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당은 충청북도 유형문화제 42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조선 중기 성리학자 송시열과 조헌이 지방의 영재들을 모아 강론하고 많은 이재를 배출했던 서당이다. 서당이 문을 열고 한동안은 각신동 각신동(覺新書堂)이라 불렸다. 서당 건너편에 있는 마을 이름이 ‘각신리’라는 데서 따온 이름이다. 1901년(광무 5)옥천 옥각리(玉覺里) 금씨(琴氏)·이씨(李氏)·조씨(趙氏)·안씨(安氏)의 네 문중에서 이 건물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체 규모가 건평 40평, 본채 1동과 누각건물 1동으로 되어 있다.
▲ 옥천 이지당 |
본채는 석축기단 위에 정면 7칸, 측면 1칸의 팔작집으로 중앙 3칸은 대청이고, 양쪽 2칸은 거실로 구성되어 있다. 본체 우측의 누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목조와가 팔작집으로 높은 단 위에 누마루를 두고 주변에 난간을 두른 건물이다.
현재 이 건물에는 송시열의 친필인 이지당의 편액이 걸려 있고, 대청에는 조헌의 친필인 각신서당의 현판을 비롯하여 이지당기(二止堂記)·이지당강학조약(二止堂講學條約)·조헌의 친필운(親筆韻) 등이 남아 있다. 1966년 건물을 보수 한 이후 일부 보수 작업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뉴미디어국 금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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