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 밥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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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난순의 식탐] 밥줄

  • 승인 2020-09-23 10:19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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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 제공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은 병자호란이 무대입니다. 병자호란은 조선이 청나라와의 싸움에서 치욕적 패배를 당한 전쟁입니다. 그 대가로 인조는 삼전도에 가서 청나라 칸에게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숙였습니다. 소설 속에서 칸은 무릎 꿇은 인조를 내려다보면서 바지춤을 내리고 오줌을 갈겼습니다. 김훈은 남한산성 안에 47일 동안 갇혀 고립무원의 상태에 빠져 시시각각 멸망이 다가오는 상황에 맞닥뜨린 왕과 신하와 백성들의 생존에 대해 썼습니다.

『남한산성』엔 다양한 음식이 나옵니다. 육포, 보리밥, 말국, 찐 메주콩, 졸인 닭다리, 구운 개구리, 조 껍데기 술, 떡국, 냉잇국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전쟁 중 목숨을 부지하는 건 절박한 문제입니다. 살기 위해선 먹어야 하는데 그 음식이 보잘 것 없고 빈약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임금의 수라상이나 백성의 밥상이나 매 한가지입니다. 수라상은 닭다리 한 개와 말린 취나물국이 전부였습니다. 떡국도 달걀 한 개만 풀어 끓였습니다. 그러니 백성의 밥은 오죽할까요. 성을 지키는 군병들은 보리밥에 뜨거운 간장 국물 한 대접을 마셨습니다. 엄동설한 밤에 보초를 서는 군병들은 얼어버린 찐 메주콩을 침으로 한 알씩 녹여 먹었습니다. 굶어 죽은 말을 가마솥에 삶아 뼈다귀를 뜯어먹기도 했습니다.

김훈은 어느 인터뷰에서 "나에게 절대적인 것은 '밥'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에게 돈과 밥은 평생을 따라다니는 업보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는 먹고 살기 위해서 글을 씁니다. 6.25때 피란 갔던 부산에서 겨우 세 살의 김훈은 굶는 것에 대한 절망감을 알게 됐다고 합니다. 저는 타고난 허약 체질이어서 어렸을 때 놀다 지쳐 저녁을 안 먹고 자면 아침에 일어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기운이 없어 변소도 아버지가 업고 가야 했습니다. 엄마는 서둘러 국에 밥을 말아 덜덜 떠는 저를 먹였습니다. 당연히 그날은 학교에도 못 갔지요. 그래서 초등학교 시절 개근상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김훈과는 차원이 다르지만 밥의 중요성을 저도 일찍 깨달은 셈이지요.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감염병으로 경제가 말이 아닙니다. 전쟁이 따로 없습니다. 자영업자들은 손님이 없어 굶어 죽을 지경이라고 아우성입니다.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고 실업자가 된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비정규직은 더 말할 것도 없고요. 학교를 졸업한 청년들도 취업을 못해 생계를 걱정해야 합니다. 말 많던 이스타항공은 몇백명의 직원을 해고했습니다. 이들은 당장 먹고 살 일이 막막한 처지가 됐습니다. 얼마 전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하청 노동자가 또 숨졌습니다. 왜 노동자들은 개선 요구가 묵살당하는 위험한 일터에서 계속 일을 할까요. 목숨과도 같은 '밥줄' 때문입니다. 이윤의 논리가 작동하는 자본의 시스템은 노동자의 밥줄을 쥐고 '그 쇳물'을 쓰고 있습니다.

흔히 인간의 삶을 정글에 비유합니다. 인간의 야만성, 야비함, 비열함과 싸워야 하는 끝없는 고통. 정글은 적자생존의 장입니다. 밟느냐, 밟히느냐의 문제입니다. 이것이 조직의 생리입니다. 밥줄이 위태로운 시대에 밥벌이는 징글징글합니다. 날마다 사표 쓰는 상상을 하며 출근하지만 생존을 위해 치욕을 견딥니다. 인간 정글에서 권력은 약자에게 투철한 노예근성을 요구합니다. 말 잘 듣는 고분고분한 노예 말입니다. 그래서 충성스런 노예는 사유하지 않습니다. 현실 속에서 자존은 큰 의미를 갖지 못합니다. 무력한 개인들은 어찌해 볼 수 없는 상황을 굴욕적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습니다. 밥벌이의 지겨움을 토로한 김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밥에는 낚싯바늘이 들어 있다. 밥을 삼킬 때 우리는 낚싯바늘을 함께 삼킨다." 오늘도 시시포스는 낚싯바늘의 고통을 참으며 바윗덩어리를 들어 올립니다. <미디어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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