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필톡]여하튼 책

  • 오피니언
  • 우난순의 필톡

[우난순의 필톡]여하튼 책

  • 승인 2018-12-26 14:10
  • 신문게재 2018-12-27 22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책
저는 여행갈 때는 으레 배낭에 책을 넣어 갑니다. 여행 전날 짐을 꾸릴 때의 설렘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양말, 티셔츠, 속옷, 치약, 칫솔, 스킨로션, 수첩… 그리고 책 한 권. 거실과 방을 왔다갔다 하며 분주히 이것저것 배낭에 넣을 땐 마치 어릴 적 소풍가는 것처럼 마음이 들뜨게 됩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일상을 떠나 낯선 곳과 마주한다는 건 꽤 매력적인 행위지요. 생경한 풍경과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의 짧은 인연 속에서 나를 발견하는 거니까요. 기차역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차를 기다리며 느긋하게 의자에 기대 앉아 몇 줄의 책을 읽는 맛은 또 어떻고요. 특히 찜질방에서의 독서는 제 취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뜨거운 물에 여독을 풀고 TV 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는 동안은 아무런 고민도, 삶의 고단함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마냥 행복할 따름이죠. 그날 밤 한 공간에서 저와 잠자리를 함께 하는 이방인들도 가족처럼 느껴질 정도니까요.

가치가 있다는 건 뭘까요. 무엇이 가치 있는 걸까요.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요. 돈, 사회적 지위, 권력이 행복의 조건일까요. 인간은 삶의 대해 재단하는 몹쓸 버릇이 있습니다. 우리의 선택과 결과는 수지타산에 맞춰 쓸모있는 사람이기를 바랍니다. 가치있는 인간이냐는 거지요. 우리는 어느새 노동의 피로에 젖어드는 거에 익숙합니다. 그나마 일할 곳이 있는 것을 다행이라고 여기는 현실입니다. 슬픈 일입니다. 삶에 대한 공포는 글 한 줄 읽는 마음의 여유도 빼앗아 갑니다. 일년에 책 한 권 안 읽는다고 탓할 이유가 못 됩니다.

그래도, 책은 읽어야 합니다. 책을 통해 알게 되는 것들이 내뿜는 에너지는 읽는 자만이 느낄 수 있습니다. 저에게 하루 중 의미있는 시간이 언제일까 생각해 봤습니다. 단언컨대, 잠자기 전 잠깐의 책을 펼쳐보는 시간입니다. 그 시간은 어떻게든 밥벌이의 일상에서 잃어버린 그 무엇을 찾으려는 순간입니다. 일종의 의식과도 같습니다. 은은한 스탠드 불빛 아래 따뜻한 이불 속에서 한 자 한 자 해독하듯 글자를 더듬어 가는 제 눈과 뇌세포가 촉수처럼 예민해집니다. 비로소 제 존엄성을 찾게 됩니다. 간간이 들리는 바람 소리와 소리없이 내리는 눈의 세계와 합일하는 느낌이랄까요. 외로움은 어쩌면 사람들 속에서 비롯됩니다. 홀로 있다는 건 비참함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엇과의 감응입니다. 거기에 책은 매개체 역할을 합니다. 얼마나 근사한지요.

제겐 책에 관한 상처도 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12월에 담임 선생님이 어쩐 일로 자유 시간을 줬습니다. 방학을 앞둔 때라 선생님도 수업하기 싫었나봅니다. 선생님은 난롯가에 앉아 불을 쬐고 아이들은 잡담하거나 공부했습니다. 전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동화책을 읽었습니다. 그걸 본 선생님이 책을 빼앗아 난로 속에 집어 넣었습니다. 수업 시간에 쓸데없는 책을 읽는다고요. 제가 읽던 책은 불 속에서 순식간에 타버려 시커먼 재가 됐습니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피부가 따끔거렸습니다. 그 시대는 그랬습니다. 지금도 그런가요. 공부는 안하고 책만 본다고 말이죠.

일주일에 한번은 꼭 한밭도서관에 갑니다. 한밭도서관은 제 서가인 셈입니다. 빽빽이 꽂힌 책을 보면서 '저 많은 책을 언제 다 읽지?' 행복한 고민에 빠집니다. 종종 감동적인 장면도 목격합니다. 한번은 80 중반쯤의 할머니가 읽을 책을 열심히 고르더라고요. 허리가 바짝 굽어 거동이 불편해 보였습니다. 할머니는 길지 않은 여생 책 한권이라도 더 읽고 싶다고 하더군요. 지적인 풍모의 할머니가 어찌나 멋지던지요. 책은 분명 의식의 차원을 높입니다. 부조리하고 부당한 사회에 대한 비판의식을 길러 줍니다. 물론 어떤 책을 읽느냐 하는 문제가 있긴 하죠. '2018 책의 해'가 저물어 갑니다. <미디어부 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교육청 2026년 공무직 채용 평균 경쟁률 6.61 대 1… 조리실무사 '최저'
  2. 의대 정원은 늘리는데 비수도권은 교원 확보 난항…감사원 "대책 시급"
  3. 표준연 '플래시 방사선 1초 암 치료기' 프로젝트 시작 "2035년 상용화 목표"
  4. 6개월 째 치솟는 주담대 금리…대전·세종·충남 실수요자 부담 가중
  5. 교복부터 릴스까지… 대전교육감 후보 이색 홍보 경쟁
  1. 임신 23주 600g 신생아 4개월 집중치료 덕분에 '집으로'
  2. 대통령 체험학습 발언에 지역 교원단체 "교권 보호" 한목소리
  3. "지식재산고등법원으로" 특허법원 명칭 개정 목소리 나와
  4. [박현경골프아카데미]호구 안 당하고 싶다면 이렇게 하세요..현직 프로들이 말하는 OECD 극복하기
  5. 육군32보병사단, 대전 충무훈련서 민·관·군·경 합동 수송동원 훈련

헤드라인 뉴스


선대위 띄우고 공동선언하고… 대전·충청 선거 분위기 고조

선대위 띄우고 공동선언하고… 대전·충청 선거 분위기 고조

6·3 지방선거를 30여 일 앞두고 기선을 잡으려는 여야 각 정당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대전 선거대책위원회를 띄워 본격적인 선거 체제에 돌입했고, 더불어민주당 충청권 4개 광역단체장 후보들은 '충청권 공동대전환'을 선언하는 등 선거 열기가 점차 고조되는 분위기다. 먼저 더불어민주당 대전, 세종, 충남, 충북 4개 시·도지사 후보들은 29일 오전 세종시청에서 '충청권 공동대전환' 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번 공동선언은 민주당 충청권 광역단체장 후보들이 이재명 정부의 '지방주도 성장' 기조에 맞춰 충청을 변방이 아닌..

與 충청 시·도지사 후보, "수도권 일극 깨부순다" 초광역 협력 선언
與 충청 시·도지사 후보, "수도권 일극 깨부순다" 초광역 협력 선언

더불어민주당 충청권 4개 시·도 광역단체장 후보들이 수도권 일극체제 타파와 초광역 협력을 내걸며 세몰이에 나섰다. 더 이상 지역 간 소모적인 경쟁 없이 세종 행정수도 완성과 광역 경제·생활권 구축 등 핵심 의제에 힘을 모으겠다는 뜻을 담았다. 이를 통해 충청권을 대한민국의 새로운 중심지로 전환하겠다는 약속을 이어갔다. 허태정(대전), 조상호(세종), 박수현(충남), 신용한(충북) 시·도지사 후보는 29일 오전 세종시청 브리핑룸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충청권 공동대전환' 선언식을 가졌다. 이들은 "수도권 일극체제는 더 이상 대한민..

대전 버드내초 인근 신생 핫플레이스로 `주목`…신규 창업점포 지속적 증가
대전 버드내초 인근 신생 핫플레이스로 '주목'…신규 창업점포 지속적 증가

대전지역 곳곳에서 신생 상권이 새롭게 형성되고 있다. 평소 주목받지 못했던 지역에 아파트가 들어서거나, 다시금 유동인구가 늘어나며 신규 점포 등이 하나둘 문을 열고 있어서다. 기존 상권과 달리 신규 창업 점포가 눈에 띄게 눈에 띄게 확장되자 창업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또 하나의 블루오션으로 주목받는다. 29일 소상공인 365 빅데이터가 추려낸 대전 신생 핫플레이스는 중구 유천1동 '버드내초등학교' 인근이다. 신생 핫플레이스란, 상권이 형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장소로 최근 들어 급부상하는 곳을 뜻한다. 5만 1045㎡ 규모의 해당 상..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때 이른 더위에 장미꽃 ‘활짝’ 때 이른 더위에 장미꽃 ‘활짝’

  • ‘우회전 시 일시정지 꼭 해주세요’ ‘우회전 시 일시정지 꼭 해주세요’

  • ‘74명 사상’ 안전공업 건물 철거 돌입…현장감식 병행 ‘74명 사상’ 안전공업 건물 철거 돌입…현장감식 병행

  • 이재명 대통령,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 제481주년 기념다례 참석 이재명 대통령, 충무공 이순신 장군 탄신 제481주년 기념다례 참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