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디세이] 학교의 선택: AI 검열이냐, AI 지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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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디세이] 학교의 선택: AI 검열이냐, AI 지휘냐

김정태 배재대학교 글로벌융합학부 교수

  • 승인 2026-07-27 15:08
  • 신문게재 2026-07-28 18면
  • 김성현 기자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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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태 배재대학교 글로벌융합학부 교수
지난 24일 이재명 대통령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과 함께 '샌프란시스코 AI 선언'을 발표했다. 세계 1위 HBM 경쟁력(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합산 점유율 79%)을 바탕으로 한국을 대체 불가한 글로벌 AI 공급망 핵심국가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이다. 그러나 화려한 선언 이면에는 냉정한 질문이 남는다. 반도체 칩을 가장 잘 만드는 나라가, 그 위에서 돌아갈 AI를 설계하고 질문을 던질 인재는 충분히 길러내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지난해 치러진 수능 국어 시험에서 이미 드러났다. 칸트의 인격 동일성을 다룬 지문을 두고, 정작 이를 연구한 대학교수조차 "이해하는 데만 20분이 걸렸다"고 토로했다.

높은 정답률은 이해력이 아니라 학원식 훈련의 결과일 뿐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1~2등급을 가르는 변별력 확보라는 명목으로 지문은 해마다 어려워지고, 사교육비는 30조 원에 육박한다.

반면 EBS 다큐프라임 '대학의 변신'이 보여주는 세계 명문대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하버드대는 일방적 강의 대신 학생이 질문을 던지는 수업으로 강의실을 바꿨고, 스탠퍼드대는 AI 리터러시 교육을 고등학생까지 확장해 103개 학교에서 AI 윤리를 필수로 가르친다. AI 시대에 필요한 것은 정답을 찾는 능력이 아니라 질문을 설계하는 역량이라는 메시지다.

미국 대학들은 부정행위 적발을 위해 AI 탐지 도구에 막대한 자본을 투입했지만, 진화하는 AI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졌다. 결국 '학생이 누구의 도움 없이 독립적으로 결과물을 생성한다'는 평가 체제의 오랜 전제를 내려놓고, 방향을 정반대로 틀었다. 와튼스쿨은 과제에서 AI 사용을 오히려 의무화하고 프롬프트 설계와 오류 검증 능력을 평가 대상으로 삼았다는 보도가 나왔고, 윌리엄 앤 메리 대학은 교수진과 학생을 공동 설계자로 삼는 프로젝트를 통해 커리큘럼 자체를 다시 짰다. AI를 효과적으로 쓸 줄 모르는 것 자체가 무능이라는 발상의 전환이다.

이제는 AI를 검열할 것이 아니라 얼마나 잘 지휘하느냐가 중요한 역량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 대학의 대응은 정반대다. 지난 학기 서울대 한 교양과목 온라인 시험에서 학생들이 AI 사용 금지 지침을 어긴 사실이 드러나 성적이 전면 취소됐고, 연세대·고려대에서도 유사한 부정행위가 잇달아 적발됐다.

대학들은 종이시험과 대면 구술시험으로 되돌리는 임시방편에 매달릴 뿐, 암기한 지식을 재현하는 평가 방식 자체가 시대와 맞지 않는다는 근본 질문은 외면한다. AI를 지휘하기는커녕 검열하기에도 급급한 셈이다.

고등교육과 성인학습에 대한 투자 격차도 큰 문제다. 한국 청년층의 고등교육 이수율은 70.6%로 OECD 1위지만, GDP 대비 고등교육 정부 재원 비율은 0.6%로 OECD 평균 0.9%에 못 미친다. 학위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받으면서도 그 질을 뒷받침할 재원은 부족한 셈이다.

성인 평생학습 참여율은 2025년 33.7%로 3년 연속 상승했지만,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의 41.7%에는 여전히 못 미친다. 올해 OECD 한국경제보고서는 초·중등교육에는 평균을 웃도는 재원이 투입되는 반면 고등교육과 성인학습에 대한 투자는 현저히 부족하다며, 이런 편중된 재정 구조를 핵심 개선 과제로 꼽았다. 학령인구가 급격히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재정 배분의 무게중심은 좀처럼 옮겨가지 않고 있다.

AI 활용이 필수 역량이 된 지금 필요한 전환은 네 가지다. 첫째, 중등 내신과 수능 시험을 지문의 난이도가 아니라 이해력과 사고력을 평가하는 방향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둘째, 대학 평가를 암기 재현형에서 구술, 토론, 프로젝트형으로 전환해 AI 활용 능력 자체를 정당한 평가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 셋째, 학령인구 감소에 맞춰 재정의 축을 초·중등 중심에서 고등교육과 평생학습으로 옮겨야 한다. 넷째, AI 리터러시를 초등학교부터 성인 재교육 과정까지 전 교육 단계에 통합해야 한다.

'AI 3강' 선언이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반도체 공장 증설만이 아니라 교실과 시험장부터 바뀌어야 한다. AI는 정답을 암기하는 사람을 대체하지만, 좋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대체하지 못한다. 세계 최고의 대학들이 이미 깨달은 이 진실을, 우리는 시험지 위에서조차 외면하고 있다. /김정태 배재대학교 글로벌융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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