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에세이] 가습기 살균제와 유연 휘발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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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에세이] 가습기 살균제와 유연 휘발유

  • 승인 2016-05-16 14:04
  • 신문게재 2016-05-17 22면
  • 조성재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정책협력부장조성재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정책협력부장
▲ 조성재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정책협력부장
▲ 조성재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정책협력부장
가습기는 살균제가 첨가된 물을 방안에 뿜어댔다. 초음파로 잘게 쪼개진 물방울은 공기와 함께 사람들의 폐 속 깊숙이 침투했다. 물방울 속에 녹아 있던 PHMG, PGH 등 이름도 생소한 살균 성분은 폐 세포마저 파괴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에 지난 4일까지 신고된 것만 사망 293명 포함 피해자가 1500명이 넘는다. 800만이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했다 하니 '나도 모르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또 얼마나 될지 어림잡기 힘들다. 이것이 21세기 한국에서 일어난 어처구니없는 비극이다. 아이들에게 좋은 것인 줄 알고 살균제를 뿜어 댔으니 너무나 터무니없고, 그런 상황을 제어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유사한 사건이 한 세기 전 서구에서 있었다. 바로 20세기 최악의 발명품이라는 유연 휘발유 사건이다. 1921년 미국의 자동차회사 제너럴모터스(GM)에 근무하던 미즐리는 에틸납(TEL)이 자동차 엔진의 불안정한 연소 현상인 노킹을 방지한다는 것을 알아냈다. GM은 특허를 출원하고 정유회사인 스탠다드오일과 함께 1923년 에틸이라는 회사를 합작 설립했다. 이후 60여년 이상 모든 자동차는 납 성분이 들어있는 유연 휘발유를 사용했다. 사람들의 혈중 납 농도가 수백 배 증가했다. 1988년에 미국 의회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1927년부터 1987년까지 60년 동안 약 6800만 어린이들이 납에 노출돼 IQ 저하, 학습 능력 이상, 행동 이상 등을 겪었고, 범죄는 크게 늘었으며, 매년 5000명이 심근경색 등 납중독과 관련된 질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20여 년 전인 1990년대에 자동차용 유연휘발유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법으로 금지되었지만 아직도 지구 공기 중에는 유연휘발유를 사용하기 전에 비해 수백 배 많은 납이 떠다니고 있다.

위의 두 사건은 모두 돈이라면 사람의 목숨보다도 우선시하는 기업의 비윤리성에서 일차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GM과 스탠다드오일은 1900년대 초반에 엔진 노킹을 방지할 수 있는 첨가제로 독성도 없으며 값이 싼 다른 것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값싼 첨가제는 회사에 이익을 주지 않기 때문에 특허로 독점 공급이 가능한 TEL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도 마찬가지다. 물에 타서 초음파로 잘게 쪼개 공기 중에 뿜어 대는 것이라면 당연히 흡입독성을 사전에 철저하게 조사했어야 했다. 피부 접촉과 경구 독성만을 조사하고서 문제없다고 선전하며 판 것이다. 돈을 앞세워 아이들, 임산부들을 비롯해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살인기업들이 아니겠는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들을 대신해 감독해야 할 정부의 잘못된 대처에 또 다른 원인이 있다. 미국 공중보건국(PHS)은 안전성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1926년 '유연휘발유를 금지할 확실한 근거가 없다'고 발표해 결과적으로 오랫동안 사용될 계기를 마련해 줬다. 우리 정부도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을 검증하지 못하였으며, 문제없다고 대대적인 광고를 하면서 생산 판매하는 기업들을 막지 못했다.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계기로 정부에 대한 신뢰는 또다시 땅에 떨어졌다. 생활용품이든 식품이든 위험요소로부터 정부가 안전하게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을 어떻게 가질 수 있겠는가.

이들 사건을 해결할 계기를 마련한 것은 전문적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불의에 타협하지 않은 개인들이다. 미국의 패터슨은 1960년대 중반 그린란드 얼음층의 납 농도를 분석하고 유연 휘발유를 쓰기 시작한 때부터 지구상에 납 농도가 크게 증가하였음을 논문으로 보고하고 유연휘발유 금지 운동을 시작했다. 패터슨은 에틸납 제조 대기업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금지운동을 끈질기게 벌였다고 한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를 처음 제기한 것은 아산병원의 홍수종 교수로 알려져 있다. 2006년부터 매년 봄 마다 같은 증세로 병원을 찾아와 상당수가 사망에 이르는 기이한 폐질환의 원인을 포기하지 않고 추적해 2011년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이라는 것으로 알아냈다. 전문지식을 가지고 비윤리적인 기업의 편에 서서 돈을 탐내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패터슨과 홍수종은 그러지 않았다. 패터슨과 홍수종과 같은 사람이 많아지는 것이야말로 부끄러운 사회를 벗어나는 길이 아니겠는가? 이들 이름을 기억하자.

조성재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정책협력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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