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스나이퍼 sniper] 8. 다반향초(茶半香初) 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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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스나이퍼 sniper] 8. 다반향초(茶半香初) 소고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1-31 00:00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다반향초
게티 이미지 뱅크
어제는 멀리서 진객(珍客)이 찾아오셨다. 지난 1월 4일자 조선일보엔 필자가 기고한 글 '[독자 ESSAY] 초졸 출신 '글 쓰는 경비원', 새해 목표는 성공학 강사'라는 글이 게재됐다. 이 글을 보시고 연락을 해 오신 분이셨다.

필자처럼 가난했기에 많이 배우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살아오신 삶을 책으로 발간하고 싶다고 하셨다. 대전역까지 마중을 나간 필자는 그 분을 모시고 대전역 앞의 김삿갓 다방으로 들어섰다.

문을 연 지 어언 70년이라는 김삿갓 다방은 차를 마신 뒤 셈을 할 적에도 카드가 안 되고 오로지 '현금 박치기'만 가능했다. 그럼에도 '아날로그 다방'이라는 생각에 흐뭇함이 쉬 가시지 않았다.

자리를 옮겨 마찬가지로 60년 이상의 전통을 자랑하는 화교 중국집 식당 '태화장'을 찾았다. 탕수육에 소주를 두 병째 비우니 시나브로 술기운이 모락모락했다. 연세가 꽤 있으신 분이셨기에 두 잔만 채워드리고 나머지 술은 필자가 다 마셨다.

어제의 진객(珍客)께서는 다방의 찻값에 이어 중국집 식대까지 내주셨다. 그 감사함에 대전역까지의 배웅 때는 성심당 튀김소보로 빵을 사서 드렸다.

"이게 어제(문재인 대통령이 1월 24일 오후 전국경제투어로 대전을 방문하여 대전의 명물 성심당 빵집에서 튀김 소보로를 고르는 장면이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다.) 대통령도 샀다는 그 빵입니까?" "네, 맞습니다!"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어제 뵌 어르신은 필자보다 10년 이상의 연세를 가지셨다. 그만큼 인생의 경륜(經綸) 역시 필자를 압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감히 그분의 글쓰기 멘토(mentor)가 될 수 있었던 데는 다 까닭이 존재한다.

우선 필자는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 어느덧 20년에 육박한다. 덕분에 그동안 문학관련 상만 하더라도 100개 이상을 더 받았다. 아무튼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 말로 조력자의 역할을 하는 사람을 멘토(mentor)라고 하며, 조력을 받는 사람을 멘티(mentee)라고 한다.

졸지에 멘토가 된 덕분에 필자는 그 어르신께 앞으로 이메일 등을 통하여 글을 잘 쓰는 법을 전수해 드리고자 한다. 글쓰기 학원을 다녀본 적이 전무하며, 더욱이 학력마저 초등학교 졸업뿐인 무지렁이가 글쓰기 멘토라고? 맞다. 사실이다!

이는 수십 년 동안 습관화해 온 독서와 독학에서 기인했다. 그래서 '임지학서 지수진흑(臨池學書 池水盡黑)'의 중요성을 추가코자 한다. 이는 '연못에 가서 붓글씨를 연습하니 연못의 물이 온통 까맣게 되었다'는 뜻이다.

서진(西晉)의 위항(衛恒)이 쓴 '사체서세(四體書勢)'에서 동한(東漢)의 서예가 장지(張芝)의 서예를 논할 때 나오는 구절이다. '사체서세'는 중국 최초의 서예 이론서로서 문자 변천의 역사와 여러 가지 서예의 이론을 상세히 논하고 있는 귀중한 문헌이다.

장지는 붓글씨를 연습하기 위해 집에 있는 모든 옷감은 먼저 붓글씨를 연습한 뒤에 빨았다고 한다. 또한 매번 연못에 가서 글씨를 연습하여 연못의 물이 온통 검은색이 되었다고 전해진다.

동진(東晉)의 왕희지(王羲之) 또한 장지의 경지를 따라잡기 위해 붓글씨를 하도 열심히 연습하는 바람에 나중에는 연못의 물이 완전히 먹물 색이 되고 말았다는 일화가 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임지학서 지수진흑'의 각오와 자세가 되어 있어야만 비로소 명작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여하튼 필자의 글쓰기 멘토 역할은 수 년 전에도 있었다. 실제로 몇 년 전에는 지인 한 명을 수필가로 등단까지 시켜준 경력이 있는 때문이다.

언젠가 글쓰기 학원을 다니라는 조언을 받았다. 하지만 그 금액이 상상을 초월했다. 또한 그래봤자 글쓰기 학원의 강사이자 멘토에게서 배운 글 솜씨는 그 수준이 엇비슷한 일종의 '붕어빵 작가'가 되겠다 싶어서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필자가 지도하게 될 어르신에 대한 글쓰기 멘토는 지금도 불변한 독서의 힘 덕분이다. "나는 신발이 없다고 한탄했는데 거리에서 발이 없는 사람을 만났다." 미국의 처세술 전문가였던 데일 카네기가 한 말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보다 소유하지 못한 것에 대한 집착을 더 많이 하게 된다. 그래서 말인데 필자가 남들처럼 대학을 나왔고, 직장 또한 연봉이 억대에 육박할 정도로 잘 살았더라면 과연 작가가 될 수 있었을까…….

단언컨대 불가능했을 것이다. 사서도 한다는 젊었을 적 고생이 오늘날 필자의 글감(글의 내용이 되는 재료)이 돼 주었다.

지난 1월 23일 대전지방보훈청은 5년 이상 군복무한 제대군인을 대상으로 대전보훈청 5층 대강당에서 취업 워크숍 및 멘토 위촉식을 가졌다. 이 뉴스를 보면서 필자는 언제 누군가의 멘토가 될 수 있을까를 고민(?)했는데 어제 마침내 그 결실을 이루게 되었다.

자화자찬이긴 하되 필자의 또 다른 장점은 의리가 돈독하고 다반향초(茶半香初)의 심성을 지녔다는 점이다. '다반향초'는 차(茶)를 마신 지 반나절이 되었으나 그 향(香)은 처음과 같다는 뜻으로, 늘 한결같은 원칙과 태도를 중시한다는 뜻을 나타낸다.

홍경석 / 수필가 & 칼럼니스트

홍경석 작가-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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