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전 타오른 자주독립 횃불... 그 빛을 반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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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90주년]승리의 역사를 가다 1. 역사투쟁의 승리자 임정

  • 승인 2009-11-26 10:07
  • 신문게재 2009-03-06 13면
  • 상하이ㆍ총칭=맹창호 기자상하이ㆍ총칭=맹창호 기자
대한민국 헌법 전문은‘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하고…’라는 명문으로 뿌리를 임시정부로 규정하고 있다. 올해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90주년. 본보는 17회 연속보도 ‘임정 승리의 역사를 가다’특별취재를 통해 임시정부 27년 역사의 정통성을 재확인하고 항일유적의 관리상태를 점검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역사투쟁의 승리자 임정
2. 임시정부 왜 상하이였나
3. 일제의 오만 응징한 임정
4. 본격적인 군사조직 양성
5. 1만5000리 역사투쟁(상)
6. 1만5000리 역사투쟁(중)
7. 1만5000리 역사투쟁(하)
8. 대륙에 묻힌 영혼
9. 임정을 도운 외국인들
10. 우리의 힘으로 광복을
11. 좌우연합정부의 수립
12. 왜놈상관을 쏴죽이고 조선의용대로 오시요
13. 임시정부가 만들려한 대한민국
14. 완전한 승리 통일 대한민국의 법통
15. 김구와 임시정부
16. 토론, 임시정부 정부인가 독립운동단체인가
17. 임정취재를 마치고

▲ 1920년 2월 12일 출간된 박은식의‘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실린 최초의 대한민국청사로 추정되는 상하이 바우창루(寶昌路. 이후 하비로호 바뀜) 2층 서양식 독립주택. 하지만 이 건물을 최초의 임정청사로 단정짓기에는 아직도 논란이 있으며 임정수립을 위한 임시사무소였다는 주장도 나와있다.
▲ 1920년 2월 12일 출간된 박은식의‘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실린 최초의 대한민국청사로 추정되는 상하이 바우창루(寶昌路. 이후 하비로호 바뀜) 2층 서양식 독립주택. 하지만 이 건물을 최초의 임정청사로 단정짓기에는 아직도 논란이 있으며 임정수립을 위한 임시사무소였다는 주장도 나와있다.

임시정부수립 90주년을 맞아 항일독립운동을 취재하기 위해 중국행 비행기에 오른 지난 1월 3일. 신문기사에 실린 빚바란 사진 한장이 눈길을 사로 잡았다. 38선을 배경으로 평생 독립운동에 몸바친 노 혁명가는 어떻게든 남북분단을 막아보고자 평양으로 향하며 역사에 시위를 하고 있었다. 그에게 위도로서 38선은 영원히 존재하지만 조국을 양단하는 외국 군대들의 경계선으로 38선은 일각도 존속시킬 수 없었다.

그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민주와 통일, 완전한 자주독립의 조국을 소원했다. 임시정부를 지키는 문지기임을 자임하며 망명생활 27년의 수많은 굴절이 그를 괴롭혔지만 분단조국은 도저히 받아들수 없는 일이었다. 그의 말한마디로 폭탄을 가슴에 품고 적들의 심장으로 나아갔던 수많은 동지들에게 분단을 막을 수 없었다는 말은 핑계조차 될 수 없었을 것이다. 백범 김구에게는 마지막 독립운동이었다.

지금으로부터 꼭 90년 전. 민족의 독립을 요구하는 3.1운동은 삼천리를 피로 물들였다. 한국인이 있는 곳이라면 ‘독립만세’의 함성이 중국, 미국, 러시아에서 전 세계로 울려 퍼졌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 맨몸으로 거부하는 평화운동만으로는 도저히 일제의 강점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게 해줬다. 그들의 비분강개는 바위에 던져지는 계란과도 같았기 때문이다. 외국으로 망명의 길을 나선 애국지사들은 민중에 염원을 담아 우리를 대표할 정부를 만든다.

▲ 임시정부의 청사는 1919년 수립 이후 상하이를 떠나는 1932년까지 최소 12차례 이상 옮겨 다녔다. 임시정부는 수립과 함께 간판과 태극기를 걸고 공개적 활동을 펼쳤지만 1919년 10월 프랑스당국의 폐쇄조치로 잠복시기를 거쳐 1926년 현재의 사진속 마탕루(馬當路)청사로 옮기게 된다.
▲ 임시정부의 청사는 1919년 수립 이후 상하이를 떠나는 1932년까지 최소 12차례 이상 옮겨 다녔다. 임시정부는 수립과 함께 간판과 태극기를 걸고 공개적 활동을 펼쳤지만 1919년 10월 프랑스당국의 폐쇄조치로 잠복시기를 거쳐 1926년 현재의 사진속 마탕루(馬當路)청사로 옮기게 된다.

▲최초의 민주공화제 정부 수립

서울과 러시아, 만주에서 파견된 독립운동가 대표 29명은 1919년4월10일 오후 10시 프랑스령 조계지에서 모인다. 이들은 천안출신의 이동녕선생을 의장에 손정도를 부의장으로 제1차 회의에 들어가 이승만을 국무총리로 하는 임시정부 수립을 결정한다.

국호는 대한민국으로 정했다. 군주제를 버리고 주권재민을 선언한 것. 임시헌장 제1조는‘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으로 정했다. 우리역사에서 최초의 민주공화제 정부가 수립됐다. 이는 3.1독립운동으로 이땅의 민중이 새로운 국가와 정부조직체를 수립하는 요구를 반영한 결과다. 이후 9월에 대한민국 임시헌법 등 5차례에 걸쳐 개정됐지만 이념과 정신에 대한 일부의 수정만 있었을뿐 1948년 제헌헌법을 거쳐서 현재의 헌법으로 이어지고 있다. 우리 헌법에사도 대한민국은‘대한민국을 계승 제건’또는‘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하였음을 밝히고 있다.

정부뿐 아니라 대의기관인 의정원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에 커다란 기초를 남겼다. 이렇듯 수립에서부터 1945년 해방까지 임시정부는 정부로서 명실상부한 항일독립운동을 주도했다. 1940년에는 광복군을 결성해 일제에 선전포고를 했다. 국제회의에 대표부도 파견했다. 최초의 민주 공화제 정부로서 임시정부는 일제 강점기 우리민족에게‘희망의 등불’이었다.

▲민족역사의 단절을 막아내

1910년은 우리민족의 역사에서 외세의 총칼 앞에 무릎 꿇은 치욕적이고 암울했던 해였다. 이후 8년 여. 우리민족은 일제의 무단통치 아래 식민지 노예로 전락했다. 완전한 독립을 갈망하는 우리의 역사는 3.1독립운동을 통해 부활했고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

임시정부는 국제법상 통치권이 미치는 국토와 국민은 없었다. 통치권을 행사할 대상이 없었기에 일반정부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이미 망한 대한제국과는 시간적 연속성도, 주체세력도, 국가이념도 다르다. 때문에 망명정부도 아니었다. 하지만 3.1독립운동에 의해 수립돼 전 민족의 의지와 이념적 기반 위에 설립됐기에 국제적으로는 주권국민의 대표기관으로, 대내적으로는 독립운동의 통합기구로서 구실을 담당할 수 있었다.

임시정부는 무엇보다 일제 35년의 역사적 단절을 거부하고 민족사의 지속을 가능케 해줬다. 1910년 일제에게 강점을 당한 우리에게 정통성을 이어나가 국권회복을 이뤘다. 이것은 임시정부가 왜 우리역사에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인지를 말해준다. 끊어진 민족의 역사는 대한민국임시정부로 1919년 다시 이어졌고 우리에게 역사공백은 1910년8월25일부터 1919년4월10일까지로 줄었다.

▲ (왼쪽사진)상하이 프랑스령 조계지 현재모습.(오른쪽사진)대한민국 임시헌장.
▲ (왼쪽사진)상하이 프랑스령 조계지 현재모습.(오른쪽사진)대한민국 임시헌장.

▲역사투쟁의 승리를 이뤄내

임시정부는 1919년 수립된 이래 단 한번도 스스로 간판을 내린 적이 없었다. 국가를 세웠고 정부조직을 구심으로 활동했다. 어느 때는 이름뿐인 초라한 정부였지만 애국지사들은 이를 지켜냈고 그 견딤 덕분에 우리는 조국광복을 맞을 수 있었다. 27년의 기나긴 역사투쟁에서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는 수천배 수만배 힘이 강한 일제에 대한 승리다.

오늘날 대한민국을 있게 한 핵심은 바로 대한민국임시정부다. 일제의 감시아래 13년간의 상하이(上海)생활을 접은 1932년 부터 1940년 중경에 안착하기까지 임시정부는 공식적으로는 7개 실제로는 10여개 지역으로 피난해야 했다. 불과 2명의 국무위원이 임시정부를 지키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승리자로 광복을 맞았다.

임시정부는 러시아령 블라디보스토크의 대한국민회의(대통령 손병희), 중국 상하이(上海)의 대한민국임시정부(국무총리 이승만), 13도 대표의 한성정부(집정관 이승만) 등 3부를 통합한 유일한 단독정부였고 1940년 좌우합작을 통해 통합정부와 비록 남의 나라에서지만 군사체계까지 갖췄다. 최후의 1인까지 최후의 1각까지 일제에 대항했다.

이렇게 자주독립국가의 희망은 커갔지만 일제의 패망과 함께 1948년 8월 15일 남쪽에는 대한민국이, 같은해 9월9일 북쪽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2개의 나라로 나눠졌다. 백범 김구의 예견한 반드시 막으려 했던 민족상잔의 비극까지 격어야했다.

또 다시 수십년이 지나 맞는 임시정부수립 90주년. 그 법통을 계승한 대한민국은 민족의 대화합을 이뤄야할 숙명을 안고 있다. 올해로 서거 60년이 되는 김구선생은 임시정부의 법통이 대한민국에서 통일한국으로 이어지는 그날 지하에서나마 편히 눈을 감을수 있을 것 같다. /상하이ㆍ총칭=맹창호 기자

※ 본 시리즈는 김구재단(이사장 김호연)의 지원으로 이뤄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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