 참을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렇긴 하더라도 마부 아버지의 바람과 달리 그 딸은 결국 아버지보다 먼저 이승을 떠나는 불효 외에도 평생 씻어낼 수 없는 내상(內傷)까지를 상처로 남겼다.

현세는 결혼한 딸일지라도 마음만 먹으면 친정에 온다. 그러나 과거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때문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예뻐하던 딸이 시집을 간 뒤 근친(覲親·어버이를 뵙는 일)하러 친정에 오는 날이면 그 아버지는 며칠 전부터 몸이 달았다.

인조 때 공조참판을 지낸 조위한(趙緯韓·1567∼1649) 역시 까마귀만 봐도 딸이 떠올랐다고 한다. 그는 이 같은 심정을 한시 <딸자식을 생각하며>에 담았는데 구구절절 사랑과 눈물이 고랑을 이룬다.

- "딸아이 태어난 지 일곱 해 지났으니, 문 밖에 나다니면 이제는 아니 되리. 까마귀 보면 창에다 먹칠하던 일 생각나고, 고사리 보면 밤을 줍던 작은 손 떠오르네. 엄마 따라 밤에 운들 살펴줄 이 뉘 있으랴. 기다리렴. 늙은 아빠 집에 가는 날이 되면, 옷을 다 벗기 전에 널 먼저 안아 주리." -

지금이야 일곱 살이면 여전히 어린이이자 꼬마 축에 든다. 그래서 때론 남자아이가 엄마를 따라 대중목욕탕의 여탕에 가는 경우도 있었다. 실제 예전엔 딸도 그 나이쯤 되었을 때 나와 함께 남탕에도 갔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과거엔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이라 하여 일곱 살만 되면 남녀가 한자리에 같이 앉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남녀를 엄격하게 구별하였다고 한다. 유교사상의 고루함을 새삼 발견하게 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건 이 세상 모든 아버지에게 있어 딸은 언제나 꽃이라는 사실일 게다. 제아무리 꽃이 곱다한들 그래봤자 화무십일홍이다. 반면 딸은 언제나 싱싱한 꽃이 아니던가!

그러하기에 이 세상의 모든 아빠들은 영락없이 '딸바보'라는 전염병 환자인 것이다. 그래서 첨언하는데 만약에 딸이 없었으면 이 세상은 과연 얼마나 적막강산이었을까!

지난 달 '유성온천축제'를 취재하러 갔다가 과거엔 친했던 지인을 만났다.

그러나 10년 이상 공백기 이후의 조우였기에 마치 기름에 뜬 물처럼 동화(同化) 불가의 데면데면함을 숨길 수 없었다. 그러한 불편함의 희석 차원에서 술이라도 나눴음 했으나 약속이 있대서 불발에 그쳤다.

한데 그 짧은 와중에도 지인은 금세 딸바보가 되었다. 그리곤 어느새 자신의 딸이 시집을 갔고 손자도 봤다며 자랑했다.

"00(딸 이름)이는?" "내 딸도 재작년에 결혼했지, 근데 아기는 아직……."

지인은 명함을 주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S시(市)로 오면 꼭 연락하라고 했다. 그 와중에도 S시는 부동산 가격이 계속하여 오르고 있으니 이사를 오라는 회유(?) 역시 빠뜨리지 않았다.

빌어먹을~ 모처럼 만났음에도 다음으로 미루는 사람을 언제 또 구태여 S시까지 가서 만날 수 있단 말인가……. 또한 '나는 당신처럼 부동산 투자, 아니 따지고 보면 '부동산 투기'를 목적으로 흡사 메뚜기처럼 그동안 정이 든 대전을 버리고 S시로 훌쩍 이사할 맘은 추호도 없소이다!'

괜한 만남이었다 싶게 그날의 궂은 날씨(축제 첫날엔 종일 비가 왔다)처럼 마음에도 울적함의 빗물이 철철 넘쳐흘렀다. 아울러 사람관계라는 것은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덩달아 멀어진다는 평범한 진리 역시 새삼 발견할 수 있었다.

대전시
보문산서 바라본 대전시내 전경=연합DB
아무튼 그래서 말인데 필자는 작년부터 대전광역시 홍보블로그 기자로도 활동하고 있다. 때문에 쉬는 날이면 동분서주하기 일쑤다. 대전의 소문난 관광지에서부터 필자만 아는 은밀한(?) 곳까지를 발굴하여 널리 홍보하고 있다.

그렇게 취재하고 공들여 쓴 글과 사진이 근자 [대전 관광 공식블로그 '먼저 보슈']에 올라온 것만 해도 적지 않다. '테미공원 벛꽃축제'를 필두로 '동춘당문화제'와 '서대전시민공원 어린이날 한마당잔치'가 뒤를 잇는다.

'유성온천축제'와 '보문산 사찰 순례' 역시 호평을 받았다. 지인 중 여러 명이 이미 S시로 이사를 갔다. 필자에게도 그곳으로 이사를 오라는 꼬드김이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그럴 생각이 없기에 앞으로도 쭈욱~ 대전시민으로 살다 여기서 '죽을' 생각이다.

고향인 천안을 떠나 대전으로 이사를 온 건 36년 전이다. 생후 갓 백 일을 지난 아들을 아내가 등에 업고 왔다. 그리곤 이듬해엔 당시의 직장에서 전국 최연소 소장으로 승진했다. 이어선 딸을 보았는데 공부를 썩 잘했다.

딸의 학교에선 딸이 항상 전교 1등이라며 물심양면의 도움까지 아끼지 않았다. 여세를 몰아 딸은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대를 갔다. 아들은 대학을 졸업하기도 전에 마치 입도선매인 양 글로벌기업의 취업에 성공했다.

이러한 모든 결실은 바로 대전이 준 '선물'이었다. 그러니 어찌 배신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평소 예의와 의리를 중시한다. 따라서 감탄고토(甘呑苦吐)의 세속적 이기심을 몹시 싫어한다. S시의 인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반면 대전시는 줄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대전을 사랑하는 시민기자로서 여간 속상한 게 아니다. 이제 6.13 지방선거가 끝나면 대전시장님도 새로이 취임하실 것이다. 대전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트램의 조기착공과 같은 교통난의 해소와 아울러 보다 원활한 환승체계의 확립이라고 보는 시각이다.

슬럼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는 은행동 지역의 재개발도 현안으로 재검토했으면 좋겠다. 대전시민들이 많이 찾는 충남 공주의 갑사와 마곡사, 전북 완주군의 대둔산까지 운행할 수 있는 시내버스의 운행 내지 해당 지자체와의 대중교통 업무협조 타결 또한 대전시민 증가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대중예술과 문화생활 만끽을 위한 관련요금의 인하와 더불어 대청호에서 대통령별장 청남대까지 훌쩍 접근할 수 있는 선박의 운행도 검토해볼 만 하다. 전국 유일의 '칼국수 축제'와 같은 특화된 이벤트와 페스티벌의 아이디어 도출과 확장도 대전시민들을 즐겁게 하는 메리트 (merit)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자랑은 딸바보스럽게 사랑과 동격(同格)의 수순을 이룬다. 필자의 '대전사랑'이 앞으로도 불변하게 딸을 대상으로 하는 것처럼 '대전자랑'으로까지 이어지길 기대한다. 그나저나 오늘도 보고픈 딸은 언제가 되어야 또 집에 올까? 취재를 하면서 눈여겨둔 맛집도 수두룩하거늘.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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