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랑올랑 새책] '내가 딛고 있는 세계에 대한 성찰'

  • 문화
  • 문화/출판

[올랑올랑 새책] '내가 딛고 있는 세계에 대한 성찰'

불쉿잡, 콜카타의 세사람

  • 승인 2021-09-20 07:49
  • 수정 2021-09-20 08:31
  • 오희룡 기자오희룡 기자
불쉿
모든 것이 멈추어도 절대 멈출 수 없는 일이 있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 팬데믹이 2년여간 계속되면서도 대면 업무를 피할 수 없었던 보건 의료, 사회복지 종사자, 돌봄 노동자, 배달업 종사자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필수 노동자'들이라고 부른다. 최근 극적으로 봉합되긴 했지만 보건의료노조의 파업은 이 사회가 '그 필수 노동자들'의 무한한 희생을 통해 시스템이 유지된다는 것을, 그리고 모든 것이 멈춰도 절대 멈추면 안되는 일이 있다는 것을 가장 사실적으로 보여줬다.

반대로 누군가를 중요한 사람으로 보이게 존재하는 일들도 있다. '제복 입은 하인', '직업인으로서의 깡패', '형식적 서류 작성 직원'들이다.



1930년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20세기가 끝날 무렵이면 주당 15시간 노동여건을 달성할 것이라고 예견했지만, 생산의 자동화는 인류에게 여가 시간을 주는 대신 '가짜 일일'을 하는 불쉿잡을 양산했다. 그리고, 그 중요성에 비해 여전히 수준 미달의 대우를 받는 필수 노동자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경제가 발전할수록, 기술이 진화할수록 공고화되는 인류의 계급과 견고해지는 집단의 벽안에서 우리는 얼마나 스스로의 정의에 부합하며 살 수 있을까. 우리가 사는 현실을 가장 사실적으로 분석한 책 두 권이 나란히 출간됐다.



인간의 기만과 허위의식을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불쉿잡'(데이비드 그레이버 지음·김병화 옮김, 민음사 펴냄, 512쪽)이 비판적 현실을 바탕으로 '기본 소득'이라는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면 '콜카타의 세사람'(메가 마르다르 지음, 이수영 옮김, 북하우스 펴냄, 360쪽)은 기차 테러 사건에 우연히 휘말린 세사람을 통해 사회적 계급 이동을 절박하게 소망한 인류에 '지극히' 현실적인 결말을 제시한다.



따옴표3
우리 사회에는 어떤 직업이 다른 사람들을 이롭게 하는 것이 확실할 수록 정당한 보수를 받을 확률은 더 낮아진다는 일반 원칙이 있는 것 같다. 여기서도 객관적 척도는 찾기 힘들지만 쉽게 알아내려면 다음과 같이 질문하면 된다. 그 직업 계급이 통째로 사라진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간호사, 쓰레기 수거요원, 정비공같은 직종을 어떻게 생각하든지 간에 그들이 만약 한 순간에 사라진다면 그 영향은 즉각적이고 엄청난 재앙이 될 것이다.-'불쉿잡' 중



▲왜 무의미한 일자리는 계속 유지될까? '불쉿 잡' = 백화점에서 유니폼을 입은 직원을 꿇어 앉히고 갑질을 행사하는 뉴스가 종종 보도된다. 갑질 사례가 보도되고, 천박한 천민자본주의를 비판해도 백화점은 끊임없이 손님을 등급을 매기고 각각의 등급에 맞춰 유니폼 입은 직원들을 배치한다.

주먹과 폭력이 삶의 전부인 깡패들에게 위계질서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들의 '형님'의 '형님'의 '큰 형님'의 '왕형님'의 '어르신'의 정점을 따라가다 보면 이 사회에 그렇게나 많은 존재가 필요한가 라는 의문을 들게 한다.

기술이 발달하면 노동에서 해방될 것이라는 예측과는 다르게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하찮고, 쓸데없는 일들이 계속 생겨난다.

'쓸모없는', '엉터리,' '쓰레기 같은' 등의 의미를 지닌 비속어인 불쉿(Bullshit)에서 파생된 불쉿잡은 "종사자조차도 그것이 존재해야 할 정당한 이유를 찾지 못하는 직업"을 말한다.

실제로 책에서는 '영국인의 3분의 1이 자기 직업이 세상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지 않는다'고 답하는 것으로 조사됐고, '네덜란드인의 40%가 자기 업무가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뚜렷한 이유가 없다'고 답했다고 말한다.

책에서는 이처럼 쓸데없는 불쉿직업을 다섯 가지 형태로 구분했다. 상사나 관리자를 중요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제복입은 하인', 타인을 공격하는 요소가 있으며 누군가가 채용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직업인 '깡패', 문제를 덕트테이프같은 임시방편으로 때우는 업무만 하는 '임시 땜질꾼', 실제 목표를 이루는 것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서류를 양산하는 형식적 서류 작성 직원', 그리고 이런 불쉿 업무를 만들어 배분하는 중간 관리자 '작업 반장'이다.

문제는 코로나 팬더믹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맞닥뜨린 지금이다. 이 비상 상황에서 진짜로 사회에 필수적인 일이 극명하게 드러나면서, 불쉽잡은 끊임없이 느는 대신 타인을 이롭게 하는 노동일수록 보수는 왜 적어지는가에 대한 성찰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가 제시한 해법은 '보편적 기본소득'이다. 보편적 기본 소득 운동이 기본적으로 제안하는 것은 생계와 노동을 분리하는 것이다. 저자는 노동의 가치, 시간의 가치를 임금의 값으로만 환산하지 않을 수 있다면, 비로소 인간의 자유와 실천에 대해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따옴표2


많은 사람들이 밖을, 자기 나라의 들판을 내다본다. 창밖에 마음을 달래주는 녹색이 펼쳐진다. 논과 야자나무, 전원지대의 끝없는 녹색, 아, 환상! 사실 그들은 추한 교외 지역을 보고 있다.-'콜카타의 세사람' 중



▲나는 지금 이 세계의 어느 자리에 서있을까? '콜카타의 세사람' =성공에 관한 정의는 각자 다르지만, 누구나 성공을 꿈꾼다. 성공을 하면 보다 나은 삶이 될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콜카타의 세사람'은 기차 테러 사건에 우연히 휘말려 체포된 젊은 여성과 그 여성의 결백을 증명할 유일한 증인인 배우 지망생, 테러 사건 재판과 여론을 발판삼아 정당 정치에 뛰어든 중년 남성을 통해 집단에 의해 가해지는 폭력이 얼마나 극단적인지를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 과정에서 집단의 광기와 여론 재판, 각자의 욕망과 선택의 결과는 현실적이다.

'경찰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을 돕지 않는다면, 죽는 모습을 지켜만 본다면, 정부 역시 테러리스트라는 뜻 아닌가요?'라고 페이스북에 올린 짤막한 코멘트로 테러 사건의 용의자로 몰린 젊은 여성. 마녀 사냥과도 같은 여론 재판은 이 젊은 여성은 이미 테러용의자다.

광기처럼 들끓는 여론 속에서 유일하게 그녀의 결백을 증언하는 것은 인생을 걸 만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녀를 본적도 없는 중년의 남자는 단지 그녀가 자신이 몸담은 학교에 다녔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그녀가 충분히 테러를 저지를 법한 인물이라는 암시'만 하면 인생의 한계단을 오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진실을 은폐하고 희생양을 찾는 정치권과 사법체계,포퓰리즘 정치와 가짜뉴스, 언론 재판 등 현대 사회의 온갖 부조리한 시스템을 한곳에 모아놓은 책 속 세계는 현실의 축소판이다.

진범은 사라지고 희생자만 남은 사건을 세사람의 인생을 통해 생생하면서도 무심하게 써나가고 있는 소설은 그래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는 어떤 곳인지, 그리고 이 세계에서 내가 끝끝내 지키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질문을 던진다.
오희룡 기자 huily@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속보>옛 주공아파트 땅밑에 오염 폐기물 4만톤…조합-市-LH 책임공방 가열
  2. 국립한밭대 학부 등록금 '그대로'... 국립대 공교육 책무성에 '동결' 감내
  3. 이장우 김태흠 21일 긴급회동…與 통합 속도전 대응 주목
  4. 대전·충남 행정통합 교육감선거 향방은… 한시적 복수교육감제 주장도
  5. "대결하자" 아내의 회사 대표에게 흉기 휘두른 50대 징역형
  1. 충남도 "특별법 원안 반영될 경우 지역경제 활성화, 행정 낭비 제거 도움"
  2. "홍성에서 새로운 출발"… 박정주 충남도 행정부지사, 홍성군수 출마 행보 본격화
  3. ‘대전·충남 행정통합 주민의견 수렴 속도낸다’
  4. 충남 내포혁신도시, 행정통합 이후 발전 중단 우려감 커져
  5. 휴직 늘어나 괴로운 구급대원… "필수인 3인1조도 운영 어려워"

헤드라인 뉴스


이장우·김태흠 "대통령 공약 쇼케이스" 與주도 통합 제동

이장우·김태흠 "대통령 공약 쇼케이스" 與주도 통합 제동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가 21일 한시적 지원에 방점이 찍힌 정부의 대전 충남 행정통합 인센티브안을 고리로 정부 여당 압박수위를 높였다. 두 시도지사는 이날 대전시청 긴급회동에서 권한·재정 이양 없는 중앙 배분형 지원으로는 통합이 종속적 지방분권에 그칠 수 있다며 이재명 대통령의 결단을 촉구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 특별법안의 후퇴 시 시도의회 재의결 등을 시사하며 배수진을 쳤는데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입법 추진에 사실상 제동을 건 것으로 풀이된다. 이장우 시장은 대전 충남 통합 논의가 대통령의 공약 추진을 위한 쇼케이스, 선..

대전·충남 필두로 한 ‘광역통합’, 비중있게 다뤄진 신년기자회견
대전·충남 필두로 한 ‘광역통합’, 비중있게 다뤄진 신년기자회견

이재명 대통령이 신년기자회견에서 제시한 ‘야심 찬 시도’를 위한 첫 번째 과제는 ‘지방주도 성장’, 그중에서도 광역통합이 주요 사안으로 다뤄졌다. 핵심은 통합을 위한 권한과 재정 이양으로, 이 대통령은 “재정은 무리가 될 정도로 지원하고, 권한도 확 풀어주자”라고 강조했다. 다만 대전과 충남에서 고개를 드는 반대 기류와 관련해선, “민주당이 한다고 하니까 바뀌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긴 한다”며 한마디 했다. 이 대통령은 21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6년 신년기자회견에서 ‘광역통합 시너지를 위한 항구적인 자주 재원 확보와..

대전 반석역3번 출구 인근, 회식 핫플레이스…직장인 수 늘며 호조세
대전 반석역3번 출구 인근, 회식 핫플레이스…직장인 수 늘며 호조세

대전 자영업을 준비하는 이들 사이에서 회식 상권은 '노다지'로 불린다. 직장인을 주요 고객층으로 삼는 만큼 상권에 진입하기 전 대상 고객은 몇 명인지, 인근 업종은 어떨지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가 뒷받침돼야 한다. 레드오션인 자영업 생태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다. 이에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빅데이터 플랫폼 '소상공인 365'를 통해 대전 주요 회식 상권을 분석했다. 21일 소상공인365에 따르면 해당 빅데이터가 선정한 대전 회식 상권 중 핫플레이스는 대전 유성구 노은3동에 위치한 '반석역 3번 출구' 인근이다. 회식 핫플레이스..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동파를 막아라’ ‘동파를 막아라’

  • 행정통합 관련 긴급 회동에 나선 이장우·김태흠 행정통합 관련 긴급 회동에 나선 이장우·김태흠

  • ‘유해야생동물 피해를 막아라’ ‘유해야생동물 피해를 막아라’

  • ‘대전·충남 행정통합 주민의견 수렴 속도낸다’ ‘대전·충남 행정통합 주민의견 수렴 속도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