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청평 아침고요수목원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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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청평 아침고요수목원의 추억

멀리서 보면 그림같은 꽃, 허리굽혀 향기 맡으면 하나 하나 자연의 우주 그윽하게 어우러진 천년향과 커피향, 멋스런 서양식 건물과 운치

  • 승인 2016-05-26 13:55
  • 신문게재 2016-05-27 9면
  • 박새롬 기자박새롬 기자
[주말여행] 청평 아침고요수목원

올해도 더울 예정이라고 뉴스 속 앵커도, 만나는 사람들도 말한다. 아직 5월인데 낮 최고 기온이 30도를 향해 쭉쭉 뻗어 올라간다. 3월부터를 봄으로, 6월부터를 여름이라고 한다면 3개월. 봄과의 시한부 인연이야 알고 있지만 해마다 빨라지는 것 같은 여름이 야속하다. 더 더워지기 전에 봄이 피워낸 꽃 속으로 마지막 '봄부림'을 떠나야 할 때다. 봄나들이 봄꽃축제가 5월 31일까지 열리는 청평 아침고요수목원을 찾았다.

청평터미널은 이른 시간부터 북적였다. 젊은 학생들이 짐이 가득한 가방과 박스를 들고 버스를 기다리고, 배낭과 등산복으로 무장한 중년 여성 일행들이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눈다. 청평터미널에서 춘천이나 쁘띠프랑스 등 다른 곳으로 떠날 수 있는데, 대체로 젊은이들이 춘천행, 중년 여성과 커플들이 아침고요수목원행 버스를 탄다. 여행의 목적지는 여행에서 무엇을 바라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법이어서, MT를 떠나는 학생들은 수목원 대신 강변처럼 너른 공간과 숙소가 잘 갖춰진 곳을 찾아가고 '지금의 우리'를 간직하고픈 연인과 남는 건 사진이라는 걸 잘 아는 가족, 중년의 관광객은 사진 찍기 좋은 수목원을 찾는다. 장소가 가진 특성이 어울릴 사람을 부르고, 모인 사람들은 다시 그 곳의 분위기를 만든다. 과연, 수목원에서는 입구부터 흐드러진 꽃과 울긋불긋 등산복 무리, 꽃무늬 원피스가 눈에 들어왔다.

아침고요수목원은 1996년 삼육대학교 원예학과 한상경 교수가 설계하고 조성했다. 33만㎡의 넓이에 총 4500여종의 식물을 보유하고 매월 꽃에 맞춰 축제를 열고 있다. 꽃이 지는 겨울에는 오색별빛정원전으로 밤을 수놓고, 3월에는 야생화를 주인공으로 삼아 봄을 맞았다.

모여 핀 꽃들은 멀리서 보면 녹색 캔버스에 흩뿌린 물감같아서, 프랑스 화가 쇠라가 그린 점묘화를 닮았다. 점을 하나하나 찍어 묘사한 그림처럼, 자연이 낳아 준 꽃 본래의 색을 사람들이 하나 하나 정성껏 심어 피워낸 풍경이다.

허리를 굽혀 자세히 바라보면 다섯 개, 여덟 개, 제 몸에 맞는 수의 꽃잎을 달고 한 송이로 피었다. 가운데에는 암술대, 수술대, 그 아래엔 씨방을 품고 꽃받침이 무게를 견딘다. 꽃으로 피어나기 위해 스스로 고생하고, 심고 키운 사람들의 땀이 양분이 되어 이렇게 예쁘다. 향기까지 맡아보고 나면 한 송이 한 송이가 작은 우주다.

작은 우주는 친한 것들끼리 모여 은하계처럼 여러 정원을 이뤘다. 소나무, 향나무 같은 자생수종으로 꾸민 분재정원, 초가와 장독대를 둘러싸고 진달래와 채송화가 피어나는 고향집정원, 통일을 염원하는 뜻을 담아 우리나라 지도 모양을 한 하경정원 등 테마에 맞춰 만들어진 여러 정원들이 길 따라 여행객을 맞는다.

잔디가 곱게 깔린 아침광장 주변에서 튤립을 감상하며 걷다보면 저 멀리 새하얀 교회가 눈에 들어온다. 동화책 속 한 장면 같은 풍경에 사람들이 감탄하며 셔터를 누른다. 다른 정원에서도 사진 찍는 사람들을 기다려 줘야 하지만 이곳은 유난히 인파가 많았다. 영국식으로 지은 건물과 여러해살이 식물들이 잘 어우러진 'J의 오두막정원'도 인기다.

바람결에 어디선가 커피향이 났다. '시가 있는 산책로' 오른편에 있는 카페에서 퍼져나오는 그윽함은 그 건너편에 있는 향나무와 잘 어우러진다. 아침고요를 상징한다는 천년향은 원래 안동의 한 마을에 있던 당산목이었으나 마을이 수몰되면서 수목수집가에게 인수된 후, 2000년에 설립자가 인수해 아침고요수목원에 자리잡게 됐다. 천년향이라는 이름은 천연기념물 향나무들과 비교했을 때 나이를 1000살 정도로 추정해서 붙였다고 한다. 구불구불 우아하게 자세를 잡은 짙은 녹색이 이름과 잘 어우러져 기품있게 보인다.

수목원 한 바퀴를 돌아보는 데 2~3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걷는 속도가 비슷한 건지 꽃을 보는 눈이 닮은건지, 수목원에 올 때 같은 버스를 탔던 사람과 또 같은 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향했다. 수목원과 맺은 하루의 만남은 누름꽃 악세사리, 천연비누, 입욕제 등의 기념품으로, 집에서도 느낄 수 있는 더 오랜 인연이 될 수도 있다. 6월에는 아이리스, 7월에는 산수국, 9월에는 들국화 전시회가 꽃처럼 피어날 인연을 기다린다.

▲가는길=대전에서 천안터미널을 거쳐 청평터미널에 도착한 뒤, 30~40분에 한번씩 운행되는 수목원행 버스를 타면 된다.

▲먹거리=수목원 내에 오전 9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하는 한식당 아침고요에 산채비빔밥, 묵무침, 송이덮밥 등의 메뉴가 있다.

글·사진=박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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