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필톡]집, 사는 곳과 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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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난순의 필톡]집, 사는 곳과 사는 것

  • 승인 2018-10-31 11:26
  • 신문게재 2018-11-01 22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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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을 안고 아파트에 입주한 날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쓸고 닦고 이삿짐을 들여오고, 온 가족이 출동해 막내 동생의 내집 마련을 축하해줬다. 짐들을 정리하고 거실에서 짜장면과 탕수육을 시켜 먹으며 '이제 나도 아파트 주민이 되는구나' 실감했다. 그런데 복병이 나타났다. 위층의 발소리가 너무 커 골머리를 앓았다. '쿵쿵쿵쿵.' 신경을 곤두세우니까 미쳐버릴 것 같았다. "선배, 그거 일일이 신경쓰면 못 살아. 그러려니 해야돼." 고충을 토로한 내게 후배가 해준 조언이었다. 여기서 계속 살려면 내가 생각을 바꾸는 수밖에 없었다. '아, 내 이웃에 사람이 사는구나.' 발상의 전환이랄까. 지금은 발소리,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정겹게 느껴질 정도다.

아파트에 산 지 햇수로 14년째다. 아파트는 참 편리하다. 대단위 공동주택이다보니 관리사무소에서 모든 걸 관리해줘 신경 쓸 일이 없다. 물론 관리비를 지불하고 받는 대가다. 무엇보다 연료비가 적게 들어 감격했다. 거기다 주택은 가스레인지는 LPG, 난방은 기름보일러여서 때맞춰 배달시켜야 하는 일이 여간 성가신 게 아니었다. 아파트는 혼자 사는 여자가 살기에도 안전하다. 주택은 방범에 취약해 늘 불안감을 안고 살았다. 그렇다고 아파트가 좋기만 한 건 아니다. 같이 살지만 따로 살기 때문에 삭막하다. 옆집에 사람이 사는 건 알지만 인사만 할 뿐이다. 다 그렇진 않은데 대개 이웃과 굳이 정을 나누며 살고 싶어 하지 않는 구조다. 화초도 잘 자라지 않는다. 꽃피는 계절이 오면 화분을 사오지만 번번이 죽고 만다. 처음엔 내 무심함을 탓했다. 알고보니 고층이라 땅의 기운을 못 받아서 화초들이 맥없이 죽어나가는 거였다.

아파트가 살기 편해서 그런대로 만족한다. 하지만 때때로 예전에 시골에서 살던 집이 그리워진다. 사방이 열려 있고 마루가 있는 그런 집 말이다. 몇 년 전 이맘때 속리산에 갔었다. 문장대에서 능선을 타다 경업대 쪽으로 내려왔다. 그쪽으로 내려오면 단풍이 아주 멋지기 때문이다. 꼭대기 바로 아래 조그만 암자가 있어 들렀다. 마당에 올라서 산 아래를 내려다보니 탄성이 절로 나왔다. 대자연의 품속에 안긴 내가 거기 있었다. 혼자 사는 노스님은 이런 집에서 살라고 말했다. 자그마한 집과 마당이 있는 집. 흙을 만질 수 있고 나무로 둘러싸인 집이 사람이 살 수 있는 집이라고 했다. "사계절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지요. 이렇게 훌륭한 정원이 어딨겠소?"

시간 날 때마다 보문산에 오른다. 정상 시루봉에서 꿀맛같은 바람을 맞으며 대전 시내를 바라보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다. 대전의 역사와 더불어 내 인생도 이 도시와 함께 했구나싶어 감개무량해진다. 대학에 들어가면서 처음 대전에 왔을 때와 비교하면 상전벽해다. 거대한 아파트촌이 된 것이다. 직사각형의 콘크리트 상자들이 빽빽히 줄지어 서 있는 모습을 보노라면 숨이 막힌다. 개성이 없는 도시다. 저 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니.

한국의 도시는 천편일률적으로 아파트로 뒤덮인 모양새다. 신행정수도의 요람 세종시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실패한 도시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색다른 도시로 탄생할 줄 알았는데 다를 바 없다. 박정희부터 문재인 정부까지 변하지 않는 건 아파트가 대세라는 것이다. 사실 재테크 수단으로 이만한 게 없기 때문이다. 지난 7월 유성 도안 호수공원 3블록 트리풀시티는 '청약 로또'로 불리며 광풍을 일으켰다. 대전 시민들은 모이기만 하면 이 얘기뿐이었으니까 말이다. 과연 한국의 아파트 투기 열풍은 언제까지일까. 집을 사는(living) 곳이 아니라 사는(buying) 것이 돼버린 현실. 아파트 평수로 계층을 구분짓는 세태. 마당이 있고 마루가 있는 집은 어디 있나. 아랫목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미디어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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