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난순의 식탐] 거문도에서 생긴 일

  • 오피니언
  • 우난순의 식탐

[우난순의 식탐] 거문도에서 생긴 일

  • 승인 2023-07-12 10:42
  • 신문게재 2023-07-13 18면
  • 우난순 기자우난순 기자
고등어
게티이미지 제공
10여년 전 초여름에 거문도에 갈 기회가 있었다. 지인 소개로 여행사 팸투어에 따라 나서게 된 것이다. 내내 가고 싶었던 섬이어서 휘파람을 불며 배낭을 꾸렸다. 오래 전 난 거문도를 38선 바로 아래 백령도 근처 어디 쯤에 있는 섬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남해에 있다는 걸 알고 놀랐던 기억이 있다. 회사 남자 후배와 목척교 근처에서 가이드들과 관광버스를 타고 밤 9시께 출발했다. 깜깜한 밤길을 달려 우주선 발사로 유명한 나로도항에 내렸다. 바람이 많이 불어 배가 흔들릴 거라며 인솔자가 먹는 멀미약을 나눠줬다. 인솔자는 배에 타면 의자에 몸을 밀착시키고 가만히 있으라고 당부했다. 그러면 멀미가 덜 할 거라며.

별도 달도 없는 칠흑같은 바다에서 우리가 탄 배는 격랑 속의 나뭇잎 같았다. 멀미약에 취해 몽롱한 가운데 나는 의자 손잡이를 꽉 잡은 채 등을 등받이에 딱 붙이고 빨리 시간이 가기만 바랐다. 모비딕에 맞서 싸우는 피쿼드호의 선원들 심정이 이랬을까. 후배는 화장실에 간다더니 함흥차사였다. 걱정됐지만 일어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볼일을 보고 나와 돌아오는 중에 배가 심하게 흔들려 넘어진 김에 계속 누워 있었단다. 거문도 항에 닿아 배에서 내려 그 얘기를 듣고 박장대소했다. 비로소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역시 거문도는 만만한 섬이 아니었다. 다들 여관에 짐을 부려놓고 식당으로 갔다. 헉, 생선회가 쟁반만한 접시마다 산처럼 쌓여 있었다. 어수선한 분위기에서 무슨 맛인지도 모르고 먹었다. 그 다음은 노래방. 평소 혼자 여행하다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리자니 마음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괜히 왔나 싶기도 했다.

다음날 아침은 언제 그랬냐 싶게 쾌청했다. 잔잔한 바다는 은색의 갈치 비늘처럼 반짝였다. 우리는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다녔다. 거문도는 '거문도 사건'이라는 역사가 있다. 구한말 영국해군의 거문도 점령사건.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가이드들은 여성들이 많았는데 한껏 멋을 부렸다. 난 전날 입고 온 겉옷을 또 입었다. 짐은 최소한으로 한다는 배낭여행의 철칙이 몸에 밴 탓이다. 윗옷을 코에 대고 킁킁 냄새를 맡았다. 다행히 땀내는 안 났다.

다음 코스는 보성 벌교였다. 투어는 번갯불에 콩 볶아먹듯 빠듯했다. 후배와 선착장으로 가면서 문득 소설가 한창훈이 생각났다. "아 참, 한창훈이 거문도에 산다고 했는데." 후배가 말했다. "그 사람이 누구예요?" 그런데 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바로 눈 앞에 그 한창훈이 있는 게 아닌가. 이목구비가 진하고 너펄거리는 반백의 곱슬머리가 영락없었다. 반바지에 슬리퍼를 신고 동네사람인 듯한 남자와 함께. 나는 너무 놀라고 반가워서 다가가 "한창훈 선생님이시죠?"라고 말을 건넸다. 한창훈은 나를 힐끗 보고 고개를 돌려 상대방과 다시 얘기를 나눴다. 어라? 머쓱한 나는 더 이상 어쩌지 못하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소설가의 시큰둥하고 무심한 태도가 오히려 인상적이었다.



한창훈은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구축한 개성있는 소설가다. 바다를 터전으로 먹고사는 소시민들의 삶의 애환을 실감나게 그린다. 거문도에서 태어나 청년시절 밑바닥 생활을 경험으로 한 감칠맛 나는 소설에 빠져 한동안 열심히 찾아 읽었다. 에세이도 있다. 그 중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는 바다 사나이 한창훈이 밥상에 올렸던 해산물에 대한 글이다. 읽으면서 계속 입맛을 다셨다. 갈치, 삼치, 문어, 고등어, 홍합, 노래미, 거북손, 미역, 우럭…. 그에겐 섬 생활이 삶의 방편이겠으나 고달픈 도시생활자들에겐 꿈의 낙원으로 다가온다. 고등어회를 한번 맛보면 다른 회는 쳐다도 안 본다고? 거문도의 매력을 제대로 느낄 날을 고대하고 있다. 고등어회와 거북손의 기막힌 맛을 상상하며. <지방부장>
우난순 수정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금강 세종보' 철거 VS 가동'...시민 여론 향배는 어디로
  2. 한화 이글스 반격 시작했다…한국시리즈 3차전 LG 트윈스에 7-3 승리
  3. 신탄진역 '아가씨' 성상품화 거리 대응 시민들 31일 집결
  4. [썰] 전문학, 내년 지선서 감산 예외 '특례' 적용?
  5. 국민의힘 대전시당 신임 위원장에 이은권 선출
  1. 충남대, 제2회 'CNU 혁신포럼’…서울대 10개 만들기 등 정책 대응 논의
  2. '수능약?' 전문의약품을 불안해소 오남용 여전…"호흡발작과 천식까지 부작용"
  3. [세상읽기] 변화의 계절, 대전형 라이즈의 내일을 상상하며
  4. "사업비 교부 늦어 과제 수행 지연…" 라이즈 수행 대학 예산불용 우려
  5. 한남대, 조원휘 대전시의장 초청 ‘공공리더십 특강’

헤드라인 뉴스


`빛 바랜 와이스의 완벽 투구`…한화, 한국시리즈 4차전 LG에 역전패

'빛 바랜 와이스의 완벽 투구'…한화, 한국시리즈 4차전 LG에 역전패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가 30일 LG 트윈스와의 한국시리즈(KS, 7판 4선승제) 4차전을 4-7로 패배하며 벼랑 끝에 몰렸다. LG는 이날 경기 결과로 시리즈 전적을 3승으로 만들며 우승까지 한 걸음만을 남겼다. 한화는 30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2025 프로야구 KBO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 4차전에서 LG를 맞아 4-7로 패배했다. 먼저 득점을 낸 건 한화다. 4회 말 무사 1, 2루 상황에서 타석에 오른 황영묵은 번트로 1사 2, 3루 기회를 만들었고, 다음 순서로 나선 하주석이 적시타를 쳐내며 선취점을 만들었다. 한화..

대전시, 상장사 성장 지원 본격화… 전 주기 지원체계 가동
대전시, 상장사 성장 지원 본격화… 전 주기 지원체계 가동

'일류경제도시 대전'이 상장기업 육성에 속도를 내며 명실상부한 비수도권 상장 허브 도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전시는 지역 기업의 상장(IPO) 준비부터 사후관리까지 전 주기 지원체계를 구축해 기업 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강화할 계획이다. 대전시는 2022년 48개이던 상장기업이 2025년 66개로 늘어나며 전국 광역시 중 세 번째로 많은 상장사를 보유하고 있다. 시는 이러한 성장세가 일시적 현상에 그치지 않도록 체계적인 지원과 시민 인식 제고를 병행해 '상장 100개 시대'를 앞당긴다는 목표다. 2025년 '대전기업상장지원센터 운영..

한화 김경문 감독 "김서현, 감독 못지 않은 스트레스 받았을 것"
한화 김경문 감독 "김서현, 감독 못지 않은 스트레스 받았을 것"

"감독 못지 않게 스트레스를 받았을 친구다. 감독이 포옹해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김경문 한화 이글스 감독은 30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리는 '2025 신한 SOL뱅크 KBO 포스트시즌 한국시리즈(KS·7전 4선승제)' LG 트윈스와의 4차전을 앞두고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전날 구원 투수로 활약을 펼친 김서현 선수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어 김 감독은 "심우준이 9번에 다시 들어왔다. 어제 큰 힘이 되는 안타를 친 만큼, 오늘도 기운을 이어주길 바란다"라며 전날 경기 MVP를 따낸 심우준 선수를 다시 기용하게 된 배경을..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겨울철 대비 제설작업 ‘이상무’ 겨울철 대비 제설작업 ‘이상무’

  • 중장년 채용박람회 구직 열기 ‘후끈’ 중장년 채용박람회 구직 열기 ‘후끈’

  •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한화 팬들의 응원 메시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한화 팬들의 응원 메시지

  • 취약계층의 겨울을 위한 연탄배달 취약계층의 겨울을 위한 연탄배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