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 회회아비는 어디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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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난순의 식탐] 회회아비는 어디 가고

  • 승인 2019-09-25 11:03
  • 신문게재 2019-09-26 22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만두
스산한 바람에 옷깃을 여미게 되면 나는 시장에 간다. 그것은 땅거미 질 무렵 둥지를 찾아 돌아오는 새의 본능과도 같은 것이다. 나는 인정이 몹시 그리워 시장 구석구석을 기웃거린다. 대전 중앙시장은 내 살아온 날들의 추억이 배어 있다. 고향을 일찍 떠나 터를 잡은 대전에서 고향 냄새를 맡고 싶으면 시장으로 달려가곤 한다. 슬럼프에 빠져 갈피를 못 잡고 허우적거릴 때도 시장을 찾는다. 그리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인생의 질곡을 풀어내는 사람들 틈에 무작정 끼어 앉는다. 순대를 입에 넣고 우물거리며 어쩌다 그들과 술잔을 부딪치다 보면 '사는 게 별건가' 싶어진다.

시장 골목마다 자리잡은 식당들은 노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냉면, 설렁탕, 보신탕, 통닭집 등 하나같이 오랫동안 한 자리에서 벌어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번잡한 중앙통에서 벗어나면 한복집이 즐비한 골목이 나오는데 여기에도 노포가 있다. '개천식당'. 만두로 유명한 집이다. 가게 사이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얼핏 보면 그냥 지나치기 십상이다. 식당은 1·2층으로 되어 있는데 식탁이 몇 개 안될 정도로 누추하고 협소하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후라 조용했다. 지인의 소개로 한번 와보고 이번이 두 번째다. 평소 만두를 썩 좋아하지 않아 내 돈 주고 사먹은 기억이 없다. 그런데 여기 만둣국은 국물이 담백하고 칼칼해 시원한 맛이 있다. 주인에게 비법을 물었다. 주인은 "사골국물이쥬. 더 알 거 없슈"라며 손사래 쳤다. 날 마치 진시황에게 진상하는 요리 비법을 알아내려는 일급 스파이로 아는 모양이다.

만두의 유구한 역사처럼 여기 만둣집 역사도 못지 않다. 전쟁 통에 이북에서 피란 온 백옥실씨가 시작했으니 70년의 세월이 흘렀다. 백씨는 평양 개천에서 국수를 팔다 1.4후퇴 때 내려와 개천식당으로 이름을 짓고 국수와 만두를 팔았다고 한다. 지금은 백옥실씨 밑에서 일하던 송춘자씨가 물려받아 운영한다. 만두의 본고장은 중국이다. 만두는 동서양을 하나로 이었던 몽골 제국 시대에 칭기즈칸을 따라 유럽과 중동에까지 전파됐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다. 고려가요 '쌍화점'에서 '쌍화'는 만두를 말한다. '쌍화점'은 조선시대 남녀상열지사로 비판받은 노래다. 만두가게 주인 위구르인과 고려 여인의 뜨거운 밀애. '만둣집에 만두 사러 갔더니/회회아비 내 손목을 쥐더이다'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고려 사회의 자유분방한 성 모럴을 노골적으로 표현했다. 사실 쌍화는 '상화(霜花)'에서 비롯됐다. 풀이하면 서리꽃인데 만두를 찔 때 생기는 뽀얀 김을 일컫는다. 얼마나 시적이고 상징적인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옛 것이 좋아진다. 원래 아날로그파이긴 하지만 말이다. 얼마 전부터 라디오를 듣기 시작했다. TV를 껴안고 살다가 어느 날 불현듯 먼지 쌓인 카세트 라디오를 꺼냈다. 이젠 퇴근하면 클래식 FM부터 튼다. 덕분에 오래 전부터 궁금했던 연주곡 제목도 알아냈다. 오펜바흐의 '자클린의 눈물'. 묵직하면서 흐느끼는 듯한 첼로의 깊은 울림을 주는 곡이다. 왜 '자클린의 눈물'일까.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다. 촉망받던 첼리스트 자클린 뒤프레는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과 결혼했으나 불치병에 걸려 남편에게 버림받았다. 결국 그녀는 고통 속에서 외로이 생을 마감했다. 마침 한 첼리스트가 오펜바흐의 미발표곡을 발견해 자클린에 대한 헌사로 제목을 이렇게 붙여 발표했다. 인간을 지배하는 건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다. 사랑의 열정은 연기와 같은 것. 만둣집 주인 회회아비와 고려 여인의 밀애는 어떤 사랑일까. 시장 후미진 만둣집엔 내 손목을 쥐는 회회아비는 없었다. 단지 애먼 만두를 수저로 짓이겨 먹으며 심통 부리는 철부지 여인만 있을 뿐. <미디어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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