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에서 신화 읽기] 제22장-유천동 산신제와 호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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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신화 읽기] 제22장-유천동 산신제와 호랑이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 승인 2026-08-05 10:08
  • 수정 2026-08-05 23:27
  • 신문게재 2026-08-06 8면
  • 김의화 기자김의화 기자

대전 유천동 산신제는 약 450년 동안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며 이어져 온 전통 의례로, 보문산의 정기를 이어받은 산신당에서 매년 음력 동짓달에 거행됩니다. 이 의례는 과거 호환을 막으려는 바람에서 시작되어 호랑이를 신성한 영물로 여기는 우리 민족의 산신 신앙과 호랑이 숭배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급격한 도시화 속에서도 시장 골목의 작은 산신당은 마을 공동체의 소망을 잇는 신성한 공간으로서 그 역사적 가치와 전통을 묵묵히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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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천동산신제를 모시는 산신각과 보문산에서 옮겨왔다는 소나무 사진=한소민 소장
대전시 중구 유천동 시장 골목에는 작은 기와집 하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해마다 음력 동짓달이면 보문산 산신에게 제를 올리는 신성한 공간이지요. 지금은 주택과 상가로 둘러싸여 있지만, 예전 이곳은 넓은 논밭 가운데 솟아있는 둔덕이었습니다. 주민들은 이 둔덕이 보문산의 정기가 이어지는 영험한 자리라 여기며 산신당을 세웠고 해마다 제를 올리며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했지요.

450여 년을 이어왔다고 전해지는 유천동 산신제는 오랜 역사만큼이나 여러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호랑이의 피해가 많았기에 호환을 막아 달라는 바람에서 시작되었다고도 하고, 당 아래 샘은 한여름에도 물이 얼음처럼 차가워 주변에는 벼 대신 갈대만 무성했다는데, 제사를 앞두고는 이 샘물을 길어 제수를 마련하고 몸을 정갈히 했다지요. 또, 당집 앞의 노송은 보문산 산신을 모시기 위해 보문산에서 옮겨 심은 것이라고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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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천동 산신제를 모시는 모습 사진=한소민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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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천동 산신각에 모셔진 산신과 호랑이 사진=한소민 소장
전 국토의 70%가 산지인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산을 숭배해왔습니다. 삼국시대부터 나라에서는 이름난 산마다 산신제를 올렸고, 조선에서는 오악에 제사를 올리는 한편 묘향산(상악)과 계룡산(중악), 지리산(하악)을 삼악(三嶽)으로 정해 국가에서 산신제를 봉행했지요. 하지만 지금은 삼악의 제단 가운데 신원사에 자리한 계룡산 중악단만 남아 그 전통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후 국가가 주관하던 산신제는 점차 마을 신앙으로 이어져 고을마다 산제당이 세워졌지요. 대전의 진산인 보문산 역시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신앙 대상이 되어 유천동 산신제와 무수동 산신제 같은 마을 제의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산신당 안에는 백발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앉아 있는 산신도가 모셔져 있는데 그 곁에는 커다란 호랑이 한 마리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호랑이는 단순한 맹수가 아니었습니다.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두려운 존재였지만, 동시에 산의 질서를 지키는 신령한 동물이기도 했지요. 호랑이를 신성하게 여기는 믿음은 산악 숭배와 만나 산신 신앙으로 발전해갔습니다. 그렇기에 호랑이는 단순한 맹수가 아니라 산군(山君)이나 산령(山靈), 산신령(山神靈) 등으로 불리며 산신을 돕는 존재이자, 때로는 산신을 상징하는 신성한 존재가 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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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 신원사 중악당 계룡산 산신과 호랑이 사진=한소민 소장
우리의 옛이야기 속에서도 호랑이는 사람을 해치는 맹수로만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효자를 등에 태워 성묘를 돕고, 은혜를 갚기 위해 명당을 알려 주며, 의로운 사람을 지켜 주는 영물로 그려집니다. 박지원의 『호질』에서는 위선적인 인간을 꾸짖는 심판자로 등장하기도 하지요. 두렵지만 미워할 수 없는 존재, 무섭지만 존경받는 존재가 바로 우리 조상들이 바라본 호랑이였습니다.

오늘날 유천동에서는 더 이상 호랑이를 만날 수 없습니다. 보문산에서 이어지던 둔덕도 도시 개발로 옛 모습을 잃었지요. 하지만 시장 골목의 작은 산신당은 450년 동안 이어져 온 마을 사람들의 오랜 소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삶 속 아주 가까이에서 말이지요.

(다음 시간에는 유천동 거리제와 선돌에 대해 알아봅니다.)

한소민/배재대 강사, 지역문화스토리텔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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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산신과 호랑이를 산왕대신과 어리범 중악이라고 이름 지은 캐릭터 모습 사진=한소민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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