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에] 55. 아내 없었다면 화기애애 가정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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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55. 아내 없었다면 화기애애 가정도 없었다

사랑은 세계를 얻는 보석이다

  • 승인 2018-07-06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아내
2016년 10월 프로 100경기 기념행사 때 조현우와 아내 이희영씨/대구FC제공=연합
2018 러시아 월드컵은 숱한 화제를 양산했다. 우리 국가대표 축구팀이 '전차군단' 독일을 격파한 건 더욱 세계적인 화제를 몰고 왔다. 여기에 '거미손 수문장' 조현우 선수 또한 일약 화제의 인물로 부상했다.

조 선수의 철벽방어 덕분에 독일은 더욱 기진맥진했으며 결국엔 0-2로 패배하는 최악의 상황까지 맞았음은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조현우 선수의 선방과 더불어 그가 돋보이는 건 유별난 아내사랑이었지 싶다.

그가 경기를 마친 뒤 그라운드에서 무릎 꿇고 아내에게 프러포즈한 동영상이 새삼스레 세인들 인구에 회자되었다. 아내를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팔뚝에 아내 얼굴까지 문신했다는 조현우 선수에게서 다시금 아내사랑의 실체를 발견할 수 있어 흐뭇했다.

자신 몸의 아내를 사귀고 싶었다며 팔뚝에 진짜로 아내 이희영 씨 모습을 그렸다는 그를 보면서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생각에 웃음까지 일렁였다.

우리네 베이비부머들의 '은퇴열차'가 저벅저벅 다가오고 있다. 주변에서 지인들의 정년퇴직 내지 명예퇴직이 봇물을 이루고 있음은 이의 뚜렷한 방증이다. 나 또한 이 범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내년이면 맞닥뜨리는 게 바로 '정년'인 때문이다.

특히나 지인 중에서도 동창이나 친구인 경우, 이 정년퇴직이라는 화두는 그야말로 이상견빙지(履霜堅氷至)의 무게로 다가옴을 제어하기 어렵다. '이상견빙지'는 서리를 밟을 때가 되면 얼음이 얼 때도 곧 닥친다는 뜻으로, 어떤 일의 징후가 보이면 머지않아 큰일이 일어날 것임을 이르는 말이다.

일종의 예고편이자 경고장인 셈이다. 어제는 퇴근길에 동창과 술을 나눴다. 지난달에 명예퇴직을 하고 부부와 유럽여행까지 다녀온 친구다. 내일부터 새로운 직장에 출근한다고 했다. 그래서 공직생활에서 수고한 그간의 공적을 위로하고, 앞으로의 직장생활도 순탄하게 이어가길 바라는 마음에 내가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다.

"고마워! 친구의 의리는 역시 달라." "고맙긴, 그나저나 두둑한 퇴직금에 연금, 그리고 새 직장엔 고위직 임원으로 입사하는 것이니 아주머니가 더 좋아하시겠다!" "응, 요즘엔 입이 아예 귀에 가서 걸려있어."

순간 아내가 떠올라 미안함과 죄스러움이 동시에 교차했다. 30년 이상 공직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친구와 달리 나는 고작 박봉의 경비원이다. 따라서 조족지혈의 퇴직금을 받아봤자 별무효과(別無效果)에 불과할 따름이다.

따라서 퇴직과 동시에 새로운 직장을 잡아야 한다는 건 '기본옵션'이다. 유럽여행은커녕 코 앞의 계족산조차 함께 오르기 어렵다. 오래 전 실직을 하고 몇 달간 논 적이 있었다. 두문불출하면서 그야말로 '삼식이'로 밥만 축내자 일주일 뒤부터는 아내의 노골적 괄시(?)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그 때 알았다! 남자는 놀아도 밖에 나가서 놀아야 한다는 것을. 아무튼 그 바람에 애먼 산만 자주 탔다. 덕분에 느낀 건데 내가 사는 대전에 산이 그토록 많다는 걸 그때 비로소 느꼈다. 하루는 보문산, 이튿날엔 식장산, 다음날엔 계족산을 오르면서 이를 악물었다.

내 반드시 직장을 잡아 과거와 같은 화양연화의 좋은 날로 만들리라고. 하지만 그러한 바람은 차디찬 현실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최저생활비도 안 되는 급여만으론 고삭부리 아내와 먹고살기에도 급급했다.

그런 와중에도 그나마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건, 경비원으로 일하면서 딸에 이어 아들까지 결혼시켰다는 것이다. 어쨌든 내년엔 나에게도 들이닥칠 은퇴열차에 오르느냐, 아님 몇 년 더 촉탁사원으로 일하느냐의 여부는 현 직장의 최고위직 심중에 달려 있다.

그가 나를 긍정적으로 봤다면 후자에 무게가 실릴 것이고 아니라면 전자에 속할 것이다. 만의 하나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이젠 더 이상 나오지 마십시오"라고 한다면 나 또한 어제 만난 친구처럼 새로운 직장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아내로부터도 따가운 시선을 받지 않을 것임에. 이렇게 '공처가' 신세를 면치 못하곤 있지만 불변한 건 아내를 여전히 사랑한다는 사실이다. 최근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과 장천용(張天?)이라는 사람에 관한 글을 봤다.

'목민심서' 등 무려 500권이 넘는 책을 저술한 다산은 황해도 곡산부사(谷山府使)로 부임하여 있었던 때 어느 날 마음이 헛헛하였다. 그래서 아전을 시켜 통소를 잘 부는 인물로 알려진 장천용을 부른다.

다산의 앞에 온 그는 술이 심하게 취해서 눈빛은 희미하고 초점도 맞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망건은 벗어버린 채 버선도 신지 않은 맨발에다 옷에는 띠도 두르지 않았다. 심지어 다산에게 절도 하지 않고 되레 다짜고짜 술을 요구하니 기가 막혔다.

그럼에도 대인배였던 다산은 그에게 술을 주었다. 그는 더욱 취해 결국 인사불성이 되어 그만 잠이 들어버렸다. 이후 자신의 경거망동을 자책한 그는 다산에게 자신의 장기는 퉁소가 아니고 그림이라면서 비단 위에 산수(山水)와 신선(神仙), 호승(胡僧)과 괴조(怪鳥), 고목(古木) 등의 그림을 그려서 주었다고 한다.

다산이 보기에도 그 실력이 심상치 않았다고 하는 걸로 보아 장천용은 퉁소보다는 화가가 적격이었지 싶다. 장천용에게도 아내가 있었는데 얼굴이 지극히 못생기고 오래 전부터 중풍으로 인한 마비증세가 있었다. 길쌈을 못하고 바느질도 못하며 밥까지 짓지 못하고 애도 낳지 못하면서도 성질까지 어질지 못하였다.

항상 누워 있으며 욕설만 퍼부었지만 장천용은 항상 그를 보살피는 일에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하니 그의 아내사랑은 대단한 지극정성이었음을 알 수 있다. 대저 궁핍한 것만으로도 사람은 쉬 짜증이 나고 매사 불만까지 고조된다.

여기에 아내마저 언제나 누워 있으며 설상가상 남편을 욕이나 하면서 깔본다고 한다면 세상에 어떤 남자라서 이를 간과할까! 그러나 장천용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예능에도 뛰어났지만 마음씨까지 비단결처럼 어질었기에 다산은 그를 위해 지었다는 <장천용전(張天?傳)>까지를 남긴 것이리라.

조현우 선수의 아내사랑과 장천용의 마찬가지 아내를 향한 극진한 애정에서 '아내는 안해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 말은 '아내는 집안에 있는 해라서 안해라고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전해진다. 단언컨대 만약에 아내가 없었다면 화기애애의 가정도 없었다,

아내가 오는 6일부터 열리는 '부여 서동연꽃축제'를 구경하고 싶다고 했다. 15일까지 열린다고 하니 그 안에 쉬는 날을 골라 같이 가고 싶다. 장천용에는 훨씬 못 미치겠지만 어쨌든 나 또한 아내를 사랑함에는 변함이 없기에 품는 바람이다. '청춘은 한 순간이며 아름다움은 꽃이다. 그러나 사랑은 세계를 얻는 보석이다'라는 명언이 가슴에 메아리를 만든다.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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