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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염홍철 한밭대 석좌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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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성 비여서 그렇게 반가운 일은 아니지만 비가 오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마음 한 켠에 감춰두었던 감성이 되살아나기도 하지요. 비오는 날 사무실에서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이성복 시인의 시 구절대로 '누군가 내 삶을/대신 살고 있다는 느낌', 그러면서 '있어야 할 곳에서/내가 너무 멀리/왔다는 느낌'이 강해집니다. 그러면서 삶에서 성취하고 실현해야 할 의미와 가치에 대해서도 막연하나마 생각하게 됩니다. 날씨가 맑을 때는 피아노곡이 제격이지만 비오는 날에는 첼로곡이 더 가슴을 흔들어 댑니다. 굵직한 중저음의 첼로소리가 마음을 어루만지는 듯한, 세련된 기품을 발휘하지요.
비오는 날 유리창에 부딪쳐 물방울이 되어 불규칙하게 흩어지는 빗물을 바라보며 첼로곡을 듣고 있노라면 불연 듯 창밖의 비와 실내의 음악, 그리고 내 자신이 혼연일체가 된 듯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감동에 빠지곤 합니다. 널리 알려진 미샤 마이스키의 무반주 첼로 조곡이나 요요마의 비발디 시리즈를 듣는 감흥도 쏠쏠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96세로 생을 마감하는 날까지 바흐의 곡을 쳤다는 파블로 카자스의 첼로곡을 들으면 더 없는 감동을 느낄 것입니다.
염홍철 한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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