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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명희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
우리는 아직 이 변화를 '복지정책'이나 '사회통합프로그램'의 차원에서 다루고 있을 뿐, 국가의 장기 전략 차원에서 정면으로 설계하지는 못하고 있다. 다문화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설계의 문제다. 관용을 말하기 전에, 우리는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지 먼저 결정해야 한다.
국가 문화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은 다문화 정책은 표류할 수밖에 없다. 반대로 정체성을 폐쇄적으로 정의하면 인구·경제·산업 구조 변화에 대응할 수 없다. 이제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어떤 기준 위에서 다양성을 수용할 것인가. 정체성 없는 개방은 공허하고, 개방 없는 정체성은 쇠퇴한다. 4가지 관점에서 보자.
첫째 한국형 정체성은 무엇인가? 오랫동안 한국 사회는 '단일민족'이라는 서사를 공유해 왔다. 그러나 글로벌 이동성과 경제 구조 변화는 혈통 중심 정체성을 현실적으로 유지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인가. 문화 정체성의 중심을 혈연이나 관습이 아니라 헌법적 가치, 즉 민주주의·법치·자유·책임이라는 시민적 기준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한국인'이란 혈통이 아니라 헌법 질서를 공유하는 사람이라는 명확한 원칙이 필요하다.
프랑스는 공화주의 전통 속에서 종교와 문화적 차이를 사적 영역으로 제한하는 강한 동화 모델을 취해왔다. 반면 캐나다는 다문화주의를 공식 정책으로 채택하며 다양한 문화의 공존을 국가 정체성의 일부로 제도화했다. 독일은 한때 '임시 노동력'으로 받아들였던 이주민이 정착하면서 사회 통합의 지연이 어떤 비용을 낳는지 경험했다.
한국은 이들 어느 모델도 그대로 가져올 수 없다. 우리는 인구 규모, 지정학적 위치, 분단 현실, 산업 구조에서 모두 다르다. 따라서 필요한 것은 '한국형 시민 정체성 모델'이다. 이는 다양성을 허용하되, 헌법 질서와 공적 규범에 대한 동의는 분명히 요구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둘째, 다문화 정책을 인권 담론에만 맡겨두면 미래 전략은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 초고령 사회로 급속히 진입하고 있으며, 생산 가능 인구 감소는 산업 경쟁력과 국방, 재정 지속 가능성에 직결된다. 이주민 정책은 단기 노동력 보충이 아니라 인구 구조 재설계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어떤 산업에, 어떤 숙련도를 가진 인력을, 어떤 경로로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국가 차원의 로드맵이 필요하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입'보다 '정착'이다. 언어 교육, 직업 훈련, 시민 교육을 체계화하지 못하면 사회적 분절이 심화된다. 분절된 공동체는 비용을 낳고, 비용은 갈등으로 돌아온다. 통합에 실패한 다문화는 국가 역량을 약화시킨다.
셋째, 미래 전략의 핵심은 교육이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이미 다양한 배경을 가진 아이들이 함께 배우고 있다. 이 아이들에게 한국 사회의 공통 가치와 역사, 법질서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동시에 차이를 존중하는 태도를 어떻게 길러낼 것인가? 국가가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않으면 학교는 혼란에 빠진다. 문화 상대주의와 무제한적 관용은 다른 문제다.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규범은 분명히 해야 한다. 다문화 사회의 성공 여부는 '얼마나 다양하냐'가 아니라 '얼마나 공통 기반을 공유하느냐'에 달려 있다.
넷째, 정체성 없는 개방은 공허하다. 기준 없이 문을 열면 사회적 신뢰는 무너진다. 그러나 개방 없는 정체성은 쇠퇴한다. 인구가 줄고 산업이 위축되는 현실에서 폐쇄적 태도는 국가 활력을 갉아먹는다. 따라서 전략은 분명해야 한다. 헌법 가치에 대한 명확한 동의, 공용어 교육 의무화, 법 질서 위반에 대한 엄정 대응, 동시에 차별 금지와 기회의 평등 보장이 균형 위에서만 다문화는 국가 자산이 된다.
국가의 밝은 발전적미래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미래를 계획하고 설계하는 국가만이 살아남는다. /권명희 숭실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다문화전공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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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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