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톡] 감사 주의보

[공감 톡] 감사 주의보

  • 승인 2016-09-13 12:46
  • 김소영(태민)김소영(태민)


요즘 난 ‘박보검’이라는 사람에게 푹 빠져있다. 그가 잘 생겨서? 연기를 잘해서?

그에게 첫눈에 빠진 건 아니었다. 그를 처음 본 건 ‘응답하라 1988’이라는 케이블 드라마에서였다. 그의 첫인상은 좀 어수룩해 보이고 하얀 귀공자 타입의 남자. 그랬던 그의 진면목을 알게 된 것은 젊은 출연진 네 명이 아프리카를 여행하는 ‘꽃보다 청춘’이라는 프로그램에서였다.

그 프로그램에서 박보검은 감사하다는 말을 반복하는 로봇 같아 보이기까지 했다. 언제나 그의 끝말엔 ‘감사합니다’가 붙어 다녔다. 이래서 감사하고 저래서 감사하고….

도대체 뭐가 그리 감사한 것일까? 사실 ‘꽃보다 청춘’이라는 시리즈는 출연진이 갑자기 납치되어 아무런 준비 없이 시작되는 해외여행이기 때문에 여러모로 환경이 열악하여 고생 아닌 고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참여한 출연자들은 여행과정이 힘들다며 툴툴거리다가 여행을 끝마쳤을 때야 비로소 감사하다는 소감을 털어놓곤 했다. 하지만 박보검이 출현했던 ’아프리카 편‘에선 시작부터 ’감사하다‘라는 말이 쉴 새 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출연하는 첫날부터 비행기를 놓치게 되고, 여러 가지 고생스럽고 불편한 상황에 놓였지만 아무 불평도, 원망도 없이 그저 얼굴엔 웃음을 가득 담고 ‘감사합니다’라는 말만 연신 해댔다. 좀 모자라는 사람일까?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마중 나와 줘서 감사합니다’, ‘물을 줘서 감사합니다.’, ‘팬티를 사줘서 감사합니다.’ 등등 뭐만 해주면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빼놓지 않았다. 나중엔 그 프로에 함께 출연했던 다른 사람들도 장난 반 진심 반 따라하다 보니 자연스레 전염이 되었는지 매사에 ‘감사합니다’가 입에 배는 것을 보았다. 시간이 좀 지났건만 엊그제 본 예능프로에서도 박보검의 ‘감사합니다’는 여전히 계속 되고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이 tv를 보는 내내 아름답게 보였다. 모든 것에 감사할 줄 아는 그 마음이 예뻤던 것이다.

도대체 모든 것에 감사하는 그가 왜 이리 사랑스럽게 보이는 것일까? 왜 모두 그의 ‘감사합니다’라는 말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일까?

박보검을 보면서 생각나는 한 아이가 있었다.

3년 전.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 때, 급식당번이라서 학교에 갔던 적이 있었다. 아이들에게 급식을 나눠주고 있었는데 급식을 받아가는 아이들 틈에 친구들에게 반찬을 퍼서 나눠 주고 있는 한 학생이 눈에 띄었다. 난 궁금해서 그 아이에게 물었다.
“왜 너는 밥 안 먹고 친구들에게 배식을 하고 있니?”

“전 급식시간에 이렇게 알바하고 급식비를 면제 받고 있어요. 미리 경험해두는 거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으며 하는 말이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 학교는 자사고(자립형사립고)라 다른 일반고 보다 급식비가 비쌌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집안 형편은 어렵지만 공부를 잘해서 전액 장학금으로 이 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이었다.

“아줌마가 다 할 테니 너도 지금 친구들과 함께 먹어라”

“아니오. 금세 끝나요. 뭐 어때요? 친구들한테 이렇게 밥도 퍼주고 인사도 하고 좋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부모님께 도움이 되어서 좋구요” 라며 또 맑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학생들도 그 아이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한 마디씩 반갑게 인사를 하며 급식을 받아 가고 있었다. 참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그 아이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말할 줄 알며, 감사할 줄 아는 아이었다. 배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나에게 고마웠다며 일부러 다가와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그때 그 아이의 모습이 지금도 나에게 각인되어있다. 그 기특하고 예쁜 아이의 맑은 미소가 큰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저런 아들을 둔 부모님의 심정은 얼마나 보람될까? 자랑스러운 아이였다.

며칠 전 이제 대학생 된 아들은 겨울방학 때 외국여행을 계획하고 여행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처음 시작하던 날 일요일이라 손님이 너무 많아서 바쁘고 힘들다고 하면서도 주인집에 손님이 많은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 감사했다. 손님이 많아 힘들다고 하면서도 주인집에 도움이 되니까 감사하다는 그 마음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어진 것에 감사하기 보다는 불평하고 원망을 하며 살아간다. 세상을 이해득실의 관계로만 보고, 나 아닌 다른 이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타협을 거부하고, 사회를 탓하며 지금 나에게 처한 현실을 원망한다.

나는 아들에게 물어봤다. “아들, 최근 그 일 말고도 감사했던 일이 또 뭐가 있니?”

“응, 중학교 1학년 때 교통사고 나서 다리에 철심을 박았었잖아. 그때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생겼나? 했는데 얼마 전 신검 받으러 가서 느낀 건데 몸에 상처가 많은 애들이 너무 많더라. 이만큼만 다친 것도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감사하더라구.”

사랑스러웠다. 이번엔 딸한테 물었다. “딸내미, 넌?”
“항상 감사하지.”
“뭐가?”
“엄마가 날 사랑하잖아, 그것도 감사할 일이지”
“그래?”

너무 풍족해진 요즘.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고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60이 넘으신 어른들께서는 보릿고개를 거치며 힘들게 살아오셨기에 아끼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신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은 풍족한 생활에 젖어 감사할 줄을 모르고 부모님의 사랑에도 감사함을 표하지 않는 게 보통이다. 국가에서의 무상급식과 무상교육, 얼마나 감사할 일인가? 그러나 그러기엔 이 세상은 너무 풍족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조금 모자람이 있어야 가진 것에 감사할 줄 알 텐데 말이다.

이때 뜬금없이 나타난 박보검의 “감사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전염 되어 이 세상의 기분 좋은 ‘감사 전염병’ 주의보가 내려졌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김소영(태민) 시인

▲ 김소영 시인
▲ 김소영 시인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부산 광안리 드론쇼, 우천으로 21일 변경… 불꽃드론 예고
  2. "마을 앞에 고압 송전탑 있는데 345㎸ 추가? 안 됩니다" 주민들 반발
  3. 세종청년센터, 2025 청년 도전과 성장의 무대 재확인
  4. 천안법원, 지인에 땅 판 뒤 근저당권 설정한 50대 남성 '징역 1년'
  5. 천안시, 자립준비청년의 새로운 시작 응원
  1. 천안시, 맞춤형 벼 품종 개발 위한 식미평가회 추진
  2. 천안시 동남구, 빅데이터 기반 야생동물 로드킬 관리체계 구축
  3. 남서울대, 미국 조지아텍과 글로벌 인재 양성 위한 국제협력 본격화
  4. 천안도시공사, 개인정보보호 실천 캠페인 추진
  5. 백석대,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과 협력…지역 창업 생태계 활성화 기대

헤드라인 뉴스


이장우 "김태흠 지사와 충청 미래를 위해 역할 분담할 것"

이장우 "김태흠 지사와 충청 미래를 위해 역할 분담할 것"

이장우 대전시장이 이재명 대통령의 적극 추진으로 급물살을 탄 대전·충남 행정통합의 단체장 출마에 대해 "김태흠 충남지사와 함께 충청의 미래를 위해 역할분담을 나눌 것"이라고 밝혔다. 이 시장은 19일 대전시청 기자실에서 가진 오정 국가시범지구(도시재생 혁신지구) 선정 관련 브리핑에서 대전충남행정통합시장 출마 여부에 대한 질문에 "통합시장을 누가 하고 안 하고는 작은 문제이고, 통합은 유불리를 떠나 충청 미래를 위해 해야 하는 일"이라면서 "(출마는) 누가 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당과도 상의할 일이다. 김태흠 충남지사와는 (이..

`2025 도전! 충청남도 재난 안전 골든벨` 성료… 퀴즈왕 주인공은?
'2025 도전! 충청남도 재난 안전 골든벨' 성료… 퀴즈왕 주인공은?

청양 목면초등학교 4학년 김가율 학생이 2025 충남 재난 안전 퀴즈왕에 등극했다. 충청남도, 중도일보가 주최하고, 충남교육청, 충남경찰청이 후원한 '2025 도전! 충청남도 재난 안전 골든벨'이 18일 예산 윤봉길체육관에서 열렸다. 이번 골든벨은 충남 15개 시군 퀴즈왕에 등극한 학생 및 우수한 성적을 거둔 학생들이 모여 충남 퀴즈왕에 도전하는 자리로, 272명의 학생이 참여했다. 행사엔 전형식 충남도 정무부지사, 남도현 충남교육청 기획국장, 김택중 예산부군수, 유영돈 중도일보 사장, 최재헌 중도일보 내포본부장 등이 참석해 퀴즈왕..

충남 천안·보령 산란계 농장서 고병원성 AI 의사환축 잇따라 발생
충남 천안·보령 산란계 농장서 고병원성 AI 의사환축 잇따라 발생

충남 천안과 보령 소재 산란계 농장에서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H5형)가 잇따라 발생했다. 충남도에 따르면 17일 충남 보령시 청소면, 천안시 성환읍 소재 농장에서 폐사가 증가한다는 신고가 접수돼 동물위생시험소가 확인에 나섰다. 충남 동물위생시험소가 18일 확인한 결과, H5형이 검출돼 농림축산검역본부에 고병원성 여부 검사를 의뢰했다. 검사결과는 1~3일가량 소요될 예정이다. 성환읍 소재 농장은 과거 4차례 발생한 사례가 있고, 청소면 농장은 2022년 1차례 발생한 바 있다. 현재 성환읍 소재 농장에서 사육 중인 가금류 22..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성금으로 잇는 희망…유성구 주민들 ‘순회모금’ 동참

  •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 시니어 모델들의 우아한 워킹

  • 딸기의 계절 딸기의 계절

  •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 보관시한 끝난 문서 파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