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소리] 물의 길을 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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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물의 길을 새기며

김태열 수필가

  • 승인 2026-06-08 17:19
  • 신문게재 2026-06-09 19면
  • 방원기 기자방원기 기자
풍경소리 김태열 수필가
김태열 수필가.
우기가 시작되는 유월이다. 우리나라는 6월에서 9월까지 비가 집중되는 열악한 자연환경에서도 수자원 시설의 건설과 운영관리에 힘써 물관리에 성공하였다. 이제 하천이나 저수지 주변은 누구나 즐기는 친수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어 물의 혜택을 풍족하게 누린다.

두어 달 전 '한국 물관리 오디세이: 60년의 여정'이란 책을 공저자로 참여한 친구로부터 받았다.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부터 시작된 수자원 시설(댐, 하천, 상수도, 하수도, 해수 담수화)의 현황을 일목요연하게 한글과 영어로 기술하고 있다. 그중 낯익은 사업들에 참여해본 필자로서는 감회가 새로웠다. 기술된 내용 중 단 한 줄, 한 단어에도 숱한 곡절이 숨겨져 있고, 심지어 기록되지 않는 행간에도 엄청난 땀방울이 깃들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실제 그 한 줄에 주렁주렁 매달린 이름 없는 사람들의 노고가 있었기에 K-수자원의 경험과 기술은 지금 세계로 수출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구에서 가장 신비스러운 물질인 물은 생물체와 인간이 삶을 유지하는 데 있어 절대 필요하다. 그러기에 로마가 건설한 상·하수도의 유적에서 보듯, 물관리는 문명의 역사와 함께한다. '서경'과 '맹자'에 순임금 시절의 치수 이야기가 나온다. 우(禹)는 아버지 곤(鯤)이 치수사업의 실패로 죽임을 당한 후 대신 그 업무를 맡는다. 그는 제방을 쌓아 물을 막는 아버지의 방식에서 벗어나 물은 아래로 흐른다는 원리를 따른다. 물길을 유도하고 하천을 준설하며 아홉 개의 강줄기를 서로 소통시켜 바다로 물길을 낸다. 그는 8년간이나 밖에서 치수를 담당하면서 세 번이나 자기 집 앞을 지나가면서도 들어가지 않았다고 한다. 순임금은 우의 공로를 인정하여 왕위를 선양한다. 이처럼 치수는 제왕의 역사였다.

우리나라도 농업용 저수지를 삼국시대부터 축조했지만 홍수를 다스리지 못해 자주 기근에 시달렸다. 계절별로 강우 편차가 극심한 수자원 환경에서는 물의 또 다른 덕을 찾아야 했다. 곤이 했던 방법으로 댐을 쌓기도 하고 우의 방식으로 물길을 돌리기도 했다. 그리고 수계 내 수자원 시설들을 시스템으로 연계하여 물을 빨리 빼거나 지연시키는 방법으로 물을 확보하였다. 이렇게 해서 상수도 보급률은 99.4%에 이르고 오염수는 공공하수처리시설(보급률은 95.4%)을 통해 내보냄으로써 생활·공업·농업·친환경용수로 물을 고도로 이용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대전을 포함한 충청권은 물로 축복받았다. 대청댐에서 깨끗한 물을 넉넉하게 공급받으면서도 홍수피해는 거의 없다. 대청호 500리 둘레길은 지역의 명소가 되었다. 대전 시내를 흐르는 하천들은 친수공간으로 조성되어 자전거 타기나 파크골프, 걷기에 최적화되어 있다. 유성천이 반석천과 합류하기 직전 둔치에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좋아한 물의 덕 중에서 '겸손은 물과 같이 무르고 약한 것 같으나 모든 것을 이기는 힘을 가졌다···.'라고 쓴 글을 새긴 돌이 있다. 자전거를 타고 가다 그 돌을 만나면 잠시 음미해보곤 한다.

물을 다스리는 데는 공학이 필요하다. 하지만 물을 인문학적 관점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려는 사람도 있었다. 노자와 공자, 맹자 같은 분이다. 노자는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않는다'는 덕을, 공자는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주야로 쉬지 않고 흘러간다'는 자강불식(自强不息)의 태도를, 맹자는 '물이 웅덩이를 만나면 기다렸다가 흐른다'는 인내와 정진의 덕을 말하였다. 그들이 살았던 중국 춘추전국시대만큼 혼란한 지금도 물이 주는 가르침은 여전히 유효할 것이다.

AI 시대다. AI가 발전해 일자리를 대체할 수 있어도 물을 그렇게 할 수 없다. 물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지속 가능한 문명은 가능하지 않다. 강물은 끊임없이 흐르지만 한 순간도 같은 물은 없다. 우리 일상도 매일 반복되는 흐름 같지만 늘 처음인 듯 선물 같은 오늘(present)이다. 물의 길을 세우기 위한 무수한 사람들의 노력 덕분에 우리는 물의 자유를 최대한 누리고 있다. /김태열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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