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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학당 9기는 4월18일 해남 대흥사를 현장답사했다. 사진-다산학당 제공 |
해남 대흥사는 세계문화유산지정 사찰이다.
김갑동 다산학당 학장은 “초의 선사는 무안 출신으로 대흥사의 13대 종사의 한사람인 대선사”라며 “초의 선사는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던 우리나라 다도를 중흥시켜 다성(차의 성인)으로 불린다”고 소개했다. 김 학장은 이어 “초의선사는 불문에 몸담고 있었지만 그 테두리에 그치지 않고 유학, 도교 등 당대의 여러 지식을 섭렵하며 다산 정약용이나 추사 김정희, 자하 신위 같은 학자나 사대부들과 폭넓게 사귀었고 범폐와 서예, 시, 문장에도 능했다”고 설명했다. 김 학장은 “초의 선사는 차와 선을 하나로 보아 ‘동다송’에서 ‘다선일미’라고 표현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또 “그가 지은 ‘동다송’은 동다, 즉 우리나라 차에 대한 예찬을 담고 있는 것으로, 차의 효능과 산지에 따른 품질, 만들고 마시는 법 등을 적은 우리나라 최초의 차에 관한 책”이라고 설명했다.
김 학장은 “초의 선사는 차와 선이 한가지라는 다선일미 사상을 바탕으로 다도의 이론을 정리하고 차를 만들어 널리 폄으로써 전래의 차 문화를 중흥시켰다”며 “24세 연상이어서 스승으로 모셨던 정약용과 동갑으로 승속과 유불의 경계를 넘어 누구보다도 친밀한 정을 나누었던 김정희와의 사귐에서도 학문과 예술, 차의 향기가 함께 했음은 물론”이라고 전했다. 또 “초의 선사는 귀양살이하는 김정희를 만나러 제주도를 다녀오기도 했을 만큼 서로 터놓고 도탑게 지냈다”며 “김정희가 말년에 초의 선사가 보낸 차를 받고 써 보낸 걸작 ‘명선’이 대흥사에 전해온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초의 선사는 중년 이후 큰 절의 번거로움을 피해 일지암을 짓고 40여 년간 은거하며 차와 더불어 지관에 전념하다가 81세로 입적했다”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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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지킴이인 윤동환 전 강진 군수가 다산초당과 유교와 불교의 만남이 이루어진 천일각과 백련사에 대해 해설하고 있다. 사진=한성일 기자 |
이후 강진군 도암면 다산초당길로 이동해 다산지킴이인 윤동환 전 강진 군수로부터 다산초당과 유교와 불교의 만남이 이루어진 천일각과 백련사에 대한 해설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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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학당 9기는 4월18일 강진 다산유배지 다산초당을 현장답사했다. 사진=다산학당 제공 |
다산초당과 천일각, 백련사를 거쳐 사의재에 들러 김갑동 다산학당 학장과 이준건 도시공감연구소 부소장으로부터 말과 용모, 마음, 생각에 있어서 마땅히 해야 될 일이 생각은 맑고, 깨끗하게, 말은 적게, 행동은 신중하게, 용모는 단정하게 하는 것이 사의재에 담긴 뜻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다산학당 1기때부터 9기에 이르기까지 수강생들을 인솔해 15회 이상 다산초당을 방문했다는 이준건 도시공감연구소 부소장은 “다산초당은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에 위치한 다산 정약용과 관련된 문화재”라며 “1963년에 다산초당을 포함한 관련 유적 일대가 사적 제107호로 지정되었다”고 안내했다. 이 부소장은 “2025년에 다산초당과 백련사, 그리고 그 사이를 잇는 동백숲과 만덕산의 풍광 등이 경관적 가치를 인정받아 대한민국의 명승으로 지정되었다”고 소개했다. 특히 “다산초당은 다산 정약용이 1801년 신유박해로 인해 강진으로 귀양을 와서 18년 중 10년 동안 생활하던 집”이라며 “이곳에서 정약용은 유배가 끝날 때까지 생활하며 학문에 몰두한 끝에 목민심서를 비롯한 숱한 저서들을 남겼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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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학당 9기가 다산유배지 다산초당에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사진=다산학당 제공 |
한성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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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일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