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성일이 만난 사람]김병국 (사)대전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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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일이 만난 사람]김병국 (사)대전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이사장

민주화운동의 대부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이사장
교동식품 대표이사
목원대 이사장 직무대행으로
왕성하게 활동중

  • 승인 2020-10-04 00:16
  • 수정 2021-05-05 00:50
  • 신문게재 2020-10-05 9면
  • 한성일 기자한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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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군부 독재 당시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섰던 김병국 (사)대전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이사장((주) 교동식품 대표이사)은 대학 시절 수차례 옥고를 치러 건강이 안 좋은 상태이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지금까지 민주화운동을 위해 헌신해 오고 있다. 교동식품 대표로서 국, 탕류에서 국내 1위를 달리는 성공한 기업인이자 독실한 천주교인이기도 한 김병국 이사장은 어려운 이웃들에 대한 따뜻한 나눔 실천에도 앞장서오면서 목원대 총동문회장과 목원대 이사장 직무대행을 맡아 모교 발전을 위해서도 헌신하고 있다. 이에 김병국 이사장을 만나 민주화 운동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 온 이야기와 교동식품을 창업해 국내 굴지의 기업으로 키워 온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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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이사장님,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을 위해 목숨 바쳐 투쟁해 오신 운동권의 대부신데요. 평생을 몸 바쳐 헌신해 오신 민주화운동 이야기를 들려주실까요?

▲저는 목원대 경영학과 78학번인데요. 1980년대 군부독재를 종식하고 민주사회를 만들기 위한 학생운동의 주동자로 몰려 온갖 구속과 탄압 속에 수차례나 옥고를 치르면서 고문 후유증으로 지금도 건강이 많이 좋지 않습니다. 그래도 제 한 목숨 바쳐 민주화에 기여하고 우리 자손들에게는 자유 민주주의국가를 물려줘야 되겠다는 생각에 서슬 퍼런 군부독재 시절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항거하면서 차가운 겨울 감방 생활을 이겨냈지요. 이때 당시 너무나 심한 구타와 고문을 당하다 보니 지금도 몸 상태가 많이 힘들지만 절대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소신을 지킨 점에 대해서는 보람과 자부심을 느낍니다. 현재까지 5.18 민주화 운동 정신 계승과 전국화를 위해 헌신적인 활동을 하고 있어서 따르는 후배들이 많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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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 운동권 활동하실 때 어떤 상황이셨는지요.

▲저는 1980년 5월 목원대 경영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일 때 군부독재 박정희 시해로 유신정권이 종말 되면서 1980년 민주화의 봄에 학원 민주화와 유신 잔재 철폐, 계엄해제 12.12 군사 반란 주범 전두환 퇴진을 주장하다가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1980년 6월 구속돼 13개월을 감옥에서 지내던중 1981년 6월 형 집행정지로 석방된 바 있습니다. 그 후에 우리 농산물을 지켜내고 주권을 지키기 위해 1985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반대와 농산물 수입 반대 투쟁으로 구속되었고, 1987년 1월 권인숙 양 성고문사건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집회 시위 주도로 구속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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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이사장님은 대학 졸업 이후에도 지금까지 줄곧 민주화 운동을 지속적으로 해오셨는데요.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실까요?

▲저는 수차례 옥고를 치르고 나온 이후에도 대전지역에서 5.18 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알리는 활동과 민주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활동을 해왔고, 5.18 민주화운동이 국가기념일로 제정되기까지 군부독재 타도와 학살 주범에 대한 역사적인 심판을 위해 헌신적인 활동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현재까지 5.18 민주화운동 정신이 후대에 올바르게 계승될 수 있도록 5.18 민주유공자회 모임을 이끌어 왔고, 전국화하기 위한 다양한 5.18 기념사업들을 추진해 왔습니다. 5월 정신 계승으로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와 통일의 길로 나가기 위해 대전지역의 여러 시민사회단체 대표를 맡아 현재까지 통일운동에 헌신해왔지요. 하루빨리 분단을 극복하고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앞당기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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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이사장님, 지금까지 살아오신 이야기를 전해주실까요?

▲저는 58년 개띠입니다. 제 또래 친구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뭐든지 맡은 일은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제가 해온 일들은 다 잘 되는 것 같습니다. 제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교동식품도 국과 탕 종류에서는 전국 1위를 달리고 있거든요. 연 매출도 지난해에 410억 원에서 올 연말에는 500억 원을 달성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코로나 시기에 저희 회사 제품은 오히려 더 많이 나가는 업종이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교동식품 설립 하기 전 신문사 지국장도 4년 정도 했는데 이 때도 전국 1위 실적을 올렸답니다. 그게 제 인상이 웃는 인상이다 보니 그 덕을 보는 듯한데요. 사람들이 저를 처음 보면 목사님이냐, 선생님이냐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하하하). 제가 편안해야 상대방도 편안하고 좋은 일도 많이 생기거든요. 그래서 젊어서부터 좋은 표정을 짓기 위해 노력했지요. 웃는 얼굴로 영업을 하면 영업이 잘 되거든요. 모든 사물을 다 좋게 보고 긍정적으로 보는 습관이 어려서부터 몸에 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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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고향이 아산이다 보니 현충사로 소풍 가면서 이순신 장군의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책을 좋아해서 어릴 때부터 을지문덕, 강감찬, 이순신, 윤봉길 위인전 등을 즐겨 읽었는데요. 어머니께서는 윤봉길 의사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습니다. 윤봉길 의사가 거사를 치르기 위해 만주로, 중국으로, 상해로 이동할 때 자금이 필요하니까 시집가는 여동생 혼수비를 사용했다며 대장부는 때에 따라서 가족을 버릴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그런 어머니의 영향으로 대학 때 운동권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감옥에 들어가 있을 때 면회 오셔서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으셨습니다. 정말 대단한 어머니십니다. 저는 5남 1녀 중 셋째인데 아버지는 순천 김가 양반의 유습을 갖고 있으셨죠. 김승현 한화 그룹 회장도 순천 김가인데요. 김종서 장군과 영화 '남한산성'에 나왔던 김유 장군 등의 후손이지요. 저는 어릴 때부터 사람들과의 관계성이 좋았습니다. 이야기도 잘하고, 상대방을 편하게 대하는 것들이 거의 의식화되고 습관화된 것 같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대학 1학년 때까지 일기를 하루도 빼놓지 않고 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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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은 이성적이어야 되고 과학적이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문학을 좋아하다 보니 근본적으로 굉장히 선량하고 자선사업도 할 수 있는 품성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문학적인 사람이 삶의 모순점을 찾고 개선하고, 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내 삶을 설계하고 짜여진 형태로 가는 사회과학운동을 하다 보니 처음엔 적응이 어려웠죠. 그래서 학생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일기 쓰기가 어려워지더군요. 책을 많이 읽으면서 저의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제 삶의 방향에 대해 가치 실현을 생각하게 되었고, 사회사업가의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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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이사장님, 파란만장한 대학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실까요?

▲대학에 와서 판암동의 고아원과 정림동의 양로원에 다니면서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양로원에 갔을 때 두 다리가 없는 분을 업고 화장실에 모시고 가고, 청소봉사를 했지요. 우리가 할 일은 정말 많았습니다. 고아원에 가보니 아이들이 사람이 그리워 품에 안기는데 마음이 너무나 아프더군요. 이 아이들을 평생 사랑으로 보듬어주고 수족이 되어줄 수 있을까 생각해봤죠. 평생 할 수는 없겠다는 현실적인 깨달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상에서 현실로 돌아오면서 직접 고아원, 양로원을 찾아가는 대신 행정적으로,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런 꿈을 펼치기 위해 행정고시를 준비했었지요. 기독교청년인지라 대학의 기독교서클인 CCC 활동을 했답니다. 대학 2학년 때는 한국 유네스코 학생회 회장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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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열심히 하다 보니 회원 수가 점점 늘어나 목원대 최대의 서클이 됐습니다. 낭만,진리, 정의를 지향하는 서클이었지요. 그런 환경에 있다 보니 사회과학대 학생 회장 선거에 나가게 됐고, 학도호국단장 선거에 나가게 된 겁니다. 그러다가 박정희의 10.26 사태를 만나게 된 거죠. 유신독재 잔재가 학교에 굉장히 많았습니다. 경찰서 정보과 형사들이 방을 하나 차지하고 학교 일에 간섭을 했죠. 유신독재 철폐 격문을 붙였는데 학교도 병영화돼 있었습니다. 학생 자율 확대를 위해 학내 비민주적 요소를 철폐하러 학장 면담을 하러 갔죠. 성질 급한 학생들이 학내 민주화 요구 시위를 하는 중심에 제가 서게 된 겁니다. 4월5일부터 시작된 목원대 학내 민주화 시위가 5월1일까지 계속됐죠. 줄기차게 싸워서 학교에서 총동문회 직선제를 할 수 있도록 관철시켰고 총동문회 선거를 치르게 됐습니다. 시국 시위로 변화한 시위는 12.12 군사 독재 전두환, 노태우 정치 군인 퇴진하라고 외치며 데모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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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밑의 김종필, 신현확 등 유신 잔당 물러나라고 학내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러면서 대전의 충남대, 목원대, 한남대, 한밭대 학생들이 학내 시위도 하고, 가두 투쟁도 벌이고, 충남대 학생들은 문화동 캠퍼스 담벼락도 무너뜨리면서 역전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그때는 대학 간 교류가 활발했고, 유네스코 학생회와 탈반 등이 모여 수련회도 하고, 연수도 했습니다. 대학은 달라도 거의 같은 생각을 하는 동지들이었죠. 모이기도 쉬웠고, 하나의 투쟁 목표를 갖고 대전역에서 시위했습니다. 그러던 중 계엄령이 확대돼 예비군 속에 들어갔다가 피신해 제 선배 누나네 집에 도피해 있었습니다. 한 달 동안 숨어지내다가 계속 이렇게 지낼 수는 없어서 자수를 하고 도피생활을 마무리했죠. 제가 시위 주동자라고 대전경찰서 보안대에 의해 구속된 뒤 대전교도소에 수감됐죠. 한 평범한 청년이 1년도 안되는 시간 동안 민주화 투사로 변신해 대전교도소와 서울 영등포 구치소를 거쳐 다시 대전교도소로 내려오게 됐고 엄청난 고문과 구타를 당했습니다. '김대중에게 돈을 얼마나 받았냐', '북한 빨갱이냐', '땀나게 맞아 보겠냐' 하면서 1년 전, 2년 전 일들을 생생히 기억시켜 쓰게 했습니다. 그때 대전교도소에서 많은 민주투사를 만났습니다. 민청학련 사건을 배후 조종했다는 혐의로 대법원 선고 하루도 지나지 않아 사형시킨 인혁당 사건 관련자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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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그 분들이 모두 재심을 통하여 무죄 선고 받고 형사 보상을 받았지만 그 당시 무서운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을 보냈습니다. 이 사건을 폭로하다 잡혀서 7년째 감옥에 살고 있던 장영달 전 의원, 이강철 전 청와대 수석도 만났습니다. 대전지역 선배들도 두 분이 계셨는데 명동 YWCA 위장 결혼 사건으로 투옥된 안양로 선배님과 강구철 선배님도 계셨습니다. 전두환 군사정권의 무차별 구속으로 김대중 대통령 아들과 동생, 그리고 비서들도 모두 잡혀 와 함께 생활하게 되었습니다. 동아투위와 조선일보 해직기자들도 많이 만났죠. 교도소 안에서 책도 많이 보았습니다. 재판도 1심, 2심, 3심을 거쳤지요. 그때 충남대 14명, 목원대 7명, 공주사대 7명,충북대 1명, 천안 단대 1명, 청주대 1명, 그리고 청주에서 시위를 주도한 부산대생 최종철 군 등 32명이 함께 구속되었습니다. 저희는 마지막까지 남아 끝까지 싸웠습니다. 재판 당시에 판사들이 유도 심문을 많이 했습니다. '네 말이 맞지만 사회적으로 혼란을 불러일으킨 것이 맞지 않냐' 하면서 회유했죠. 전두환 군사 쿠데타에 관해 끝까지 항거해서 항소, 상고까지 갔고, 결국은 시대를 대변하면서 역사에 남는 일이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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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에 우리들이 꿈꾸던 미래를 위해 법정에서 투쟁하고 투옥돼 있다가 그다음 해 석가탄신일에 사면되어 출옥했습니다. 교도소 안에서 모진 고문을 당한 저희 같은 희생자들의 피와 땀이 오늘의 민주화에 초석을 다졌다고 생각합니다. 민주화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이 모진 고문과 학대와 구타의 고통을 감내하면서까지 희생한 결과가 오늘에 이르게 된 거죠. 다리조차 제대로 뻗을 수 없는 좁디 좁은 독방은 빛 하나 안 들어오는 깜깜한 방입니다. 겨울에는 난방이 전혀 되지 않은 냉방이라 너무나 추웠죠. 81년 겨울 교도소 독방에서 저녁 먹고 숭늉을 놓고 자면 얼어붙어 물이 쏟아지지 않았습니다. 지금 중촌동 자유총연맹 회관 자리가 대전교도소였는데 교도소 냉방은 정부미 푸대를 펴서 위를 엮은 것이 전부인 거적대기를 덮고 잠을 청해야 했습니다. 낮에는 보이지 않다가 밤이면 어김없이 나타나는 빈대의 공격도 매우 힘들더군요. 스물 두 세 살 때 그렇게 갖은 생고생을 하면서 감옥살이 하다가 봄이 왔습니다. 교도소 밖 미루나무의 나뭇잎을 보는게 그렇게 신선했습니다. 4월의 미루나무 이파리가 살랑살랑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그토록 아름답더군요.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꼈죠. 교도소 안에는 살아 있는 게 아무것도 없거든요. 밥 주는 통, 감시하는 통, 교도관이 보는 구멍이 전부입니다. 낮에는 쥐가 없다가 밤이 되면 쥐가 복도를 왔다 갔다 하는데 움직이는 쥐를 보고도 반가워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군사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군인들이 총칼을 들이대면서 공무원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부정부패가 극심하던 시절, 선조들이 목숨 걸고 지켜온 나라가 쿠데타에 의해 무너지는 모습을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자식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나라는 이게 아니었죠. 후손들에게 박정희, 전두환 군부정권을 물려줄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시대에 끝내려면 우리가 죽어야 한다고 생각해 강하게 싸운 거죠. 사회를 알게 되고, 역사 공부를 하게 되면서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때 당시 시대를 고민하는 청년들이 다 그랬습니다. 출소 후에도 민주화를 위한 청년회를 결성하고 시민청년운동에 헌신하며 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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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도에는 공주대와 목원대 출소자들이 중심이 되어 학생운동 제적생들과 함께 대전충남민주화운동청년연합을 만들었습니다. 그 시대에 의식이 있는 학생 청년들이라면 공장에 위장취업하여 노동운동에 투신하거나 농촌에 들어가 농민운동에 헌신하지 않으면 군부독재를 끝장낼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청년운동에 투신했는데 이 모든 것의 뿌리는 전두환, 노태우 군부정권의 광주 학살에 기인합니다. 민주화운동청년회 활동을 꾸준히 하면서 공장에 들어가 위장취업을 하고 독재정권을 끝장내자는 비장한 각오로 운동했습니다. 충남민청 활동 당시 총무부장을 하던 중 다시 투옥됐다가 나오고, 우루과이라운드 반대투쟁을 하면서 농민들과 함께 유인물을 돌리다가 또 다시 투옥됐습니다. 대전충남민주화운동청년연합 활동가로 농민운동을 지원하고 농산물 반대투쟁, 소값 폭락 투쟁, 수세부과 반대 투쟁 등에 합류하였습니다. 이 때 제 바로 위 형님도 저의 영향으로 아산군 농민회 회장을 하시면서 수세 싸움에 힘을 보태주셨죠. 이때 농민운동하던 사람들이 무농약, 친환경 농산물인 '한살림'을 설립했습니다.

저는 권인숙 양 성고문 사건 때도 성고문을 폭로하며 투쟁했고, 현장에 있는 노동자를 의식화시키는 스터디그룹 등을 만들어 공원들을 의식화시키기도 했습니다. 재판을 하던 판검사도 제가 떠드는 소리에 너무나 부끄러워하며 고개를 못 들더군요.

'이 개 같은 독재 정권'을 '민주화정권'으로 바꾸겠다고 당당하게 외치며 투쟁했습니다. 판사한테 구걸하지 않고 떳떳하게 외쳤습니다. 교도소 동기들과 끝까지 함께 했기 때문에 기분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공주사대 출신 교도소 동기 한 명은 감옥생활 동안 방직공장 다니며 오빠를 뒷바라지하던 여동생의 편지를 받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 사이에서 무너져내렸습니다. '오빠는 집안의 희망인데 시국사범으로 몰려 투옥돼 있으니 집안이 무너지고 희망이 사라졌다’는 내용의 편지를 받고 심적 부담을 이기지 못해 재판 며칠 전에 정신 분열증이 오게 된 거였습니다. 함께 투옥된 학생들이 너무나도 비참한 시간을 보내야만 했죠.

제 어머님은 교도소에 면회 오셔서도 한 번도 우신 적이 없으십니다. 강인한 어머니 덕분에 제가 운동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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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사면 복권되어 교도소에서 다시 나오게 됐지만 그때 너무나 많은 고문과 폭행을 당해 지금도 골반이 아프고 전체적으로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그때 당시 분노가 극에 달해 혼이 나갈 정도였는데 분노 조절을 못해 미쳐가다가 선배의 도움으로 단식과 관장을 통해 살아났지요. 이때 내가 소나무인지, 내가 물인지, 생각도 몸도 같아지고 맑아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받고 세상을 떠난 박종철, 김근태, 최종철, 장준하 등 민주 투사들의 헌신을 생각합니다. 마지막까지 저항한 이 분들의 피눈물 나는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민주화가 있었을까요? 초지일관 생을 다하는 그 날까지 운동을 하기가 쉽지 않은 거지요. 영등포교도소와 대전교도소를 드나들면서 군사정권 철폐에 앞장서왔던 지난 날들을 돌이켜보면 몸은 많이 망가졌지만 우리나라 민주화에 일조했다는 생각에 보람과 긍지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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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이사장님은 교도소 출옥 후 결혼을 하시면서 생활 전선에 뛰어들면서도 여전히 시민운동단체 일을 하셨지요?

▲대학 시절부터 7년 동안 연애한 제 아내는 제 옥바라지를 해준 사람이지요. 제가 스물아홉에 결혼을 했는데 아내와 자식들을 부양하는 가장의 역할을 해야 되니 민주화운동만 하고 살 수는 없어서 생계를 꾸리기 위해 생활 전선에 뛰어들게 됐습니다. 맨 처음엔 대전대 앞에서 복사 집을 시작했지요. 그 와중에도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 활동하다 보니 새벽 3시까지 일개 중대가 저희 집을 포위한 적도 있었습니다. 6.29 선언을 통해 군사독재 종식을 고하고 민주정부로 이양하겠다며 학생들을 복학시켜주는 대한민국 정권을 보며 그동안 응어리진 마음이 많이 풀렸습니다.

지금도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를 만들어 활동가들에게 장학금을 후원하는 시민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를 통해 동지들과 후배들을 돕는 일도 열심히 하고 있지요. 민주화운동 계승사업회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독재정권에 저항하던 운동가 동지들이 민주화 정신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기 위해 만든 운동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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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이 88년 창간될 때 창간 주주모임을 하면서 동대전지국장을 맡았지요. 5년간 지국장을 하면서 세상을 많이 배웠습니다. 이때 민초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알게 됐죠. 신문 확장 요원들이 신문 한 부를 팔기 위해 무진장 애를 쓰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런 지극정성이 있어서 먹고 사는구나 생각했죠. 그래서 이 분들이야말로 민중의 힘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구독자에게 통사정을 해서 수금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절절해졌습니다. 제가 지국장을 맡은 동대전신문지국은 그 당시 한강 이남에서 제일 잘됐습니다. 제가 손대는 것마다 다 잘되더군요. 그때 당시 꼬치 집에 납품하는 후배를 만나 유통업에 뛰어들게 되어 중리동에서 '이조유통'을 설립했고, 양념돼지갈비와 냉면을 팔러 다녔습니다. 이조유통으로 돈을 벌어 땅을 사서 96년 전통식품 제조 판매 회사인 '교동식품'을 창업했습니다. IMF때도 사업이 너무나 잘됐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저더러 '마이더스의 손'을 가졌다고 하더군요(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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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얼리 어답터'이기도 한데 생각이 앞서가기 때문에 사업에도 '필'이 딱 오는 것 같습니다(하하하). 이때 당시 외식시장의 전망을 보게 된 거죠. 집중과 분산, 선택과 집중, 영업과 기획력, 열정을 두루두루 갖추고 일을 하다 보니 하는 일마다 잘됐습니다. 제품 품질도 좋고, 인간관계도 좋으니 사업이 잘된다고 봅니다. 물론 유통을 하면서 고생도 많이 했죠. 아침 9시에 제품을 싣고 나가면 밤 9시까지 차를 몰고 다니며 영업을 했습니다. 하루에 300Km씩 운전한 적도 많습니다. 발을 땅에 딛고 싶었습니다. 과로로 코피가 나서 지혈이 안돼 응급실에 실려 간 적도 있습니다. 정말 부지런하게 열심히 최선을 다해 뛰어다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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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이사장님, 옥천의 교동식품 현장에 와보니 규모가 어마어마하네요. 회사에 대해 소개해주실까요?

▲충북 옥천군 옥천읍 지용로와 옥천군 군북면 자모길 등 5곳에 공장을 갖추고, 서울특별시 구로구 경인로 신도림 핀포인트타워 등에 서울 사무실을 갖고 있는 교동식품은 한국의 비옥한 땅과 하늘과 바람으로 키운 건강한 생명력으로 좋은 음식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전하겠다는 신념으로 한 땀 한 땀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1992년 순수 국내 자본과 기술로 창업한 교동식품은 한국의 전통과 세계인의 입맛에 꼭 맞는 식품 개발을 위해 연구와 노력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최첨단 생산설비로 식품산업의 문화를 창조하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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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로터리 포장기, 자동 면 반죽기와 성형기 등 첨단 설비로 높은 생산성을 갖추고 있고, 엑스레이 검출기와 금속검출기를 통해 제조 단계에서 미물을 제거합니다. 최첨단 레토르트 설비로 제품의 안정성과 품질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레토르트 식품은 저장을 목적으로 한 가공식품을 말합니다. 조리 가공한 여러 가지 식품을 일종의 주머니에 넣어 밀봉한 후 고압가열살균솥(retort)에 넣어 고온에서 가열살균해, 공기와 광선을 차단한 상태에서 장기간 식품을 보존할 수 있도록 만듭니다. 레토르트 식품을 넣는 주머니의 외부는 폴리에스터의 얇은 막으로 되어 있고, 중층은 알루미늄박이고, 내부는 또 다시 폴리에스터막으로 되어있는데, 이 셋을 붙여서 주머니를 만듭니다. 이 주머니에 재료를 다듬고 썰고 조미하여 익힌 것을 자동으로 연속충전기로 넣고 가열하여 봉합니다. 이것을 가압살균, 가압냉각 장치로 105~120도 온도에서 가열살균해 즉시 냉각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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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92년 교동식품의 전신인 이조유통을 설립했고, 96년 교동식품 본사인 1공장(탕류)을 준공했습니다. 2000년에 일본과 미국에 수출을 시작했고, 2005년에 교동식품 2공장(면유 및 육수)을 준공했습니다. 2006년에 황태진국 제조장법 특허등록, 2009년에 수출유망 중소기업지정(중소기업청), 2010년 경영혁신형 중소기업 인증, 2011년에 100만 불 수출의 탑 수상, 2013년 즉석조리(레토르트) 인증, 2014년 축산물 HACCP 인증, ISO 2000 인증, 2016년 중국 가공공장 등록 허가, 국내 최초 정식삼계탕 중국 수출, 2017년 대한민국 중소기업대상 글로벌부문 수상, 2018년 교동식품 3공장(전처리 가공) 준공,즉석조리(살균) HACCP 인증에 이어 2019년 교동식품 제4공장(국탕류, 안주류)과 제5공장까지 준공하기에 이르렀지요. 소비자들의 욕구를 파악하고 시대를 읽어가며 앞서나가다 보니 사업이 잘됩니다. 국탕류로는 세계 1위를 자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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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균처리 돼 실온에 보관할 수 있는 레토르트 제품을 위한 기계를 갖추고 포장도 기계로 하면서 기능성 보은재로 완벽하게 제품을 생산해내죠. 지구 상의 모든 균은 121도에서 5분을 가열하면 모두 사멸됩니다. 저희 교동식품에서는 물냉면과 비빔국수, 육계장 등 200여 종류의 제품 1200만 봉지를 하루에 생산해 냅니다. 지난 2016년도에 100만 불 수출탑을 탔을 때는 참 보람이 컸습니다. 그동안 고생했던 일들이 떠오르면서 눈물이 나더군요. 쿠팡에서 국탕 종류로 우리나라 1위 업계이죠. 수출도 미국, 중국,일본, 호주 등 세계 18 개국에 하고 있는데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자랑스러운 한국의 맛으로 자부합니다. 지금 월 매출이 50억 원이고 직원들 급여가 10억 원씩 나갑니다. 지난해 연 매출 410억에 이어 올 연말 500억 원 매출을 무난히 달성할 것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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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너 협력사가 CJ제일제당, 대성, 동원, 삼성웰스토리, 신세계푸드, 롯데푸드, FOOD MERCE,한성 엔터프라이즈, 신송식품, 다향오리, 생채움, 올품 등이고, 유통은 이마트, 롯데마트, CJ 프레시웨이, 대상 베스트코와 하고 있습니다. 프렌차이즈로는 하남돼지집, 놀부, 슬로우푸드 바른식, 백년토종삼계탕 본점,종로김밥, 밥장인 주식회사, 호박패밀리가 있습니다. 국 한 그릇에 소박하고 건강한 밥상을 만들고, 뜨끈한 국물에 밥 한 그릇을 담습니다. 정감있는 가정식 밑반찬 교동찬방은 집에서 직접 만든 것처럼 엄마의 손맛을 느낄 수 있지요. 전통방식 그대로 밀, 메일, 감자, 칡 등의 재료를 써서 한국인 입맛에 딱 맞는 면 요리도 개발했는데 호로록 감기는 살아있는 쫄깃한 면발을 자랑합니다. 메밀냉면, 칡냉면, 막국수, 녹차냉면, 쫄면, 매실냉면, 칡냉면, 함흥냉면, 비빔냉면, 오장동 메밀면 등을 생산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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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종 야채와 과일을 넣은 하우촌의 비법소소는 맛과 즐거움을 담았습니다. 살얼음 동동 띄운, 시원한 육수가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습니다. 육수 제품으로 동치미 냉면육수, 칡냉면용 냉면육수 등 다양한 육수를 만듭니다. 소스로 하우촌 특제 비빔장, 물냉면 양념장, 냉면용 무김치도 있습니다. 정성 가득한 어머니의 손 맛 그대로 만두도 OEM으로 출시하고 있습니다. 만두류로 교동 왕만두, 교동 김치왕만두, 교동손만두, 교동철판 군만두가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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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회사가 생산하는 레토르트 제품은 육개장, 사골곰탕, 사골우거지국, 사골육수, 황태진국, 콩비지찌개, 소고기 미역국, 선지해장국, 우거지버섯들깨땅, 삼계탕, 반마리삼계탕, 반도리탕, 육개장, 곰탕, 사골우거지국, 황태진국 등이고, 냉동제품으로 육개장, 갈비탕, 뚝불고기, 교동삼계탕, 교동 도가니탕이 있습니다. 업소용으로 육개장, 장터국밥, 버섯야채탕, 닭개장, 양지편육, 양지탕, 사골우거지국, 설렁탕(육수, 건더기), 사골육수, 갈비탕이 나가고 있지요. 컵밥류로 육개장 컵밥, 사골곰탕 컵밥, 미역국 컵밥, 황태국 컵밥이 있고, 반찬류로 소고기 장조림, 메추리알 장조림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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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훈이 '변화에 도전하고 안주하지 마라'입니다. 가장 맛있고, 가장 편하고, 가장 한국적인 식품을 만들자는 캐치프레이즈로 일하고 있습니다. 직원들이 직장을 천국처럼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고 위생과 청결, 맛에 있어서 세계 최고 수준의 레토르트 제품 회사로서 일신일신우일신하고 있지요. 저희가 바라는 인재상은 전문적인 업무 지식을 바탕으로 열성적으로 일하며,성과를 창출하고 경쟁에서 이기는 사람입니다. 저희 회사의 경영 철학이자 존재 목적은 고객과 직원 모두가 행복하기 위해 존재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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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경영 이념은 항상 새로움을 추구하고 변화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오로지 제품과 공정과 설비를 추구하고, 직원들에게 업무 능력과 자기 개발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지요. 우수한 제품으로 고객에게 보답하고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게 목표입니다.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변화를 위해 도전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교동식품은 자연의 건강한 신선함을 우리 식탁으로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맛있는 오늘, 건강한 내일, 좋은 음식이 건강한 사람을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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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이사장님,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실까요?

▲다 이뤘습니다. 젊은 시절 민주화 운동을 치열하게 하면서 우리 후손들에게 민주화된 나라를 물려줄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앞으로도 우리 미래세대가 같이 나눌 수 있는 일에 헌신하며 살겠습니다. 대전민주시민교육네트워크를 창립해 민주사회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습니다.

이제 교동식품은 한국에서 국탕류로 최고회사를 뛰어넘어 세계 최고 회사라고 자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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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에 나가 있는 교포들이 우리나라가 수출하는 탕과 국을 먹으면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지속적으로 아이덴티티를 갖고 더욱 한국스런 맛으로 세계 음식문화 발전에 기여하는 교동식품이 되겠습니다. 이를 통해 한국 식품의 세계화에도 기여하고 싶습니다. 식품을 통해서도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면 기쁨이고 보람이지요. 앞으로도 성실하게 사회에 헌신하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습니다.


대담, 정리 한성일 국장 겸 편집위원 hansung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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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국 이사장은 누구?

▲58년 충남 아산 출생. 아산중, 아산고, 목원대 경영학과 졸업. 전 충남 민주화운동 청년연합 총무부장, 전 충남 민주화실천 가족운동협의회 간사, 전 대전충청 5.18 민주유공자회 회장, 전 (사)우리겨레하나되기대전충남운동본부 상임대표,전 전국 5.18 민주화운동 지역협의회 회장, 현재 6.15 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대전본부 공동대표, (사)대전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이사장, 평화통일교육문화센터 이사장, 교동식품 대표이사, 목원대 이사장 직무대행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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